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체추적] 향판의 세계와 스폰서
[실체추적] 향판의 세계와 스폰서
  • 강휘호 기자
  • 입력 2014-03-31 11:14
  • 승인 2014.03.31 11:14
  • 호수 1039
  • 22면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허재호 황제노역 파문 ‘그들만의 리그’ 밝히는 열쇠?
▲ <뉴시스>

뉴질랜드선 백만장자 부호, 돌아오니 돈 없어 노역
지역 기업의 힘…누구도 제재할 수 없는 슬픈 현실

[일요서울 | 강휘호 기자] 허재호 전 대주그룹 회장의 노역 일당 5억 원, 황제 노역 파문이 닷새 만에 제자리로 돌아왔다. 검찰은 논란이 된 허 전 회장의 노역을 중단하고 풀어주는 동시에 그의 재산을 찾아내 벌금을 강제로 거두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이번 파문은 여기서 끝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허 전 회장의 숨겨진 실체가 속속들이 들어나고 있고, 그의 배후가 여전히 의혹을 남길 만한 요소들로 둘러싸여 있기 때문이다.

허 전 회장이 노역을 중단하고 전남 광주교도소를 나온 것은 지난 26일 밤 10시. 이로써 허 전 회장은 벌금미납자지만 자유로운 신분이 됐다. 다만 허 전 회장이 출국금지 상태인 것을 감안했을 때 앞으로 검찰의 강도 높은 수사가 진행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또 검찰은 당분간 허 전 회장의 국내 은닉 재산을 찾는 데 주력할 방침이다. 현재 허 전 회장 딸의 집에서 압수수색으로 확보한 미술품 115점, 골동품 26점에 대한 감정을 의뢰한 상태다. 허 전 회장은 지난해 아내가 사망하면서 수십억 원대 부동산을 상속받은 사실도 확인됐다.

그러나 검찰의 이 같은 결정은 여론에 떠밀린 모양새가 강하게 엿보인다. 당초 일당 5억 원이라는 판결이 어떻게 나오게 된 것인지 역시 당시 재판 기록을 뒤져봐도 이해하기 힘든 부분들이 많다.

재판부는 1심에서 횡령 및 탈세 등 혐의를 받은 허 전 회장에게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 벌금 508억 원을 선고했다. 또 벌금을 내지 않을 경우 1일 2억5000으로 환산해 노역장에 유치하도록 결정했다. 허 전 회장은 203일만 노역하면 벌금을 탕감 받을 수 있었다.

더욱 놀라운 것은 2010년 1월 광주고법 제1형사부가 지난 2010년 1월 허 전 회장에 대한 항소심에서 징역 2년 6월에 집행유예 4년, 벌금 254억 원으로 형을 줄였다는 부분이다. 이때 노역장 유치 환산금액은 5억 원으로 두 배가 올랐다. 그리고 당시 재판부가 밝힌 판결 근거는 조세포탈과 관련해 허 전 회장이 자수를 했다는 것이었다. 당연히 자수를 했으니 노역 일당이 5억 원이라는 계산은 바로 수긍하기에 무리가 있었다.

자연스럽게 형성되는 정경유착

많은 이들은 이러한 의혹을 지역 법관제 즉, 향판 제도의 문제점으로 보고 있다. 향판제란 지역 사정에 밝은 판사들이 해당 지역에 안정적으로 머물며 재판할 수 있도록 한 제도다.

더욱이 당시 1심과 2심 재판의 재판장 모두 향판이었고, 허 전 회장 등의 변호사 중 상당수가 향판 출신이었다는 점은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허 전 회장 일가도 지역의 유력한 법조계 인사로 파악된다. 부친이 광주·전남 지역에서 37년간 판사 생활을 한 향판이고, 매제는 광주지검 차장검사로 재직한 적이 있다. 사위는 현직 광주지법 판사로 재직 중이다. 결국 향판들이 벌인 짜고 치는 고스톱이라는 지적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말이다.

한술 더 떠 동생은 전·현직 판사들의 골프모임인 법구회의 스폰서 역할을 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이와 같은 의혹이 진실로 밝혀진다면 정경유착의 실태가 고스란히 만천하게 드러나게 되는 상황이다.

