[정양모 교수의 '문화재 산책'] 문화재청 연구직과 행정직 이해·배려 필요하다
[정양모 교수의 '문화재 산책'] 문화재청 연구직과 행정직 이해·배려 필요하다
  • 조아라 기자
  • 입력 2014-04-14 14:37
  • 승인 2014.04.14 14:37
  • 호수 1041
  • 60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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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문화재 보호 갈 길 멀어

문화재는 모두 나이가 많아 잘 보살피지 않으면 마모·변형·변색·부식과 충해 등이 일어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존과학에 관한 인식과 연구 인력 부족, 연구경력 경험과 예산의 부족 등으로 파손은 은밀하게 부지불식 간에 이뤄지고 있다. 그런데 누구나 신중하고 깊이 있게 생각할 문화재보호는 아직도 갈 길이 멀다.

그 중에 한 가지만 들어보자. 종이와 깁(직물)으로 된 문화재가 얼마나 많은가. 이런 종이와 직물류는 충해와 온·습도조절과 먼지, 도시공해와 조명등의 실패로 인해 곰팡이가 슬고 마모되는 현상이 가만히 놔둬도 지속적으로 진행된다.

표구 규칙만 수백가지
명맥 다 끊어져

하지만 우리나라는 직물류 전문기관이 한 곳도 없다. 종이류는 표구사에서 담당하고 몇 군데 큰 연구소가 있지만 제대로 하는 곳은 한두 군데에 지나지 않는다. 적어도 최소 10년 이상 훈련과 실제 수리경험을 쌓은 훌륭한 기술 인재 밑에서 배워야 한다. 준비된 공간과 기자재도 있어야 한다. 옛날부터 오랜 관행과 습관에 따라 아주 세세한 표구 방법 등이 전수돼 내려와야 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기본이다. 표구를 하려면 옛날 한지와 같은 여러 가지 종류의 종이가 있어야 한다. 우리의 종이는 상지, 마지 등이 있지만 닥종이가 대표적이다.

닥종이는 닥나무의 속껍질로 만들어야 한다. 이를 삶고 말리면 긴 섬유가 백옥보다 흰 솜털같이 된다. 이 최고의 섬유질에 닥풀을 섞어 외줄로 떠야 하는데 이는 수십 년의 경력이 있는 유능한 기능인이 해야 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이렇게 떠서 말린 한지를 도련해 밀도가 치밀하고 표면이 매끄럽게 만들어야 한다. 이것이 그 기본이지만 지금 상황은 어떠한가.

수십 년 표구사를 운영하고 꽤 실력이 있다고 인정받는 표구사의 표구를 봤더니 족자가 뻣뻣하다. 족자를 걸어 놨는데도 세로로 둥글게 휘고 펴지지 않는다. 잘 한 표구는 부드럽다. 휘지 않는다. 예전에도 잘못한 표구는 쓰지 못했다. 요즘 잘못한 표구는 장작개비 같이 뻣뻣해 몇 번 말았다 폈다 하면 어느새 휘고 꺾인다.

이유를 물었더니 요새 한지는 좋은 닥을 쓰지 않을 뿐 아니라 닥풀을 섞어 종이를 뜨지 않고 화학 풀을 써서 종이를 뜨고 두 줄로 뜬다고 한다. 옛날의 부드러우면서 질긴 한지가 거의 없어졌다. 종이가 이 지경이니 근본부터 잘못된 것이다. 또 쓸 만한 종이를 구했다 하더라도 정말 좋은 풀로 배접을 해야 한다. 그런데 좋은 풀이 없다.

제대로 된 풀은 풀을 아주 잘 쒀 물이 담긴 독에 넣고 땅 밑에 보관해야 한다. 물독에 담은 풀은 적당한 시기에 자주 물을 갈아줘야 한다. 갓 쒀 일이년쯤 된 풀은 끈기가 많아 배접하면 꺾이고 습기에 곰팡이 슬고 좀이 먹는다. 10년 이상 물을 잘 갈아줘 보관한 풀은 적절하게 풀기가 줄어들 만큼 곯아 끈기가 있는 듯 없는 듯하다. 강한 것은 부러지고 약한 것이 강한 것을 이기는 것과 같다.

표구는 봄·가을에 해야만 한다. 이것은 표구에서 꼭 지켜야 하고 알아야 할 수 백가지 기능과 자재와 표구 시기 중의 하나에 불과하다.

문화재청 소임 막중하지만…

문화재의 종류가 수백 가지다. 문화재청과 문화재위원회는 그 수백 가지 문화재를 보존해야 할 오랜 노하우가 있어야 하고 이들 전체를 책임질 막중한 소임을 갖고 있다. 문화재청의 모든 직원과 문화재위원과 전문위원은 적어도 자기 전공분야에선 무엇이든 속속들이 알아야 한다. 계속 공부하고 현장을 찾아 더 알아보고 보존대책과 보존방법을 숙지하고 있어야 한다. 행정직도 연구직의 연구기능과 전문지식을 꽤 알아야 하고 보존기능을 최고로 발휘할 수 있도록 자기 집안일보다 더 열심히 뒷받침해야 한다. 그러려면 마음속으로부터 전문가와 하나되어 서로 믿고 연구직의 일을 이해하도록 노력하고 이해해줘야 한다.

<정리=조아라 기자>
chocho621@ilyoseoul.co.kr


▲ 한국미술발전연구소

▲서과투서

잘 익은 수박을 들쥐 한 쌍이 훔쳐 먹는 장면을 묘사한 그림이다. 쥐는 외모가 징그럽고 행동이 가증스러워 회화의 소재로 다룬 예는 흔치 않다. 그런데 겸재는 이 도둑쥐들의 가증스런 도둑질을 관찰하고 그 현장을 실감나게 묘사해 고발하고 있다.

잘 익은 속을 정신없이 파먹는 쥐와 들킬까봐 머리를 쳐들고 밖에서 망보는 쥐의 순간 동작이 생생하게 묘사됐다. 몰골법으로 처리한 쥐의 모습이 징그럽게 잘 표현되고 있다.

수박 속에는 여러 날 들락거린 듯 쥐가 파놓은 자리가 연분홍빛으로 곯아 있고 긁어내어 먹고 있는 조각들은 주홍빛으로 잘 익었다. 수박을 화면 중앙에 크게 배치했는데 그 위로 수박 덩굴이 휘어져 올라갔다. 오른쪽 곁에는 바랭이 한 줄기가 단풍이 들어 붉은 빛을 띠고 있다.

호초점과 자송점 등으로 수박밭의 풀을 상징하고 하단에는 달개비의 남빛 꽃을 무더기로 피워서 대형 수박의 무게를 지탱케 했다. 수박의 표면을 짙게 문질러나간 청색의 대담한 설채나 무성한 수박잎과 줄기의 호방한 묘법 등은 ‘석죽호접’의 여성적인 섬세함과는 대조적인 남성적인 웅혼미를 잘 드러내 겸재 화법의 다양성을 강조하고 있다.
 

조아라 기자 chocho621@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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