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경시, 무리하게 건립한 흉상 잇단 수난에 골머리
문경시, 무리하게 건립한 흉상 잇단 수난에 골머리
  • 김종현 기자
  • 입력 2014-03-31 15:02
  • 승인 2014.03.31 15:02
  • 호수 1039
  • 62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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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공고 전두환 자료실 논란 폐쇄도

[일요서울 | 김종현 기자] 문경시가 건립비 2억 원을 들여 세운 채문식 전 국회의장 흉상에 잇따라 훼손사건이 벌어져 골머리를 앓고 있다. 건립 당시에도 채 전 의장이 1980년 신군부의 국가보위입법회의(국보위) 부의장을 맡았다는 문제로 논란을 일으킨 바 있다.

문경시는 지난 23일 같은달 17일 문경 영강문화센터 내에 세워진 채 전 의장의 흉상 일부가 훼손된 것을 시민들이 발견해 신고했으며 현재 복구에 나섰다고 밝혔다.

▲ <뉴시스>

발견 당시 흉상의 얼굴과 귀 등 5곳이 날카로운 물건에 훼손됐으며 안경테 한 쪽이 떨어져 나가고 두 곳은 부러져 있었다. 앞서 지난해 4월에도 오석으로 만든 채 전 의장의 비문에 누군가 노란색 페인트를 뿌려 엉망이 된 것을 문경시가 재정비한 바 있다.

이 흉상은 지난해 3월 문경시가 ‘채문식 흉상건립추진위원회(위원장 김학문 전 문경시장)’의 사업비 2억 원 전액지원 요청을 받아들이면서 건립됐다.

하지만 흉상건립에 대해 지역 일부 시민·사회단체가 이의를 제기하면서 논란을 빚었다. 시민·사회단체 관계자는 “역사적 검증과 시민들의 동의 등 공감대 형성 없이 건립할 경우 두고두고 논쟁에 휘말릴 가능성이 높다”며 혈세를 들이는 흉상 건립 대상자로 부적절하다“고 재검토를 요청했었다.

또 신영국 전 국회의원이자 문경대학 총장은 “흉상은 영구적인 시설로 몇 사람이 결정할 일이 아니라 찬반 여론조사 등을 거쳐 명분을 갖춰야 한다”고 지적했다.

박인원 전 문경시장도 “저명인사의 흉상 건립은 지역사회의 공감대 형성이 우선”이라며 “시민 혈세로 추진되는 만큼 시민들의 동의를 받는 작업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했다.

반발이 거세지자 문경시는 비문에 채 전 의장의 국보위 부의장 경력을 기재하지 않기로 하고 당초 세우기로 했던 중앙공원에서 영강문화센터 앞뜰로 장소를 옮겨 세웠다.

시 관계자는 “채 전 의장이 20대 청년시절 문경군수를 역임하는 등 지역에 기여한 바도 크다고 판단했다”며 해명했다.

그러나 사후 3년도 안 돼 흉상이 건립된 데 대해서도 논란이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나라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바쳐 일제에 항거한 구한말 의병장 운강 이강년 장군은 사후 백년이 되어서야 문경 가은읍 완장리 그의 생가 터에 동상이 세워졌다. 또 사재를 털어 문경의 교육발전을 위해 노력한 서봉 이동영 선생은 사후 10년이 지나서야 시민운동장 한 켠에 흉상으로 섰다.

▲ <뉴시스>

이 같은 기념사업 논란은 여러 곳에서 발견되고 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이 졸업한 대구공업고등학교의 경우 대구공고총동문회가 지난 2012년 6월 성금 32억 원을 투입해 모교에 ‘대구공고 역사관’을 짓고 맨 위층에 전두환 전 대통령 자료실을 개관해 물의를 일으켰다.

자료실은 330㎡ 규모로 전 대통령의 업적을 기리는 다양한 자료와 정장 차림에 안경을 쓴 전 대통령 흉상이 세워져 있었다. 동문회 산하 역사관건립사업회 박규하 회장은 “전 전 대통령은 대구공고가 배출한 상징적인 인물로 후배들에게 꿈을 심어주기 위해 자료실을 마련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대구지역 시민단체들을 비롯해 시민들의 항의가 빗발치자 총동문회 측은 결국 자료실을 폐쇄했다. 동문회 측 관계자는 “일부에서 교육적 측면에 맞지 않는다는 비판이 제기돼 전두환 전 대통령 자료실을 폐쇄했다”며 “전두환 전 대통령과 관련된 자료들을 축소하고 학교와 관련된 내용을 보충해 학교 역사관을 조성할 계획”이라고 한발 물러섰다.

또 1990년 통영 남망산공원에 극작가 유치진의 흉상이 설치됐다가 친일논란에 휩싸이며 5년 만인 1995년 자진 철거하기도 했다.

한편 채 전 의장은 문경 출신으로 6선 국회의원과 여당대표, 국회의장 등을 역임했으며 박정희 정권에서는 야당인 신민당 의원이었다. 하지만 1980년 신군부의 국보위에서 부의장으로 변신, 민주화 동지들과 결별하고 신군부에 협조했다는 이유 등으로 역사적 평가가 엇갈리고 있다.

todida@ilyoseoul.co.kr

김종현 기자 todida@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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