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도참치]한국을 대표하는 핵심 기업의 ‘창업스토리’
[독도참치]한국을 대표하는 핵심 기업의 ‘창업스토리’
  • 박시은 기자
  • 입력 2014-04-07 14:34
  • 승인 2014.04.07 14:34
  • 호수 1040
  • 42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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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급 참치의 대중화 무한리필 전문점 떴다

한국경제가 짧은 시간 안에 고도성장을 할 수 있었던 것은 기업과 사람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특히 이들 기업가들은 독특한 경영이론과 기법들을 창안했으며 한국의 기업풍토에 적합한 비즈니스 모델과 경영이론들을 선보이기 시작했다. 삼성을 창업한 이병철은 인재제일주의를, 현대의 정주영은 생산의 혁신을, LG의 구인회는 인화모델을 각각 창안해 냈다. 현재 대한민국이 경제 강국으로 부상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이들 1세대 창업자들의 도전과 혁신적인 창업정신이 아니었으면 불가능했을지도 모른다. [일요서울]은 한국 경제의 한 획을 긋고 있는 기업들의 창업스토리를 출판물 또는 기존 자료를 통해 다시금 재구성해 본다. 마흔 일곱 번째 창업스토리의 주인공은 한국 대표 참치브랜드 독도참치(대표 이충국)다.

독도참치는 우리 땅 청정지역 독도라는 고유지명과 어류생선의 최고왕인 참치를 결합해 만든 대한민국 대표 참치브랜드다. 1999년 당시 참치는 고급호텔에서 일부 특권층만 먹어볼 수 있을 정도로 제한적인 음식이었다. 하지만 독도참치는 참치대중화의 일환으로 중저가 참치전문점을 착수 개점했고, 이후 누구나 손쉽게 저렴한 가격에 원하는 만큼 무한정 제공되는 참치 무한리필 전문점 시대가 열렸다.

서울직영점 개설 후 5년이 되지 않아 서울 수도권에만 150여 점포가 개설될 정도로 대한민국은 참치에 열광했다. 그렇게 이제 참치하면 독도참치가 떠오를 만큼 대한민국 대표 참치브랜드로 우뚝 섰다. 지난해 8월 29일 ‘독도참치’ 브랜드로 상표등록이 확정됨에 따라 그동안 등록되지 않은 무등록 무허가 업장들로 인해 발생됐던 소비자의 불만도 말끔히 해결했다.

시작은 포장마차에서

독도참치는 포장마차에서 술을 마시다가 탄생됐다. 독도참치 창시자 이정식 전 대표는 주로 편한 술자리의 포장마차를 애용했다. 그가 좋아하는 음식인 술, 자주 찾은 포장마차가 사업 아이디어를 제공한 셈이다. 그는 어느 날 포장마차에 빙 둘러앉아 즉석에서 만들어 주는 안주를 먹다가 갑자기 ‘바텐(선 채로 술을 마시는 형태)’식 참치 전문점을 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참치의 대중화가 시작된 독도참치가 탄생했다.

당시 참치전문점은 대부분 단가가 높았다. 대중이 이용하기에는 좀 부담스러운 가격이었다. 그래서 참치 전문점은 주로 접대하는 장소로만 사용되는 분위기였다. 이런 고가의 음식인 참치를 좀 더 저렴하게 대중화해 가족들이 포장마차에서처럼 둘러앉아 먹을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드는 것이 독도참치의 첫 번째 목표였다. 그길로 독도참치는 당장 자료 수집에 들어갔다. 그리고 회로 먹을 수 있는 참치의 원가와 객 단가 등을 검토하고 판매가를 정했다.

이 전 대표는 사업계획서부터 만들었다. 참치회가 외식업 사업 아이템으로 왜 좋은지, 앞으로의 전망, 바텐(다찌노미) 식의 업소 구조 그리고 예상 매출액과 마진등을 상세하게 정리했다. 복사본도 여러벌 준비했다.
이렇게 만든 사업계획서를 들고 참치 전문점으로 위치와 규모가 적당하다고 생각되는 점포를 무작정 찾아다녔다. 그리고 점포 주인에게 사업계획을 열심히 설명했다.

