앓는 소리 내던 기업들 실상은 두둑한 보수 챙겨
상대적 박탈감에 반기업 정서·노사관계 악화 우려

지난달 31일 공개된 자료에 따르면 대기업 그룹 경영진 중 지난해 5억 원 이상의 연봉을 받는 등기임원은 292명, 10억 원 이상을 받는 등기임원은 145명이다.
연봉 공개 후 이들 중에서도 ‘연봉킹’이 누군지에 대한 관심이 높았다. 1위는 최태원 SK그룹회장이다. 최 회장은 지난해 SK와 SK이노베이션, SK C&C, SK하이닉스 등 4개사로부터 총 301억599만 원을 수령했다. 이를 뒤이은 연봉킹은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회장과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이다.
그동안은 알 수 없었던 기업 총수·임원들의 연봉이 공개되자 후폭풍이 만만치 않다. ‘기업 총수와 임원들이 열심히 했기 때문에 직원들이 월급을 받고 살아가고 있다’, ‘경영투명성을 유도할 것’이라는 등 긍정적인 의견도 있지만 사회에 미칠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거액 연봉에 대한 시선을 곱게만 볼 수 없는 요소들이 많다는 것이다.
지난달 31일을 기준으로 대기업 등기임원의 평균 연봉과 대기업 평균 초봉은 13.8배 차이가 난다. 10대 그룹 상장사 등기임원의 지난해 평균 연봉은 10억4000만 원이고 직원 평균 연봉은 7500만 원이다. 연봉공개로 상대적인 박탈감을 느끼는 이유다.
또 오너일가 임원과 전문경영인 간의 연봉도 3배 차이가 났다. 오너 일가 임원의 평균 연봉은 38억3600만 원으로 알려졌다. 전문경영인의 평균 연봉은 10억4300만 원으로 미등기임원으로 연봉이 공개되지 않은 곳을 제외하면 오너 일가 임원 평균의 4분의 1 수준이다.
실제로 박찬구 금호석유화학 회장은 지난해 당기순손실 427억 원을 기록하고도 급여 24억1900만 원과 상여금 18억2200만 원을 모두 받아 42억4100만 원의 연봉을 수령했다. 반면 36조7850억 원의 영업이익을 낸 삼성전자의 전문경영인인 권오현 부회장의 상여금과 기타근로소득을 제외한 급여는 17억8800만 원이다. 영업이익을 낸 삼성전자보다 손실을 낸 금호석유화학의 오너가 더 많은 급여를 받은 셈이다.
이처럼 적자, 실적부진으로 어려움을 겪는 기업임에도 정작 총수와 임원들은 거액 연봉 잔치를 벌이고 있음이 드러났다.
최은영 한진해운 회장은 307억 원의 영업적자와 이자비용만 3897억 원이 발생했지만 17억 원의 연봉을 받았다.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은 현대상선으로부터 8억8000만 원을 받았다.
건설업계도 마찬가지다. 허창수 GS그룹 회장은 9354억 원의 영업적자가 난 GS건설로부터 급여와 상여금을 모두 받아 17억2700만 원을 기록했다. 허 회장의 동생인 허명수 전 GS건설 사장도 급여와 상여금을 모두 받아 6억3500만 원을 지급받았다. 정몽원 한라건설 회장도 2507억 원의 적자에도 9억7500만 원의 보수를 받았다.
연봉공개 제도 허점 많다 논란
이 같은 사실이 알려지자 고액연봉에 대한 사회적 반발여론이 거세졌다. 고액 연봉의 실체를 알고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는 감정이 반기업 정서로 이어지고, 또 노사갈등도 확산될 수 있다는 우려다. 더욱이 정당한 경영활동의 대가인지에 대한 여부를 파악하기 힘들다는 문제점도 지적됐다. 보수를 산정하는 기준이 기업마다 다르기 때문이다.
일례로 현대자동차가 공시한 사업보고서에는 등기임원의 상여나 성과급이 전액 근로소득 중 얼마인지 등 세부 사항은 명시돼 있지 않다. 지급 기준 또한 ‘임원 임금 책정 기준 등 내부기준에 의거’라는 설명만 돼 있다.
이에 보다 투명한 경영을 위해서는 연봉 공개의 범위를 확대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미등기임원이 연봉공개 대상에서 제외된 것도 문제로 지적된 것이다. 특히 미등기임원이 많은 삼성그룹의 대다수 오너와 오너 일가들은 연봉공개 대상에서 제외됐다.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장녀인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의 연봉만 공개됐다.
여기에 연봉공개를 피하려고 등기이사직을 내려놨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오너들도 다수 존재해 연봉공개 제도에 문제점이 많다는 주장이 끊이지 않고 있다. 연봉킹에 오른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최재원 수석부회장,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등은 최근 등기이사에서 물러났다. 내년부터는 이들의 연봉을 알 수 없다.
미국의 경우 최고액 연봉자 3명 등 연봉이 높은 상위 5명 임원의 보수 현황은 등기·미등기 임원에 관계없이 공개한다. 일본도 임원의 등기·미등기 구분 없이 연 보수총액이 1억 엔 이상일 경우 개인별 연봉을 공개하고 있다.
한 시민단체는 “연봉공개 제도의 목적을 제대로 시행하려면 연봉 산정기준의 객관성과 연봉 공개대상의 형평성부터 해결해야 한다”면서 “갖은 꼼수를 걸러내기 위한 제도적 장치도 마련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부정적 여론이 확산되자 재계는 이를 진화하기 위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급여 반납, 성과급 반납, 연봉 삭감 등을 시행하는 것이다.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은 지난해 급여 331억 원 중 법정 구속으로 인해 경영참여가 어려웠던 2012년 이후 급여인 200억 원을 돌려준 것으로 밝혀졌다. 만약 이를 반납하지 않았다면 김 회장이 연봉킹에 올랐을 연봉이었다. 또 최태원 SK그룹 회장도 SK하이닉스를 비롯한 계열사의 지난해 성과급을 받지 않기로 했다. 허창수 GS그룹 회장도 올해는 연봉을 삭감할 것으로 전해졌다.
한편 배당금을 포함한 소득 1위 재계총수는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으로 드러났다. 오너들은 배당금 수입이 연봉보다 높은 경우가 많아 연봉만으로는 실제 소득으로 보기 어렵다. CEO스코어에 따르면 이 회장은 1079억 원의 배당금을 받았으며 10대그룹 오너 중 지난해 전체 소득이 1000억 원이 넘는 경우는 이 회장을 제외하고는 없다.
seun897@ilyoseoul.co.kr
박시은 기자 seun897@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