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불리한 신체조건, 노력으로 월드컵 자력진출에 메달까지
아시안게임 금메달 위한 폭풍 질주…완성도·숙련도에 올인
[일요서울 | 김종현 기자] 리듬체조 요정 손연재(20·연세대)가 진화를 거듭하며 여왕의 자리에 올랐다. 특히 한국 리듬체조 사상 처음으로 월드컵 리듬체조 4관왕에 오르며 새로운 역사를 써내려 가고 있다. 더욱이 꿈의 18점대 기록에 가까워지면서 아시안게임 금메달에도 청신호를 켰다. 한층 완숙한 연기를 선보이고 있는 손연재를 만나본다.
손연재는 지난 7일(이하 한국시간) 포르투갈 리스본에서 열린 국제체조연맹(FIG) 월드컵 시리즈에서 개인종합 금메달에 이어 볼, 곤봉, 리본에서 종목별 결선 1위에 올라 4관왕에 오르는 쾌거를 이뤘다.
이날 손연재는 볼에서 17.500점을 받으며 벨라루스의 멜리티나 스타니우타(17.400점)과 아제르바이잔의 마리아 드룬다(17.250점)를 누르고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곤봉 결선에서도 17.450점을 받아 러시아의 다나 아베리나(17.250점)를 누르고 금메달을, 리본결선에서도 17.150점으로 벨라루스의 마리아 티토바(17.050점)를 따돌리고 우승을 차지했다.
이처럼 손연재가 아시아선수권이 아닌 국제대회에서 다관왕에 오른 것은 이번이 처음으로 강력한 경쟁자인 스타니우타와 티토바에 비해 큰 실수 없이 연기를 펼쳤다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김지영 대한체조협회 리듬체조경기위원장은 “이번에 달성한 월드컵 4관왕은 한국 리듬체조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라며 “이는 한국 리듬체조가 세계 최정상급 수준으로 비약적인 성장을 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전했다.
한국 리듬체조 세계 최정상급 수준 도달
물론 이번 대회의 경우 현역 최강으로 불리는 야나 쿠드랍체바와 마르가리타 마문(이상 러시아), 안나 리자트디노바(우크라이나) 등이 불참해 평가가 후했다는 지적도 나왔다. 일부 네티즌들은 손연재의 4관왕 달성에 대해 폄하하는 댓글을 올린것으로 보아 논란의 불씨는 남아 있다.
하지만 손연재가 개인종합에서 70점대를 기록한 점 등을 감안할 때 기량이 세계 정상 수준에 도달했다고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이연숙 대한체조협회 경기력 향상위원장은 “지난 시즌까지는 손연재의 실력이 경쟁자들과 비교했을 때 한 수 아래였을지 모르지만 올 시즌은 분명히 다르다”면서 “이번 리스본 월드컵에서 보여준 기량은 세계 최고 수준으로 현지 심판들도 압도당할 정도였다”고 평가했다.
손연재는 리스본 월드컵 시상식을 마친 후 “개인종합 금메달에 이어 종목별에서도 금메달을 획득해서 정말 기쁘다. 세계대회에서 처음으로 애국가가 울려 퍼졌을 때 뭉클하고 행복했다”며 무엇보다도 신체조건이 좋은 유럽선수들과 경쟁하기 위해 난도를 높이고 이를 수행하기 위해 훈련량을 많이 늘렸는데 좋은 결과가 나왔다“고 소감을 말했다.
FIG도 손연재의 깜짝 4관왕에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FIG는 지난 8일 홈페이지를 통해 ‘한국의 손연재가 포르투갈에서 리듬체조 역사를 썼다’는 타이틀로 메인화면에 사진을 달았다.
특히 동양인 선수인 손연재의 쾌거는 러시아와 동유럽 국가들이 독식해왔던 종목이라는 점에서 반가울 수밖에 없다. 리듬체조는 양궁, 태권도, 야구 등과 마찬 가지로 일부 국가에 치우쳐 진입장벽이 높은 종목으로 손꼽힌다. 이에 그동안 올림픽 종목 퇴출 논란에 시달려왔다.

신체적 약점, 피나는 훈련으로 뛰어넘어
폭풍성장을 거듭하고 있는 손연재지만 세계 정상급 선수들에 비해서는 여전히 도전자로 남아있다.
지난달 22일 독일 슈투트가르트에서 열린 가스프롬 월드컵에서 우승, 준우승을 차지한 쿠드랍체바와 마문이 74.748점, 74.315점을 받은 데 비해 손연재는 이번 대회에서 71.200을 받았다. 아직은 점수차가 벌어져 있는 상태다.
하지만 손연재는 피나는 노력으로 한계를 극복하는 데 열중하고 있다.
우선 리듬체조는 신체의 아름다움을 극대화시키는 종목이기에 연기력과 유연성 외에도 긴팔, 긴 다리가 중요하다. 이에 신체조건이 좋은 러시아와 동구권 선수들이 상위권을 휩쓸고 있는 이유다.
2008 베이징올림픽과 2012 런던올림픽에서 리듬체조 사상 첫 올림픽 2연패를 달성한 예브게니아 카나예바(24·러시아)는 키 172cm에 몸무게 49kg으로 팔·다리가 길다.