그러나 생각한 것보다 작업은 쉽지 않았다. 한 달 정도 부지런히 쫓아다녔지만 별 소득이 없었다. 모델 점포로 참치 전문점 하나를 만들어 놓고 직접 보여주면서 설명하면 별 어려움이 없을 터인데 그럴 형편이 되지 못해 안타까운 탄식만 나올 뿐이었다.

그렇게 실패를 거듭한 끝에 33㎡(10평) 남짓한 안경점을 하고 있다가 업종을 바꾸려는 사장님을 만났다. 이 전 대표는 사업계획을 몇 차례에 걸쳐 설명하고 말을 맞춘 후 그 쪽에서는 점포를 제공하고, 내부 인테리어는 독도참치가 맡아서 본점을 내기로 결정했다.
 

한국 최초 중저가 브랜드

이때가 1999년 9월경이었다. 평수가 33㎡(10평)이다 보니 겨우 의자 17개가 들어갔다. 좁은 공간이었지만 ‘ㄷ’자 형의 고정 식탁에 서서 먹는 형태로 만들었다. 주방은 가운데 공간을 활용해 회를 썰 수 있도록 설계했다. 독도참치의 첫 본점 탄생의 순간이었다.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바텐’형 가격 파괴 참치 전문점이 탄생한 후 가격은 이원화 정책을 썼다. 보통은 1인 당 1만3000원, 참치 상품은 1인당 당 2만 원으로 정했다.

개업 첫 날. 가게는 첫날부터 대만원이었다. 그 작은 점포에서 하루에 80만 원어치를 팔았다. 독도참치는 식당 가까운 곳에 조그만 본사 사무실도 차렸다. 첫 시작은 사장과 영업부장, 여직원 이렇게 셋이었다.

개업을 해서 장사가 되기 시작하니 돈도 돌기 시작했다. 신문에 광고도 냈다. 상담을 원하는 사람들이 사무실을 방문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들은 프렌차이즈 사업을 어떻게 하는지를 알아보려고 온 사람들이었지 가맹점을 차리러 온 이들이 아니었다. 독도참치가 개업한 지 일년 정도 지나자 독도참치를 본뜬 다른 참치 전문점 프랜차이즈가 50여 개나 등장했다. 결국 타 업체에 프랜차이즈 아이디어만 제공한 꼴이 되고 말았다.

사업 초기와 달리 가맹점 유치에서 위기가 온 것이다. 이 때 독도참치는 다른 돌파구를 찾았다. 바로 서비스정신 강화였다.

독도참치는 참치를 주의해서 해동함으로써 더 깊은 맛이 나오도록 했다. 또 고객에게 감동을 줄 수 있는 몇 가지 기법도 개발했다. 서비스로 주는 품목을 늘려 참치 외에도 몇 가지 음식을 더 준비했다. 날치 알 무침과 김 한 장에 참치 한 점을 얹어 고추냉이(와사비)를 찍어 무순과 함께 고객에게 직접 먹여주기도 했다. ‘참치눈물주’라는 것을 만들어 한 잔씩 따라주기도 했다. 그리고 눈치 보면서 먹지 않도록 항상 도마 위에 충분한 참치를 얹어줬다.

그렇게 다시 독도참치만의 색깔을 찾아가며 본점의 매출은 날개 돋힌 듯 올라갔다. 하지만 점포주인과 독도참치 초창기 멤버들 간의 의견 충돌이 발생하면서 결국 이들은 각자 갈라서게 됐다.

입소문만으로 가맹점 1호 탄생

우여곡절 끝에 독도참치는 천호동에 다시 자리 잡게 됐다. 개점하는 날 주방장이 손님들이 주는 술을 받아먹다 완전히 취해 장사가 어려울 만큼 성공적인 개업식이 됐다. 그러자 해당 점포 주인의 후배이자 해물탕 가맹점을 하고 있던 사람이 독도참치 가맹을 요청해 왔다. 드디어 정식적인 가맹점 1호가 탄생된 것이다.

