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이상 무·젊은 나이…돌연 경영 손 떼
등기이사 연봉 공개 부담됐다는 의혹 분분

[일요서울 | 박시은 기자] 박문덕 하이트진로 회장(64·사진)의 갑작스러운 경영일선 퇴진을 둘러싸고 소문이 무성하다. 박 회장이 경영에서 손을 떼자마자 그의 형인 박문효(67) 하이트진로산업 회장까지 함께 물러났다. 하이트진로家의 2세들이 동시에 물러나자 일각에서는 “3세경영이 시작됐다”, “등기이사 연봉 공개가 부담스러운 것이다” 등의 여러 가능성이 거론됐다. 그러나 말끔하게 밝혀진 것은 하나도 없다. 이에 [일요서울]이 하이트진로家를 둘러싼 루머와 진실을 파헤쳐봤다.
주류업계의 신화로 불리는 하이트진로 오너일가에 큰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잘 나가던 하이트진로家의 2세들이 동시에 퇴진을 결정하면서 퇴진 이유에 대한 궁금증이 증폭했다. 건강상의 문제도 없고 나이도 젊은 박문덕 하이트진로 회장이 갑자기 물러난 다른 이유가 있을 것이라는 추측이다.
박 회장은 지난 21일 돌연 대표이사직에서 사퇴했다. 같은 날 열린 하이트진로홀딩스 주총에서도 대표이사직을 사임한다는 뜻을 밝혔다. 이날 박 회장은 일신상의 이유로 경영일선에서 물러난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하이트진로는 김인규 대표이사 단일 체제로 변경됐다. 회장이란 직함은 유지하지만 경영 일선에서는 완전히 물러났다. 이후 박 회장의 형인 박문효 하이트진로산업 회장도 그룹 계열사 중 유일하게 등기이사직을 갖고 있던 하이트진로산업의 사내이사에서 빠졌다.
하이트진로 최대 주주는 박문덕 회장이다. 그는 하이트진로의 지분 54.26%를 보유한 하이트진로홀딩스의 지분 중 30.30%(지난 2월 기준)를 보유하고 있다. 이외에 하이트진로홀딩스 지분의 27.66%를 보유하고 있는 자회사 서영E&T는 박 회장의 일가가 지분의 80%가량을 소유하고 있다. 그의 장남인 박태영 하이트진로 전무가 58.44%, 차남 재홍씨가 21.62%를 보유중이다. 또 그의 형인 박문효 회장이 5%가량을 소유하고 있다. 박문덕 회장은 서영E&T를 이용해 우회적인 방법으로 자녀들에게 증여를 하다 논란이 된 바 있다.
그런 박 회장이 하이트진로의 등기이사에서 물러난 것은 14년 만이다. 과거 조선맥주 시절부터 업계의 살아있는 신화가 된 그는 1991년 사장으로 취임한 후 한 번도 이사회에서 빠지지 않았다.
또 고 박경복 전 하이트진로그룹 명예회장의 장남이자 박 회장의 형인 박문효 회장 역시 대표이사에서 갑작스럽게 물러나자 ‘하이트진로家에 무슨 일이 일어났다’는 의심의 눈초리는 더욱 날카로워졌다.
박문효 회장은 한때 하이트진로그룹의 유력 후계자였지만 동생 박문덕 회장이 1991년 부사장에서 사장으로 오르면서 후계구도에서 멀어졌다. 부친의 지분도 동생인 박문덕 회장에게로 증여됐다.
이후 박문효 회장은 그룹 계열사 중 유일하게 하이트진로산업의 등기임원만 유지해왔다. 이처럼 실권이 거의 없는 것과 마찬가지였던 박문효 회장까지 동시에 퇴진하자 하이트진로家 경영 체제에서 박문효 회장이 완전히 아웃됐다는 의심의 눈초리도 샀다.

사측 “신사업 구상 이유가 전부”
일각에서는 하이트진로 오너일가가 등기이사 연봉공개 시행에 부담을 느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최근 연봉공개 시행을 앞두고 주요 대기업 오너들이 등기이사를 사임하는 분위기와 연관이 있다는 설명이다. 담철곤 오리온 회장,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 등을 비롯해 최태원 SK 회장,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이재현 CJ그룹 회장 등이 대거 등기이사에서 사임한 바 있다.
3세 경영체제로의 전환이라는 전망도 나왔다. 박태영 하이트진로 전무가 본격적으로 경영일선에 나선다는 추측이 따른다. 아직 30대 중반인 박 전무가 곧바로 경영 일선에 나서는 것보다 시간을 두고 3세 경영의 포석을 놓는 과정이라는 설명이다. 이는 2012년 4월 당시 상무였던 박 전무가 9개월 만에 전무이사로 초고속 승진과 동시에 경영전략본부의 본부장으로 발령받으면서부터 꾸준히 거론돼왔다. 이미 중요한 결재는 박 전무가 하고 있다는 소문이 돌 정도이기 때문에 박 회장의 대표이사 사임은 전문경영인 체제로의 전환 후 3세의 승진 수순을 밟기 위한 경영 전환 작업이란 것이다.
또 박문덕 회장의 실적감소에 따른 위기감에서 온 결정이라는 추측도 있다. 2011년부터 OB맥주에 밀리고 있어 판세를 뒤엎고, 기반을 확고히 할 카드를 선보일 것이라는 분석이다. 여기에 롯데그룹, 신세계그룹이 맥주사업 진출을 앞두고 있어 박 회장이 큰 위기를 느꼈다는 것이다.
최근 하이트진로의 실적은 하락세를 탔다. 하이트진로로의 합병 당시 업계의 독보적인 1위가 될 것이라는 예상과는 달리 맥주 시장에서의 점유율은 40% 이하로 떨어졌다. 지난해 영업이익은 전년 대비 3.65% 감소한 1610억 원이었다. 당기순이익은 전년대비 23.55% 줄어든 791억 원, 매출액은 6.74% 떨어진 8974억 원이었다. 이를 뒤엎기 위해 드라이피니시D와 퀸즈에일 등 신제품을 출시했지만 큰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소주 시장에서는 45% 내외의 점유율을 유지하고 있지만 매출은 지난해 1~3분기 동안 두 자릿수로 감소했다.
이에 하이트진로 관계자는 “신사업 구상을 위한 퇴진”이라고 못 박았다. 이미 예전부터 전문경영인 체제 전환을 위해 준비해왔고, 박 회장은 여유를 두고 신사업을 구상하기 위해 물러났다는 것이다. 그는 “언젠가는 3세 경영 체제로 전환되겠지만 현재 박 회장의 대표이사 사임과는 무관한 사항이다”면서 “입사한지 얼마 되지 않은 박 전무를 둘러싼 소문은 경영전략본부장 직위에서 하는 일들이 와전된 것 같다”고 말했다. 회사의 경력 전략을 담당하는 만큼 중요 사업에 깊숙이 관여될 수밖에 없지만 조직 체계가 완연히 잡힌 회사에서 오너의 3세라는 이유만으로 실세라는 소문은 터무니없는 얘기라는 것이다.
또한 연봉공개와 관련된 의혹에 대해서는 “다른 기업과 비교했을 때 자사의 등기이사 연봉은 부담을 느낄 정도로 큰 액수가 아니다”며 “박 회장이 대표이사에서 물러난 것과 관계 없이 이달 안으로 연봉을 공개할 계획이다”고 말했다. 이어 “만약 연봉공개 시행이 부담스러웠던 것이라면 지난해에 진즉 빠져나갔을 일”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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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시은 기자 seun897@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