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고 웃는 경제징크스] 땅의 기운과 운명
[울고 웃는 경제징크스] 땅의 기운과 운명
  • 강휘호 기자
  • 입력 2014-03-31 13:23
  • 승인 2014.03.31 13:23
  • 호수 1039
  • 35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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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황 속 풍수지리 따지는 기업들 청계천 참사의 진실은?

사옥·출입문·사무실·화장실 등 위치도 전통 술법 영향
물길에 휩쓸려 악재가 도사리는 곳이 있다? 괴담 잇달아

▲ 왼쪽부터 SK그룹, 동양그룹, 한화그룹

[일요서울 | 강휘호 기자] 재계에도 징크스가 존재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기업이 중요한 공사를 결정할 때, 논리와 계산 이외의 요소는 조금도 반영하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한다. 즉, 처음부터 끝까지 세밀하고 철저하게 분석한 뒤 과학적인 근거에만 입각해 일을 진행하지 않겠냐는 설명이다. 물론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이들도 때론 미신 아닌 미신에 시달린다. 일부 재계 관계자들은 “가끔은 눈에 보이지 않는 불길한 징조들이 더욱 섬뜩하게 다가온다”며 혀를 내두르기도 한다. 거칠 것 없어 보이는 이들에게 도대체 어떤 징크스가 따라 다닐까. [일요서울]이 알아봤다.

풍수지리설(風水地理說)은 특정 지역의 주변 산세(山勢)·지세(地勢)·수세(水勢) 등을 판단해 이것을 인간의 길흉화복(吉凶禍福)과 연결시키는 이론이다.

조선의 태조 이성계가 도읍을 한양으로 정한 태반의 이유가 풍수지리설에 의거했다는 역사적 사실만 봐도 풍수지리가 전통적으로 우리사회에 큰 영향을 미쳐온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더군다나 풍수지리는 터를 잡는 술법이다. 지형, 지질, 기후, 용수 등과 같은 자연적인 조건과 교통, 시장, 노동력, 용지 상태, 원료 공급, 전력 등과 같은 사회적·경제적인 조건을 두루 따지고 본다.

또 이러한 풍수지리를 조금 더 현대화한 단어로 바꾸어 입지 선정이라는 말로 풀이할 수 있다.

과학인가, 운명인가

그렇다면 이 입지 선정 방법에 운명을 맡긴 기업들도 있을까. 결론적으로 보면 비(非)과학적이라는 비판에서 여전히 자유롭지 못한 풍수지리지만, 여전히 기업들은 풍수지리와 운명을 같이하는 경우가 자주 목격된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기업 활동의 근거지 사옥(社屋)이다. 사옥 위치와 출입문 방향, 심지어 화장실이나 경영진 사무실 위치까지도 풍수지리에 따르는 사례가 적지 않다.

기업의 풍수지리를 논할 때 가장 많이 회자되는 곳이 서울 서초동에 위치한 삼성 사옥이다. 남쪽 우면산, 동쪽 역삼역, 서쪽 서초역 등이 모두 높아 돈을 상징하는 물이 모이는 요지로 잘 알려져 있다.

풍수지리와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금융권에도 관련 일화가 많다. 지금은 모두 역사 속으로 사라졌지만, 외환 위기 이전 5대 시중은행이었던 조흥·상업·제일·한일·서울은행 등이 그 대표다.

재미있는 일례로 현재 한국은행이 소공동 별관으로 사용하고 있는 옛 상업은행 본점의 이야기를 들 수 있다. 이철희ㆍ장영자 어음사기사건(1982년), 명동 지점장 자살 사건(1992년), 한양 경영위기 사태(1993년) 등 악재들에 시달릴 때 일이다.

