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직에 상관없이 팀에 필요한 부분이 있다면 다할 생각
[일요서울 | 김종현 기자] 빅리그 진출을 위해 부단히 노력을 기울여 왔던 임창용이 시카고 컵스로부터 최종 방출되면서 그 꿈이 물거품으로 돌아갔다. 임창용은 방출이 확정된 이후 귀국해 삼성 라이온즈로 복귀했다. 부상으로부터 재활훈련을 견뎌내면서 미국무대 진출을 노크했던 임창용, 불굴의 도전정신이 뒷받침됐던 도전기와 다시 국내 팬들 앞에 서게 된 심정을 들어본다.

일본무대와 미국을 거쳐 다시 삼성 마운드로 돌아온 임창용은 지난 27일 삼성 2군 훈련장인 경산볼파크에서 입단식을 갖고 “미국 생활이 짧았다. 아쉬운 면도 있지만 돌아와 기쁘다. 잘 부탁드린다”고 소감을 밝혔다.
그는 몸 상태에 대해 “충분히 좋다고 생각한다. 방출된 후 5일 정도 쉬었는데 다시 만들 수 있는 시간이 있었으면 좋겠다”며 “물론 개막전까지 맞추기는 힘들 것 같다. 감독님과 통화를 했는데 열흘정도는 시간을 달라고 요청했다. 천천히 준비해서 100% 몸 상태로 던질 수 있게끔 하겠다”고 말했다.
특히 임창용은 “300세이브를 의식하고 삼성의 우승에 보탬이 되겠다”며 “300세이브에 대해 크게 신경 쓰지 않았지만 이제 신경을 써야 한다. 목표 달성에 앞서 팀에 도움을 주는 선수라는 믿음을 먼저 심어주겠다”고 각오를 밝혔다.
보직에 대해서는 “어떤 보직을 하고 싶은 건 없다. 팀에 필요한 부분이 있다면 다할 생각이다. 그래도 목표는 마무리”라면서 “그 부분에선 감독님과 뜻이 잘 맞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임창용은 메이저리그 진출이 무산된 것에 대해 아쉬움도 드러냈다. 그는 “이번 스프링캠프에서 잘해 올라갔으면 좋았겠지만 실력이 부족한 관계로 못 올라갔다. 많이 아쉬웠다”면서 “컵스 구단 측에 방출을 요청했다. 마이너로 내려가라는 통보가 왔는데 마이너에선 못하겠다고 방출을 시켜달라고만 요청했다. 그래서 삼성에 올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삼성 측은 전날 “임창용과 연봉 5억 원 및 별도의 인센티브를 추가하는 조건으로 1년 계약을 맺었다”면서도 “임창용의 요청으로 구체적인 인센티브 조건은 공개하지 않기로 했다”고 전했다.
결국 임창용이 삼성에 복귀하면서 삼성은 우승을 위한 마지막 퍼즐을 맞추게 됐다. 이에 송 단장은 “최선을 다했다. 팀 전력이 좋아지면 나도 좋다”며 “임창용과 계약을 조율하는 과정에서 조금 힘들었다. 그래도 임창용이 많이 양보를 해줬다. 시즌 개막이 얼마남지 않았기 때문에 무조건 협상을 끝내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다”고 말했다.
송 단장은 또 “감독도 선수 1명이 있는 게 더 좋다”며 “최선을 다행 임창용을 잡았다. 전력이 좋아졌으니 좋은 게 아닌가”라며 만족감을 드러냈다.
아쉬운 방출로 마무리
급히 삼성복귀를 선언하면서 임창용 빅리그 도전기는 막을 내리게 됐다. 하지만 그는 복귀 기자회견에서 “삼성이 현역 생활 마지막 팀이 될 것인가”에 대한 질문에 “그것은 아무도 모른다”고 답해 여전히 도전에 대한 꿈이 있음을 드러냈다. 그의 시선은 아직도 ‘넓은 곳’을 향해 있다.
임창용은 1995년 해태 타이거즈(KIA 타이거즈 전신)에 입단해 프로무대를 밟았다. 올해로 데뷔 20년째를 맞는다. 그의 야구 인생은 ‘도전’이라는 단어로 대신할 수 있다.
