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나 성폭행 당했어” 딸 말 한마디에 흉기 휘두른 父
“아빠 나 성폭행 당했어” 딸 말 한마디에 흉기 휘두른 父
  • 이지혜 기자
  • 입력 2014-03-31 10:49
  • 승인 2014.03.31 10:49
  • 호수 1039
  • 17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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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의 복수” vs “억울한 죽음” 19세 소년 죽음을 둘러싼 진실 공방
▲ <뉴시스>

박씨, 경찰 신고 없이 딸 말만 듣고 흉기로 A군 찔러
A군 유족 측, “합의하에 가진 관계…박양이 돈 요구” 주장

[일요서울 | 이지혜 기자] “아빠 나 성폭행 당했어”라는 딸의 말 한마디에 살인을 저지른 아버지가 경찰에 구속됐다. 전북 군산에 살고 있던 박모(49)씨는 애지중지 키우던 딸(15)이 성폭행을 당했다는 말을 듣자 격분해 용의자로 지목된 상대방 A(19)군을 흉기로 찔러 죽였다. 이 같은 내용이 보도되자 누리꾼들 사이에서는 ‘피의 복수’라며 “이해한다”는 분위기가 팽배했다. 그러나 경찰 조사 과정에서 A군과 딸이 주고받은 SNS에 강압적인 성관계에 대한 내용이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A군의 죽음을 둘러싼 진실공방을 파헤쳐봤다.

“법이 성폭행범에게 관대하니 부모가 직접 나선 것이다.”, “이해한다. 나라도 그랬을 것이다.”, “아버지는 무죄.”

지난 25일 딸을 성폭행한 용의자를 흉기로 찔러 살해한 아버지에 대한 언론 보도가 처음 나왔을 당시 누리꾼들은 ‘당연한 조치’라며 경찰에 살인죄로 구속된 박모(49)씨를 옹호했다. 일각에서는 ‘피의 복수’라는 반응도 보였다. 그러나 단 하루 만에 상황은 역전됐다.“두 사람은 연인관계다. 합의하에 성관계를 맺은 것으로 여자애가 거짓말을 했다”는 남학생 측의 반박 글이 올라온 것이다. 또 경찰 조사에서 강압적인 성관계에 대한 증거가 없다는 것으로 드러났다. 어떻게 된 것일까.

경찰 신고 없이 찾아가 준비한 흉기 휘둘러

지난 25일 전북 군산경찰서에 자신이 사람을 죽였다며 한 남성이 찾아왔다. 그 사람은 바로 박씨.

그는, 이틀 전 딸(15)의 SNS에서 이상한 대화를 발견했다고 했다. 같은 학교에 다니는 A(19)군과 딸이 나눈 대화에 성관계에 대한 내용이 있었던 것이다. 이에 박씨는 딸에게 어떻게 된 일이냐고 물었고 딸은 “A군에게 성폭행을 당했다”고 털어놓았다.

금쪽같은 딸이 성폭행을 당했다는 이야기를 듣자 격분한 박씨는 경찰에 신고하지 않은 채로 A군을 만나러 갔다. 박씨는 A군에게 성폭행 사실에 대해 추궁했고 A군이 이를 부인하면서 다툼이 생기자 박씨가 미리 준비해 간 흉기를 A군에게 휘둘렀다.

“흉기를 든 남성이 학생과 싸운다”는 신고를 접수하고 현장에 출동한 경찰이 A군을 병원으로 옮겼지만 끝내 숨졌다. 현장에서 도망친 박씨는 1시간 뒤 스스로 경찰에 출두해 범행을 자백했다.

그러나 다음날 웹 사이트에 ‘딸이 성폭행 당했다고 죽임을 당한 남자의 누나입니다’라는 글이 게재되면서 ‘보복 살인’으로 알려졌던 사건은 ‘진실공방’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여자애가 꽃뱀…억울한 내 동생 살려내”

“저는 성폭행 용의자로 지목돼 피해자의 아버지에게 칼로 죽임을 당한 남자애 누나의 친구입니다”로 시작되는 이 글은 A군의 억울함을 주장했다.