당시 상업은행은 악재를 피할 해법을 찾다 못해 풍수지리의 대가에게 조언을 구하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정지태 당시 행장은 풍수지리 대가의 조언대로 3호 터널 쪽을 바라보고 있던 행장실 집기를 모두 북쪽 시청 방향으로 놓은 뒤, 나쁜 기운을 빼내야 한다는 이유로 폐쇄돼 있었던 한국은행 방향의 남문을 다시 열었다.

당시 상업은행이 풍수에 따라 은행장 집기를 옮겼다는 사실은 언론에도 등장해 흥미를 끌었다. 더구나 공교롭게 남문을 열자 그쪽 방향에 있던 한국은행이 부산지점의 헌돈 불법 유출사건(1995년), 구미사무소 현금 사기사건(1996년) 등에 휘말리기도 했다.

대기업들의 입지를 봐준 적 있다는 한 풍수지리학자는 “풍수지리 한 가지로 입지를 선정하지는 않지만 분명히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며 “불황이나 악재에 시달리는 때 특히 더 풍수지리를 찾는 기업이 많다”고 전했다.

공포가 도사리는 곳

그런데 이러한 풍수지리의 관점에서 봤을 때 매우 흥미로운 곳이 있다. 바로 청계천이다. 청계천은 흔히 명당 중의 명당으로 불리는 곳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청계천 주변에 사옥이 위치한 기업들은 오랫동안 대참사를 직격타로 맞고 있다.

예전 청계천 발원지 부근인 신문로에 위치한 태광그룹을 시작으로 SK그룹, 한화그룹, 동양그룹, 아모레퍼시픽 등 청계천가에 위치한 기업들이 고꾸라지는 움직임을 보이면서 “청계천이 대기업의 무덤으로 전락하는 것 아니냐”는 괴담이 등장한 것이다.

실제로도 지난해 납품비리 사건으로 구설에 오른 대우조선해양, 현재현 회장이 사기성 CP(기업어음) 발행 혐의로 구속된 동양그룹, 최태원 회장이 실형 선고를 받은 SK그룹 등의 상황이 겹치고 있다.

더욱이 청계천변에 비교적 늦게 합류한 아모레퍼시픽과 미래에셋도 구설수에 올랐다. 지난해 초 수표동 시그너처 타워로 둥지를 옮긴 아모레퍼시픽은 이른바 갑(甲)의 횡포 논란의 중심에 섰다.

2011년 10월 을지로 센터원빌딩에 입주한 미래에셋 역시 강남지점 직원이 고객이 맡긴 수십억 원의 자금을 멋대로 투자하다 사기죄로 피소당하는 사건 등이 일어나 괴담의 주인공이 되는 듯 보였다.

상황이 이쯤 되자 우연이긴 하겠지만 ‘하필이면 괴담의 중심지에 들어와 사서 고생하고 있냐’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린다.

한편 청계천 잔혹사를 바라보는 풍수지리학자들의 의견은 분분하다. 일부 전문가들은 “실체 없이 만들어진 이야기”라고 일축한다. 한 학자는 “청계천은 서울 시내의 명당 중 명당이다. 물이 사람의 갈증을 풀어주듯 청계천은 서울의 기운을 한층 맑게 해주는 역할을 한다”며 “기업들이 스스로 경영을 잘 못해놓고 괜히 땅 탓을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반대로 또 다른 학자는 “악재를 맞은 기업들은 물이 빠지는 곳에 위치해 물길에 휩쓸린 것으로 풀이할 수 있다”며 “땅도 땅이지만 청계천에 위치한 건물들의 모양이 문제다. 건축가의 개성만 너무 강조하다 보니 위태롭고 매우 좋지 않은 형태의 건물들이 들어서게 됐다”고 지적한다.

올해도 풍수지리에 입각해 사옥을 정하는 기업들, 악재에 시달리다 못해 땅 탓을 하는 기업들의 향후 행보가 어떻게 변할지, 재계를 바라보는 재미있는 요소가 될 것으로 보인다.

hwihols@ilyoseoul.co.kr

강휘호 기자 hwihols@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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