2004년까지 선발과 불펜을 오가면 맹활약을 펼쳤지만 2005년 가을 팔꿈치 인대 접합 수술을 받고 이후 3년간 이렇다 할 성적을 내지 못했다. 하지만 프로 데뷔 13년차였던 2007년 말 임창용은 은퇴가 아닌 도전을 선택했다. 한국 프로야구보다 훨씬 낮은 연봉을 받으면서까지 일본프로야구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결국 그의 도전은 멋지게 성공하며 제 2의 전성기를 맞았다. 야쿠르트 스왈로즈에 입단한 임창용은 일본프로야구 진출 첫해인 2008년부터 2011년까지 4시즌동안 무려 128개 세이브를 기록했다.
일본팬들은 팀의 주전 마무리로 뒷문을 굳게 잠가주는 임창용에게 ‘미스터 제로’라는 별명을 붙여줬다. 그러나 2012년 팔꿈치에 다시 문제가 생겨 결국 수술대에 올랐다. 결국 2012시즌을 끝으로 야쿠르트를 떠났다. 보통 36세면 은퇴를 결정해도 어색하지 않은 나이지만 임창용은 또 다시 도전을 선택했다.
평생 꿈꿔왔던 메이저리그에 다시 문을 두드렸다. 그는 2012년 12월 시카코 컵스와 2년간 최대 500만 달러(약 54억 원)에 스플릿 계약을 맺고 미국 무대에 진출했다. 재활치료와 마이너리그를 거쳐 그해 메이저리그 6경기에 등판 승패 없이 평균자책점 5.40을 기록했다.
그러나 팀 리빌딩과 유망주 육성에 나선 컵스는 2013시즌을 끝으로 임창용을 방출했다. 결국 그의 메이저리그 도전이 멈추게 됐다.
이에 대해 임창용은 스스로 “실력이 부족했다”는 말로 대신했지만 컵스의 배려에도 아쉬움은 남아있다. 전문가들은 다소 무리한 요구 조건이 임창용의 어깨를 무겁게 했다고 판단하고 있다.
임창용은 올해 컵스 초청선수 자격으로 스프링캠프에 합류해 시범경기 4경기에서 평균자책점 4.50을 기록했다. 잘 던지지 않은 날은 다소 아쉬움이 남지만 비교적 잔류 가능성도 높았다.
하지만 컵스는 지나치게 구속에 초점을 맞췄고 이에 대한 요구가 임창용의 밸런스를 미묘하게 흔드는 악재로 작용했다.
당시 임창용의 한 측근은 “몸 상태는 좋다. 직구 구속도 93마일(150km)까지 나오고 있다”면서도 “아직 구속이 컵스의 요구 조건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컵스는 임창용이 스프링캠프에서 최소 95마일(153km)의 공을 던져주길 바랐던 것으로 알려졌다.
한 관계자는 “임창용은 천천히 몸 상태를 끌어올려야 하는 상황이었고 페이스는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구속에 대한 컵스의 집착이 컸다. 임창용도 이런 상황에 대해 부담감을 느꼈던 것 같다”고 전했다.
여기에 컵스의 등판 간격에 대한 배려 또한 미흡했다. 컵스는 시범경기 막판 임창용의 등판을 이틀 간격으로 잡아뒀던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마지막에는 이 일정을 지켜주지 않았다. 다른 투수들에게 우선권을 주면서 임창용의 등판 일정이 꼬이는 결과로 이어졌다. 임창용은 몸을 잘 만들었지만 마운드에서 최고의 결과를 내기에는 여러모로 사정이 좋지 않았다. 결국 컵스는 임창용의 의견을 존중해 아무 조건 없이 방출했다.
이에 임창용은 속전속결로 친정팀 삼성으로 돌아왔지만 여전히 스프링캠프의 아쉬움과 꿈을 위한 도전의지는 마무리되지 않았다.

정통파를 뛰어넘는 사이드 암 지존 복귀
비록 빅리그 도전은 무산됐지만 사이드암 지존인 임창용의 올 시즌 성적은 쾌청하다.