글쓴이는 피해자의 친 누나가 직접 글을 작성할 상황이 아니라서 부탁으로 자신이 대신 글을 쓰게 됐으며, 모두 사실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글쓴이는 “현재 군산 성폭행범 살인기사의 기사 내용은 모두 잘못된 내용”이라며 “그 여자애와 동생은 사귄 지 2주 정도 된 사이였다. 사귀는 중 여자애가 동생에게 먼저 성관계를 하자고 했다”고 말했다. 이 내용은 모바일 메신저에서 확인 한 것이라고도 명시했다.

글쓴이는 두 사람이 합의 하에 성관계를 맺었고 그 후 박양이 A군에게 돈을 요구했다고 주장했다. A군이 돈을 주지 않자 박양이 자신의 어머니에게 성폭행 당했다고 말을 했다는 것. 박양의 어머니에게서 그 이야기를 들은 아버지 박씨는 박양의 메신저 대화 내용을 통해 두 사람이 성관계를 맺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고 한다. 글쓴이는 “박씨가 확인한 카톡내용은 여자애가 동생에게 성관계를 먼저 요구한 내용과 동생에게 금품을 요구한 내용이 아닌 나머지 내용”이라며 “현재 메신저 내화 내용은 경찰에 넘어간 상태”라고 말했다.

일이 커지자 겁이 난 박양이 성폭행을 당했다며 거짓말을 했고, 이에 화가 난 박씨가 지난 24일 오후 10시께 군산시 미룡동의 어느 치킨집(A군이 알바 하던 장소)에서 박양을 시켜 메신저로 A군을 불러냈다. A군이 나오자 박양의 어머니가 A군의 뺨을 때렸고 A군이 “이게 뭐하는 짓이냐”라고 반항을 하자 박씨가 미리 준비해둔 칼로 A군의 등을 무자비하게 찔렀다는 것이다.

글쓴이는 “세상물정 모르는 한 어린 여자애의 꽃뱀같은 짓으로 동생은 억울하게 이 세상을 떠났다. 동생은 절대 성폭행범이 아니다”라며 “아버지란 사람 또한 성폭행범으로 착각한들 딸 말만 듣고 미리 준비한 칼로 찌르다니..정말 너무하다”고 토로했다. 그는 이어 “현재 부모님은 정신도 차리지 못하고 12살 막내가 상주노릇을 하고 있다”며 “모든 기사에서 친구 동생을 성폭행범으로 만들고 동생을 죽인 미친놈을 찬양하고 있다. 정말 억울하다”고 주장했다.

성폭행 유무가 관건

‘군산 성폭행범 살인 사건’은 ‘보복 살인’인가 ‘억울한 죽음’인가. 이 문제의 열쇠는 A군의 성폭행 사실에 있다. A군이 박양을 성폭행한 것이 사실이라면 박씨는 딸의 복수를 한 셈이지만, A군이 성폭행을 한 적이 없다면 A군 유가족 측의 주장대로 ‘박양의 꽃뱀 행동으로 억울한 죽음’이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성폭행 유무와는 상관없이 박씨의 살인 혐의는 용서받을 수 없는 큰 죄다.

박씨는 박양의 휴대전화 메신저에서 성관계를 암시하는 대화 내용을 보고 박양을 추궁했다. 그러나 해당 사건을 수사 중인 군산 경찰서는 대화 내용을 확인한 결과 강압적인 성관계에 대한 내용은 없었다고 밝혔다. 두 사람이 성관계 관련 대화를 주고받은 것이 맞지만, 강압적인 분위기는 아니었다는 것이다. 경찰 관계자는 “현재 박씨의 살인 혐의와는 별도로 성폭행 사실에 대해서도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며 “자세한 내용은 수사가 끝나야 알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jhooks@ilyoseoul.co.kr

이지혜 기자 jhooks@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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