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ㆍ정치인들 무속ㆍ역술인에 빠져든 속사정
재벌ㆍ정치인들 무속ㆍ역술인에 빠져든 속사정
  • 오두환 기자
  • 입력 2014-04-07 10:38
  • 승인 2014.04.07 10:38
  • 호수 1040
  • 15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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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 빠지면 헤어 나오지 못하는 점(占)

이름 바꾸라면 바꾸고 산에 가라면 가는 후보들
박정희·김영삼·김대중 전 대통령들도 신경 써

[일요서울 | 오두환 기자] 선거철 가장 인기 있는 사람은 누구일까. 언론에 노출되는 횟수로 따지자면 각 정당 또는 지역 후보일 것이다. 하지만 이들만큼 인기있는 사람이 또 있다. 바로 역술가, 점쟁이들이다. 아무리 과학이 발달했어도 ‘미래를 예측해 주는 기계’는 없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점집으로 후보들이 몰리고 있다. 특히 올해는 정당 통합, 무공천 등으로 정치판세가 혼잡하다 보니 점집을 찾는 사람들이 더욱더 늘어났다는 소문이다.

점, 사주, 관상은 이미 오래 전부터 우리 삶 속에 문화처럼 자리잡아왔다. 어디까지나 참고용일 뿐이었다. 하지만 선거를 앞둔 정치인들이나 중요한 결정을 해야하는 기업인들에게는 참고용이 아니라 결정의 수단으로 사용된다.

삼성 창업주인 고 이병철 전 회장 역시 재계의 대표적인 역술 애호가로 꼽힌다. 신입사원 면접 때 역술인을 옆자리에 두고 관상을 보게 했다는 건 세간에 잘 알려진 일화다. 그는 직원을 뽑는 데 재능뿐 아니라 단정한 용모, 겸손한 말씨, 조용한 걸음걸이 등 외모나 태도를 상당히 중시했다고 한다.

또 정태수 전 한보그룹 회장 역시 ‘역술 경영’의 대표 주자였다. 사주와 관상을 보고 사원을 뽑았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애초에 정 전 회장이 사업을 시작한 것도 역술인의 “사업 한번 해보라”는 권유에서 시작했다고 알려졌다.

최근에는 최태원 SK회장과 김원홍 SK해운 고문의 관계가 호사가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 증권사에서 일하다 무속인이 된 것으로 알려진 김씨의 말을 믿고 투자를 했다가 최 회장이 구속까지 됐기 때문이다.

대선후보들조차 무시 못한 무속인의 ‘말’

대선을 앞둔 대통령 후보자들도 예외는 아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지난 1990년 여의도로 당사를 옮기면서 기를 이어받아야 한다는 무속인 말에 따라 관훈동 구 당사에 자기 사진을 남겼다고 알려졌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선친의 묘를 옮긴 뒤 1997년 대선에서 승리해 주목을 받기도 했다.

1999년엔 충남 예산의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 조상묘에서 누군가 박은 철심 7개가 발견되기도 했다. 과거 야당 대표였던 원로정치인은 경기도의 한 절에서 점을 본 뒤에야 일을 결정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손학규 전 경기도지사는 2007년 한나라당에서 탈당할 때 “대운이 기다린다”는 역술가 얘기를 측근에게 들었다고 한다. ‘믿거나 말거나’ 일 수도 있지만 많은 사람들이 역술가, 무속인 등의 말 한마디를 쉽게 지나치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박정희정권 당시에는 동촌선생이 유명했다. 박 전 대통령에게 수시로 점괘를 내줬으며 신상과 나라 운세까지 봐 준 것으로 알려졌다. 고 육영수 여사의 묏자리도 유명 풍수가를 통해 정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미신인 줄 알고서도 믿을 수밖에 없는 후보들

무속인들에게 남한산성은 굿판 벌이기 좋은 장소다. 서울 시내에서는 인왕산이 무속인들에게 인기있는 장소다. 한마디로 기도발이 좋은 곳이기 때문이다. 두 곳에서는 평일에도 심심치 않게 굿판을 볼 수 있다.

무속인들의 굿판은 선거철이 되면서 더 자주 벌어지고 있다. 굿판 한 번에 천만 원은 기본이다. 평상시에는 일반인들이 의뢰하는 굿이 많지만 요즘에는 선거에 나선 후보들이 많이 의뢰를 하고 있다고 한다.

남한산성에서 자주 굿판을 벌이는 무속인 A씨는 “대부분 선거에서 당선될 수 있도록 기도해 달라는 굿이 많다”며 “간절함이 커서 그런지 굿판비도 천만 원 이상씩 내고 간다. 정치인들이 돈을 잘 버는 것 같다”고 전했다.

A씨가 아는 또 다른 무속인은 최고 1억 원까지 받은 적도 있다고 말했다. 의뢰인이 누군지 모르지만 어떤 경우는 본인이 직접 오지 않고 대리인을 시켜 사주만 들고 오는 경우도 있단다. 대놓고 어느 쪽 줄을 서야하는지 묻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기초단체장 선거를 앞둔 후보 B씨는 22년 된 낡은 아파트를 떠나지 못하고 있다. 과거 이 아파트에 살던 한 정치인이 기초단체장 선거와 국회의원 선거에서 잇따라 당선됐지만 이사를 한 뒤 치른 선거에서 낙선했기 때문이다. 아내와 아이들이 이사를 하자고 해도 B씨는 ‘좋은 기를 받아야 한다’며 이사를 미루고 있다.

이름을 바꾸는 사람도 많다. 연예인들이야 이름을 바꾸는 사람들이 흔하지만 정치인들은 이름이 생명과도 같아서 잘 바꾸지 않는 편이다. 하지만 당선만 될 수 있다면 뭐든지 하겠다는 자세를 가진 상태인 만큼 과감하게 이름을 바꾸는 후보자들도 있다. 바로 기초단체장 선거에 나선 후보 C씨다. 역술가가 “현재 이름은 기가 너무 약하다”는 조언에 이름을 새로 지었다.

선거철에는 유독 산에 오르는 후보자들도 많다. 겉으로는 많은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서라고는 하지만 알고보면 주변의 지인 또는 점쟁이들의 조언 때문에 산을 오르는 경우가 많다. 국회의원 후보로 나선 D씨는 주말이면 지리산 천왕봉으로 떠난다. 선거유세와 함께 지리산의 좋은 기를 받기 위해서란다.

선거철 역술인들에게는 성수기

역술인·무속인을 찾는 사람들이 늘면서 역술인들이 성수기를 맞았다. 과거에는 방송에 출연하는 것이 최고의 홍보였지만 선거철을 맞아서는 선거예측으로 돈벌이가 짭짭하다는 소문이다. 때가 때인 만큼 후보자들이 역술가의 말을 주의깊게 듣는 데다가 돈을 비싸게 불러도 깎지 않기 때문이다. 심지어 서울에서 활동하는 역술가 E씨는 지방에까지 점집을 내고 출장을 다닌다는 소문도 있다.

사실 당선인 예측은 복불복이나 마찬가지다. 맞으면 좋고 틀리면 그냥 넘어가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당선인을 맞춘다면 역술인으로서는 대박을 터트리는 것과 마찬가지다. 최소한 다음 선거 때까지 이 역술인의 집에는 정치인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freeore@ilyoseoul.co.kr 

오두환 기자 freeore@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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