일명 뱀직구로 유명한 임창용은 사이드암 투수로서는 지존이라는 명칭이 아깝지 않을 정도다. 사이드암은 흔히 중·고등학생들이 투수를 시작할 때 구속이 나오지 않을 경우 던지는 방법이다. 반면 구속이 많이 나오고 공이 묵직한 투수들의 경우 정통파의 길을 걷게 된다. 정통파로 던지는 공이 위력을 극대화하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이에 현재 1군에서 살아남은 사이드암 투수 대부분 강속구를 던지는 투수는 많지 않다.
이에 반해 임창용은 야쿠르트 시절 무려 160km를 찍었다. 온몸을 비틀어 던지는데 정통파보다 더 많은 구속을 내고 있다. 이는 임창용 특유의 유연함과 손목, 팔, 어깨 등의 강한 근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부분이다. 시카고 컵스 시절에도 팔꿈치 재활을 마친 뒤 그의 구속은 150km 초반을 꾸준히 유지하고 있다.
여기에 임창용은 쓰리쿼터, 정통파에 가까운 오버스로 폼으로 던져왔다. 상체를 얼마나 꼿꼿이 세우느냐에 따라 폼이 달랐다. 그만큼 몸이 탄탄했고 유연하다는 증거다.
더욱이 최근 사이드암 투수들의 경쟁력은 높아지고 있다. 과거 1990년대와 2000년대 초반의 사이드암 투수 대부분은 직구의 완급 조절로 승부했다. 낮은 릴리스포인트 자체의 생소함만으로도 타자에게 유리했다. 코너워크와 느린 직구만으로도 승부를 낼 수 있었고 투구 궤적상 우타자에게 최대한 팔을 숨길 수 있어서 타이밍 싸움에서도 유리했다.
그러다가 2000년대 중반 이후 왼손 타자들이 늘어나고 정교한 우타자도 늘면서 사이드암이 살아남기 어려운 환경이 됐다. 하지만 최근 사이드암 투수들이 우타자뿐만 아니라 좌타자에게도 유리한 고지를 점령할 수 있는 떨어지는 변화구를 장착하면서 다시 경쟁력을 갖추게 됐다. 특히 단순히 좌타자 바깥쪽으로 흘러나가는 체인지업을 넘어 싱커, 스플리터, 커브, 슬라이더 등 자유자재로 구사해 타자에게 낯선 궤적을 그릴 때 위력이 배가되고 있다.
지난해 프로야구에서 사이드암 투수가 득세한 이유를 여기서 찾을 수 있다. LG의 신정락, 유규민을 비롯해 NC 이재학, 이태양 등이 선발로 뛰면서 깊은 인상을 남겼다.
중간계투 요원으로는 심차민, 신용운(이상 삼성), 오현택, 변진수(이상 두산), 한현희, 마정길(이상 넥센), 김선균(LG), 김성배, 이재곤, 정대현(이상 롯데), 임기영, 정재원(이상 한화), 고창성(NC), 유동훈, 박준표(KIA)등 수많은 선수들이 사이드암을 구사하고 있다.
임창용 역시 몸만 잘 추스릴 경우 한국프로야구에서 여전히 최강의 사이드암 투수의 존재를 각인시킬 가능성이 높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특히 입단식 기자회견에서 임창용은 ‘상대해보지 않은 타자’와의 대결을 언급해 임창용이 떠난 2008년 이후 국내 대표 간판타자들과의 맞대결이 관심을 끌고 있다. 또 일발장타력을 갖춘 외국인타자들과의 맞대결도 올 시즌 빼놓을 수 없는 관전 포인트가 됐다.
꺾이지 않은 도전 의지 새로운 도전을 기약
임창용은 내년이면 한국 나이로 마흔 살이 된다. 이는 운동선수로서 전성기는 한참 지났다고 봐도 무리가 없는 나이다. 하지만 평생 야구인생을 도전으로 살았던 임창용에게는 후퇴나 멈춤이라는 말 보다는 전진과 도전이라는 단어가 더 제격이다.
“나이가 들어서도 구위를 유지할 수 있다면 계속 마운드에 서겠다”며 “지금 몸 상태를 유지하도록 최선의 노력을 할 것”이라고 밝힌 각오처럼 그의 멈추지 않는 도전이 기대된다.
임창용이기에 내년 또는 내후년 다시 꿈을 찾아 떠난다 할지라도 어색하는 않은 이유다. 올 시즌 재정렬을 통해 도전의 항해를 이어가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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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현 기자 todida@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