반면 손연재는 165cm로 동유럽 선수들에 비해 키가 작다. 더욱이 팔·다리가 길지 않은 동양인 체형이라 연기를 하면 시원한 느낌보다는 아기자기한 느낌이 강했다.
대한체조협회 관계자는 “리듬체조는 신체의 선을 보여주는 종목이라 큰 키와 긴 팔·다리로 연기하면 같은 동작을 해도 더 아름답게 표현된다”며 “지금까지 동아시아권 선수들은 신체조건 열세를 극복하기 어려웠다”고 설명했다.
이 같은 악조건에도 불구하고 손연재는 끊임없는 훈련으로 도전을 마다하지 않고 있다.
특히 올해는 인천아시안게임이 열리는 해로 리듬체조 선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해로 보고 있다. 이에 지난해 11월부터 시즌을 조기에 시작해 4종목 새 프로그램을 일찌감치 몸에 익혔다. 여기에 난도를 비롯해 숙련도와 완성도를 높이는 데 공을 들이고 있다.
또 손연재는 평소 새벽 6시에 일어나 자정까지 이어지는 훈련량을 전부 소화하고 있고 대회가 끝나고 선수들이 짐을 싸고 돌아갈 때 매트 위에서 그날의 연기를 반복하며 실수한 부분은 고치는 등 피나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와 함께 이번 시즌에는 깜찍한 소녀에서 성숙한 숙녀로 이미지 변신에도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곤봉에선 특유의 깜직한 모습을 살렸지만 리본에선 아라비아풍의 음악 ‘바레인’을 택해 섹시하고 성숙한 모습을 선보였다. 그는 올해 첫 전지훈련을 앞두고 “다양한 매력을 보여줄 생각”이라고 말한 것처럼 공인된 연기력에 팔색조 같은 퍼포먼스를 선보이며 호평을 받았다.
또 지난 시즌에서 경기를 치를수록 드러난 체력 약점을 극복하기 위해 근육량을 늘리고 경기체력을 높인 것도 주요했다.

월드클래스를 향한 도전 꿈의 18점대
세계 정상급 기량에 다가선 손연재의 마지막 관문은 꿈의 18점대를 넘어서는 것이다.
리듬체조는 2014시즌부터 20점대로 개편된 신 채점 방식이 적용됐다. 난도 부문(D)과 실시 부분(E)에 각각 10점씩 배정했다.
손연재도 이에 맞춰 4개 종목 프로그램을 모두 바꿨다. 그가 완벽한 연기를 펼친다면 18점 이상을 받을 수 있도록 구성했다. 이번 대회에서도 8점대 중반에 머물렀던 난도를 9점대로 높였다.
리듬체조에서 18점대는 꿈의 점수로 불린다. 마문, 쿠르랍체바 등 러시아 1-2위 선수들이 궁극의 연기를 펼쳤을 때 받는 점수다.
리스본 월드컵에서도 러시안 3인자인 타토바가 개인종합 예선 리본에서 18.150점을 찍은 바 있다.
손연재의 경우 리스본 월드컵에서 리본은 18점대에 0.050점, 후프는 0.100점이 모자랐다. 1회전 차이로 18점대를 놓쳤다.
하지만 그가 18점대를 넘길 가능성은 높은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리듬체조 심판진은 D부분에 4명, E부문에 4~5명이 배정된다. 4명의 심판이 매긴 점수 가운데 최고점수, 최저점수를 뺀 2명의 심판의 중간 점수 평균이 해당 선수의 점수가 된다.
손연재가 이번 대회 리본에서 받은 17.090점을 분석해 보면 난도 점수는 8.950점, 실시점수는 9.000점이었다. 이는 실시에서 최고점을 부여한 심판들은 모두 9.000점 이상을 줬을 것으로 추정된다. 후프의 경우 난도 8.950점, 실시 8.950점을 받았다. 이 역시 최고점을 부여한 심판은 9점대를 줬을 가능성이 높다.
결국 이 마지막 0.05점차는 손연재가 스스로 늘 강조하는 실수 없는 완벽한 연기와 부단한 연습, 완성도와 숙련도로 극복해야 하는 과제로 남았다.
만약 손연재가 18점대 점수를 확보할 경우 명실상부한 월드클래스로 올라서게 된다. 또 인천아시안게임 금메달 획득에 청신호를 켜게 된다. 여기에 2년 후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에서의 톱5를 넘어 메달권 진입 가능성도 키울 것으로 전망된다.
손연재는 런던올림픽 자력진출을 비롯해 월드컵 종목별 결선 진출, 월드컵 종목별 메달, 월드컵 종목별 멀티메달, 월드컵 개인종합 금메달에 이르기까지 지난 4년간 자신의 목표를 차근 차근 달성해 왔다. 그의 폭풍성장 역사를 되짚어 볼 때 꿈의 18점 대 달성도 눈앞으로 다가왔다. 요행보다는 실력으로 극복하겠다는 손연재, 이번 시즌에는 많은 대회에 출전해 프로그램의 완성도를 높이겠다는 각오를 밝힌 것처럼 세계무대를 호령하는 진정한 챔피언이 되기를 기대해 본다.
todida@ilyoseoul.co.kr
김종현 기자 todida@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