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담의 시작 1990년대 국제그룹·대우그룹 등
CJ·STX그룹도 악재 이어져…전문가들 의견은?

서향(西向) 사옥을 쓰면 흉한 일이 생긴다. 풍수지리학에 근거한 속설이긴 하지만 피해 그룹의 면면을 살펴보면 꼭 그렇지만도 않아 보인다.
한때 세계 경영을 표방했던 대우그룹이 대표적이다. 또 벽산그룹, 갑을그룹, 국제그룹, STX그룹과 CJ그룹 등이 속설의 피해 그룹으로 분류된다. 이들 모두 서쪽을 바라보고 서있는 그룹들이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면 국제그룹이 서울역 맞은편 서향기업 참사 속설의 시작점이다. 재계 6위권을 자랑했던 국제그룹은 용산 국제빌딩 입주 2년 만인 1986년, 부실기업으로 몰려 해체됐다.
1990년대 외환위기 당시는 이 속설에 모두가 벌벌 떨었다. 줄줄이 문을 닫거나 악재를 만났다.
대표적으로 대우그룹이 1999년 외환위기를 버티지 못해 쓰러지고 말았다. 대우그룹이 입주해 있던 대우빌딩(현 서울스퀘어)은 서울역 맞은편 서향이다. 용산 남영동에 본사를 뒀던 해태그룹도 이때 부도를 냈다.
끝이 아니다. 이듬해 벽산그룹이 워크아웃에 들어갔다. 창립 40주년을 맞아 서울역 맞은편에 사옥(현 게이트웨이타워)을 지은 것이 도화선이었다. 당시 해당빌딩의 이름은 벽산125빌딩이었다. 아울러 갈월동 갑을빌딩을 사옥으로 사용하던 섬유회사 갑을방직 역시 2000년을 넘기지 못했다.
반복 또 반복되는 저주
이후로 잠잠한 듯 보였지만 속설의 저주는 쉽게 풀리지 않았다. 여간해선 벗어날 수 없는 굴레와도 같았다.
서울역 바로 맞은 편 STX그룹과 남대문 경찰서 뒤편에 자리한 CJ그룹이 위기에 빠진 것이다. 지난해 STX그룹은 잘나가다가 갑자기 좌초됐고, CJ그룹은 총수 이재현 회장의 구속과 삼성가의 상속분쟁에 휘말렸다. GS역전타워에 입주해 있는 GS건설 역시 실적 악화로 속병을 앓기도 했다.
속설과 상관없지만 서울역 건너편을 떠나는 기업도 보인다. GS건설은 역전타워를 떠나 서울 종로구 청진동 새 사옥으로 위치를 옮겼다. LG유플러스도 2015년 용산으로 이전할 예정이다. 연세재단 세브란스빌딩에 입주해 있는 대우인터내셔널은 인천 송도국제도시의 동북아트레이드 타워를 점찍은 상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서향 건물 미스터리가 세간의 입에 오르내리는 이유는 충분했다. 남산의 서쪽은 지는 해의 방향이기 때문에 기업들이 화를 입는다는 것이 근거다. 이와 맞물리는 곳이 바로 서울역 건너편이다. 다만 이를 바라보는 풍수지리 전문가들의 의견은 다양하다. 크게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는 의견과 “전혀 근거 없는 뜬소문에 불과하다”는 의견이다.
한 풍수지리학자는 이와 관련해 “집을 지을 때 동향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며 “건물의 위치도 이에 해당할 수 있고, 기업의 정문이 어디를 보고 있는지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서울역 건너편 서향 기업의 대부분은 서쪽으로 펼쳐진 대로변에 위치해 있다. 때문에 정문이 서쪽을 향해 있는 경우가 많다”며 “단순하게 지역만 보면 명당일 수 있지만 여러 가지 관점에서 봤을 때 완벽한 구조의 사옥은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그는 건물의 형태를 지적하기도 했는데 “사옥과 같은 큰 건물을 지을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야 하는 것은 안정감이다. 건물이 휘어져 있다거나 하는 모양은 갑자기 악재를 맞을 수가 있고, 갈라진 모양을 가진 건물들은 도끼에 찍힌 모양이라 하여 좋지 않다”고 짚었다.
반대로 다른 한 풍수지리학자는 “동향이 길하다는 심리가 있어서 그런 이야기가 흘러나오지 않았나 싶다”면서 “풍수지리학의 배산임수 관점에서 서울역 건너편은 충분히 좋은 위치”라고 반박했다.
또 “경제 불황과 해당 지역 기업의 불운이 우연히 겹친 것으로 보는 게 맞다”며 “풍수지리에선 터가 가장 중요하다. 아무리 출입문이 서쪽을 바라보면 안 좋다 해도 터가 좋으면 상쇄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여기에 재계에선 속설은 속설일 뿐 확대 해석은 좋지 않다고 입을 모은다. 한 재계 관계자는 “얼마 전 정부가 민관합동 규제 개혁 점검 회의도 열지 않았나. 이는 속설과 상관없이 경제 현실에 부침이 심하다는 것이다”라며 “대기업들이 많이 위치해 있는 지역이기 때문에 안 좋은 예가 많이 생겼지만 터무니없는 속설로 모든 이치가 해석될 수는 없다”고 말하기도 했다.
한편 대기업들은 1970년대 고도성장을 이룬 뒤 사옥 건설에 열을 올렸다. 당시 많은 기업들이 선택한 지역이 바로 서울역 주변의 중구와 용산구였다. 중구와 용산구는 서울의 중심에 위치해 있고 교통이 편리하다는 이유에서 인기가 좋았다.
hwihols@ilyoseoul.co.kr
강휘호 기자 hwihols@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