[일요서울]의 취재결과 이러한 의혹을 뒷받침하는 증언들을 다수 들을 수 있었다. 광주지역 법조계에 몸담고 있는 한 관계자는 “허 전 회장의 동생이 전·현직 판사들과 실제로 친하게 지냈던 사실이 있다”고 밝혔다. 다만 “법구회라는 조직은 서울과 경기도 지역 판사들이 대부분인 것으로 보인다”고 선을 그었다.

향판의 문제점을 수년간 추적 중이라는 광주지역 경제단체의 한 관계자의 말은 더욱 자세했다. 그는 “지역 기업들의 경우 향판들과 마주치는 일이 부지기수다”라며 “재판으로만 해도 그들은 수년, 수십 년 동안 알고지내면서 유착관계를 맺는다”고 말문을 열었다.

그리고 그의 설명에 따르면 이러한 백태는 해당 시에서도 눈감아 줄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지역 기업들이 각종 행사 등에 후원을 넣고 스폰서를 자처하는데 이를 포기할 수 없는 관공서들이 생겨나면서 자연스럽게 정경유착이 만들어지는 구조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선 “당연히 기업 편에 선 판결, 지역유지와 같은 부호들이 죗값을 치르지 않는 현실이 불가피하다”고 덧붙였다.

정리해보면 향판들의 세상은 그들만의 리그였고, 황제 노역 논란은 이를 눈감아 줄 수밖에 없는 정부기관의 현실과 도덕적 해이에 물든 사회가 만들어낸 공동작품인 셈이었다.

더군다나 실제 이러한 일은 알려지지 않았을 뿐, 허다하게 널려 있다. 광주정의실천시민연합은 “5억 노역 판결을 내린 장병우 광주지방법원장의 사법권을 초과하는 판결은 결코 처음이 아니다”라고 반박한다.

아울러 그들은 “광주시 매곡동 내 신세계·이마트 입점관련 소송과 관련해 장 지법원장은 ‘사익이 공익보다 우선한다’는 논리를 통해 대형마트 입점이 정당하다는 논리를 이끌었다”며 “대부호인 기업의 편들기 판결이라는 심각한 지적에 직면해 있다”고 비판한다.

사법부의 역할과 한계를 넘어선 반복적인 기업 편들기가 단순히 현 지법원장의 개인적 문제를 넘어 사법부의 불신과 국가에 대한 시민들의 신뢰 붕괴를 일으키고 있는 실정이라는 뜻을 분명하게 밝힌 것이다.

또 지난달에는 대구의 사업가인 방모씨가 아무도 모르게 황제노역을 마치고 세상에 나왔다. 세금을 포탈한 혐의로 기소돼 지난해 초 징역 2년 6개월에 집행유예 4년, 벌금 60억 원의 형이 대법원에서 확정됐다. 하지만 벌금 60억 원 대신 일당 2000만 원 노역으로 벌금을 탕감하고 지난달 출소했다. 일반인의 환형유치 금액이 평균 5만 원인 것을 감안하면 400배가량 많은 벌금을 탕감 받은 것이다. 황제노역이 어제오늘일이 아님을 짐작하게 하는 대목이다.

한편 허 전 회장과 관련해 그가 도망쳤던 뉴질랜드에서의 생활도 관심이 집중된다. 검찰과 국세청도 뉴질랜드로 눈을 돌리고 있다. 오클랜드 카지노 브이아이피(VIP)룸에서 게임을 즐기는 모습은 한겨레신문을 통해 이미 보도된 바 있다.

뉴질랜드 회사등록사무소에 따르면 허 전 회장 일가가 지분 대부분을 갖고 있거나 이들이 출자한 사업체가 소유주로 돼 있는 사업체 수는 14개다. 아들이 지분 100%를 가진 KNC 건설, 허재호 전 회장이 46%를 가진 KNC 건설엔지니어링, 아들이 85%를 가진 KNC 글로벌 매니지먼트 CO, 허 전 회장이 100%를 가진 가나다 개발 오클랜드 등이다.

현지에서는 “허 전 회장은 한국에서 온 백만 장자 대부호다”, “오클랜드의 땅은 웬만하면 허 전 회장의 소유다”라는 소문까지 떠도는 것으로 알려졌다. 진실 여부에 귀추가 주목된다.

hwihols@ilyoseoul.co.kr

강휘호 기자 hwihols@ilyoseoul.co.kr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