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제완화 긴급진단] 대한항공 호텔사업, 뚝심일까 욕심일까
[규제완화 긴급진단] 대한항공 호텔사업, 뚝심일까 욕심일까
  • 박시은 기자
  • 입력 2014-03-31 13:04
  • 승인 2014.03.31 13:04
  • 호수 1039
  • 29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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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중·고 사이 위치한 호텔 경제논리 vs 교육권 보장
▲ 대한항공이 호텔사업으로 논란을 일으킨 경복궁과 여중·고 인근의 호텔 부지.

특혜 의혹 난무…가라오케 없으면 정말 괜찮을까
호텔 설립 허용에 사업 급물살…“논란 속 오해 많다”

[일요서울 | 박시은 기자] 대한항공(회장 조양호)이 경복궁과 풍문여고 사이의 7성급 한옥 호텔 건립을 두고 다시 논란에 휩싸였다. 박근혜 대통령이 주재한 규제개혁 점검회의에서 특급호텔 규제 완화가 거론되면서다. 이에 교육계는 강한 반발을 하고 있다. 다른 유해시설을 금지하더라도 소위 ‘찌라시’라고 하는 선정적인 광고지 등의 문제가 일어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더욱이 과거 88올림픽 때 외국인 관광객 유치를 위해 방이중학교 주변의 호텔이 허용된 후 유사한 문제가 일어난 바 있다. 하지만 대한항공 측은 이러한 문제를 방지할 대책을 마련하고 있지 않으며, 호텔 설립 계획을 유지한다는 입장이어서 논란은 쉽게 가시지 않을 전망이다.

[일요서울]이 찾아간 대한항공의 7성급 한옥 호텔 건립 부지는 풍문여자고등학교의 교문과 100m도 채 떨어지지 않은 자리에 있었다. 그 뒤로도 나란히 덕성여자중학교와 덕성여자고등학교가 위치하고 있다. 학교 건물을 확장 공사한다고 해도 믿을 정도의 그야말로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였다.

그런데 이 위치에 호텔이 들어설 예정이다. 그것도 6층 학교 건물에서 훤히 다 내려다보이는 4층에 호텔이 자리 잡을 것으로 알려졌다. 대한항공은 2008년 삼성생명으로부터 풍문여고 인근 일대 3만6642㎡(1만1080평) 부지(옛 주한미국대사관 직원 숙소)를 2900억 원에 사들였다. 이후 지하 4층~지상 4층의 7성급 관광호텔을 포함한 복합 문화단지 조성을 추진했다.

하지만 해당 부지는 서울 중부교육청으로부터 덕성여중·고와 풍문여고 인근에 위치한다는 이유로 불허 결정을 받았다. 현행 학교보건법상 ‘절대정화구역’에 속해 호텔이 들어설 수 없다. 이 구역에 호텔, 여관, 여인숙을 지으려면 관할 교육청의 ‘금지시설 해제 승인’을 받도록 돼 있다.

승인을 거부당한 대한항공은 2010년 중부교육지원청을 상대로 행정소송을 냈다. 행정 소송은 2012년 6월 대한항공이 대법원 판결에서 ‘패소’한 것으로 마무리됐다.

그렇게 대한항공의 경복궁 호텔 사업은 숙원사업으로 남는 듯했지만 상황이 달라졌다. 지난 20일 박근혜 대통령이 학교 근처에 호텔 건립을 규제하는 학교보건법에 대해 “편견으로 청년들이 취직할 수 있는 일자리를 막는 것은 죄악”이라고 발언하면서부터다.

이 한마디에 정부는 곧장 규제를 완화해 가라오케나 단란주점 등 청소년 유해시설만 없다면 학교 주변에도 관광호텔을 세울 수 있도록 추진했다. 결국 지난 27일 학교 주변에도 관광호텔 설립이 허용됐고 대한항공의 호텔 사업은 급물살을 타게 됐다.

방이중 꼴 나는 건 시간 문제

하지만 교육계와 문화계, 시민단체 등이 거세게 항의하고 있어 규제완화 갈등은 더욱 심화될 전망이다. 교육계와 시민단체 등은 “정부가 법을 바꾸면서까지 호텔을 짓도록 해주는 것은 특정 기업에 대한 ‘특혜’다”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경제 논리에 교육권과 학습권 등이 일방적으로 침해된다는 것이다.