독도참치는 길동 본점을 개점한 뒤 곧바로 1호 가맹점을 황금상권인 신촌에 열었다. 1호 가맹점 역시 대박이 터졌다. 가맹점 간판 하단에는 “맛있는 참치회 마음껏 드시고 1만5000원”이라는 문구를 써 넣었다. 이 문구 하나가 참치 전문점 대박에 그토록 크게 기여할 것이라고는 당시에는 아무도 전혀 생각지 못했다.

독도참치만의 고객감동 교육의 효과도 나타나기 시작했다. 단순한 이론이 아닌 실질적인 영업 전략을 가르치자 개업하는 업소마다 문전성시를 이뤘다. 당시 생각지 못한 어려움을 겪는 바람에 신문광고는 한 줄도 내지 않았는데도 입소문을 타고 성공가도를 달렸다.

그렇게 한 달에 17개의 점포를 개업했다. 일 년 동안 90여 개의 가맹점이 개설됐다. 그야말로 대박이 터진 것이다. 국내에 참치 프랜차이즈 업체는 모두 해서 50개 정도였다. 대부분 업체들이 26.4~33㎡(8~10평) 크기의 점포면 모두 가맹점으로 허락했지만 20평 이상이 되더라도 상권이 좋지 않은 곳은 가맹시켜주지 않았다.

하지만 독도참치에 또 한 번의 위기가 찾아왔다. TV 뉴스에서 저단가 참치 전문점에서 파는 참치가 모두 가짜라는 보도가 된 것이다. 이는 며칠 동안 이어졌고 일부 타 업체의 사장들이 구속됐다는 보도까지 나왔다.

제 2의 전성기를 열다

하지만 결국 가짜참치 뉴스는 오보로 판명됐다. 참치 집에서 손님을 위해 상어 지느러미와 열대어에 속하는 ‘만다이’를 참치를 먹는 고객에게 몇 점씩 서비스로 내놓았는데, 이 회를 가지고 가짜 참치라고 보도가 된 것이었다.

몇 개월이 지나자 가맹점들의 영업은 그런대로 원상회복이 됐지만 가맹점 확장은 여전히 주춤거리고 있었다. 하지만 독도참치는 또 한번의 위기를 딛고 일어서기 시작했다. 우선 부천의 중동점을 42.9㎡(13평)에서 132㎡(40평)으로 확장해 내부 시설을 업그레이드하고 분위기를 바꿨다. 새로운 감각으로 시설이 변하자 손님들의 반응은 다시 뜨거워졌다. 영업도 잘 됐지만 분위기에 대한 호응이 높았다.

이때부터 서서히 가맹점 숫자가 늘어나기 시작했다. 제 2의 전성기를 맞이하기 시작한 것이다. 꺼져갈 듯하던 독도참치는 다시 한 달에 5~6개씩 가맹점이 늘어났다. 새로 늘어나는 가맹점은 점포 규모도 상당히 컸다.
그러다 독도참치에 뜻밖의 행운이 찾아왔다.

바로 ‘독도’문제였다. 아직까지도 역사왜곡을 자행하며 독도가 일본 땅이라고 우기는 일본의 행동에 ‘독도참치’는 애국심을 등에 업고 매출이 승승장구했다. 독도참치 역시 일본의 행동에 분노를 참치 못하고 가맹점 모든 곳에서 점포 정면에 일본 대사의 망발에 항의하는 내용의 플랜카드를 걸었다. 또 직원들은 머리띠를 착용하고 ‘붉은 악마’를 상징하는 붉은 티셔츠를 입고 일했다.

<끝>
<정리=박시은 기자>
<출처=반드시 성공하는 장사의 법칙│지은이 이정식│아롬미디어> 

박시은 기자 seun897@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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