덕성여중의 한 관계자는 “호텔 건물이 4층에 위치해 있어 6층으로 세워진 학교 교실에서 호텔이 다 내려다보일 것이다”며 “타종이나 운동회 등 소음이 발생하는 정상적인 교육활동에 대해 자제 요구가 들어올 것은 불 보듯 뻔하다”고 말했다.

황평우 한국문화유산정책연구소장은 “역사문화 경관과 청소년의 학습권 보장을 어떻게 규제라고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미래 세대에 물려줄 것과 규제를 구분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누리꾼들 역시 마찬가지로 “어떻게 학교 앞 호텔건립 금지가 일자리를 막는 죄악이 될 수 있냐”면서 “학교폭력 근절을 강조하던 모습과 모순된다”고 꼬집었다.

실제로 88올림픽 당시 외국인 관광객 유치를 명분으로 방이중학교 주변에 호텔설립을 허용하면서 우려가 현실로 드러난 적이 있다. 당시 건립이 허용된 호텔은 60~70개로 호텔이 들어서자 학생들의 등·하굣길마다 성매매 전단이 널려 문제가 됐다.

학교뿐만이 아니다. 지난해 부산에서도 파크하얏트 호텔은 맞은편 아파트와 서로 내부가 들여다보이는 문제로 논란이 됐다. 결국 파크하얏트 호텔은 아파트 입주민에게 각 1000만 원씩 보상금을 지급했다.

대한항공의 경복궁 인근 호텔에서 이런 문제들이 발생하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없다. 다른 유해시설 유입을 제한한다 하더라도 호텔이 들어서면 자연스럽게 사람 왕래가 더 많아질 것이고, 호텔 주변을 타켓으로 소위 ‘찌라시’라고 부르는 선정적인 광고지가 뿌려지면 아이들에게 악영향을 끼칠 것은 당연하다.

이처럼 대한항공이 욕을 먹으면서도 호텔사업의 뜻을 굽히지 않자 조현아 칼호텔네트워크 대표의 경영권 입지 다지기 때문이라는 의혹도 제기됐다. 경복궁 인근 부지에 호텔 사업을 추진한 조 대표가 동생 조원태 대한항공 부사장과의 경영권 힘겨루기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서라는 설명이다.

이에 대한항공 측은 오랫동안 발목을 잡아온 규제가 풀린다는 소식이 반가우면서도도 조심스럽다는 반응이다.

대한항공 관계자는 “호텔사업만 하는 것이 아니라 ‘복합 문화단지’를 조성하는 것이며 러브호텔이 아니라 7성급 특급호텔이다”고 말했다. 또 “복합 문화단지라는 사실은 묻힌 채 학생들의 학습권을 저해하는 인상만 주고 있는 것이 안타깝다”며 호텔뿐만이 아니라 갤러리, 공연장 등을 함께 짓고 있는 공간임에도 ‘호텔’만 부각되는 점에 대한 아쉬움을 드러냈다. 이어 “우리나라가 호텔에 대한 인식이 잘못 자리 잡힌 것 같다”면서 “문화 공간 차원에서 보는 것이 아니라 유해환경으로만 보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 “LA에서 진행하고 있는 호텔사업의 경우 사업 진행이 시작되자 LA에서 25년간 숙박비를 면제해주는 등 호텔 설립을 받아들이는 시각이 다르다”고 덧붙였다.

다만 LA에서 호텔 사업이 추진되고 있는 부지가 경복궁 호텔 부지와 유사한 상황인가에 대해서는 “다르다”고 답변했다. 또 해당 논란들이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허가를 할 때 철저한 등급을 나누는 기준을 세워야 한다”며 정책에만 기대를 거는 듯한 모습은 아쉬움을 남겼다. 대한항공 관계자는 “사업 초기여서 우려되는 문제들이 발생했을 때의 대책이나 보상책이 마련된 것이 없다”고 말했다.

또 “회사 내부적인 이유 때문에 경복궁 호텔 사업을 추진하는 것이 아니며 ‘특혜’ 역시 사실 무근이다”고 밝혔다.

한편 정부가 호텔 건립을 허용했지만 사업승인권자인 종로구와 계획 변경 승인권자인 서울시는 이에 난색을 표하고 있어 대한항공의 사업 추진은 여전히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서울시와 종로구는 지난 27일 정부가 대한항공의 풍문여고와 경복궁 옆 호텔 신축을 허용하기로 한 것에 대해 “공공성이 우선”이라고 입을 모았다.

seun897@ilyoseoul.co.kr

박시은 기자 seun897@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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