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제복지원과 얽힌 5명의 사람들
형제복지원과 얽힌 5명의 사람들
  • 오두환 기자
  • 입력 2014-03-31 10:32
  • 승인 2014.03.31 10:32
  • 호수 1039
  • 15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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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유린한 사람과 수사·판결한 사람 그리고 진실을 요구하는 사람들
▲ 행복복지원사건 특별법 입법 청원 기자회견 <뉴시스>

특별법 발의와 함께 사건 진상 요구
피해자·유족에게 지원금·위로금 지급해야

[일요서울 | 오두환 기자] 전 국민을 충격 속으로 몰아넣은 형제복지원 사건은 이제 새로운 전기를 맞게 됐다. 사건 당시 울산지청 소속 검사였던 김용원 변호사의 수사와 1인 시위와 함께 사건 진상을 담은 책을 발간한 한종선씨는 이 사건이 재조명 받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이제 특별법 발의와 함께 ‘진실규명의 공’은 정부로 넘어갔다. [일요서울]에서는 형제복지원과 얽힌 주요 인물들의 활동내용을 분석해 봤다.

형제복지원 운영자 박인근 원장

형제복지원 운영자 박인근(84) 원장은 7차례 재판 끝에 1989년 대법원에서 징역 2년6월(횡령죄)의 처벌만 받았다. 업무상 횡령, 초지법 위반, 외환관리법 위반만 인정됐다. 전두환 정권의 압력으로 폭행, 살인 혐의는 기소조차 못했고 원생 감금에 대해서는 ‘내무부 훈령 410호에 근거한 정당한 직무수행’이라며 무죄 판결이 났다.

형제복지원은 이후 형제복지원재단으로 개명했으며, 매년 정부로부터 약 10억 원의 지원을 받아 왔다. 박씨는 지난 2011년까지 이사로 활동했다. 현재는 3남 박천광 씨가 운영하고 있다.

박씨는 현재 부산 기장 장애인 아동시설 ‘실로암의 집’, ‘대안학교 복지원’, ‘빅월드 스포츠 센터’, ‘사상 해수욕장 사업부’, ‘피부 과학연구소’를 운영 중이며, ‘부산 신영중고등학교’와 기숙시설인 ‘샘터학교’의 이사장을 맡고 있다. 실로암교회 장로와 부산지역 기독교신문 ‘교회복음신문’의 대표이사직도 맡고 있다. 신영중고등학교 원장은 그의 딸이다.

형제복지지원재단 자료집에 따르면 1981년 4월 보건사회부 장관이 추천한 국민포장을, 1984년 전두환 대통령으로부터 국민훈장 동백장까지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에는 부산저축은행 사태에서 무담보로 대출 받아 논란이 되기도 했다. 대출받은 금액은 형제복지지원재단 118억, 박인근 117억, 사위 김모 씨 127억, 김모 씨의 누나 79억이다.

한편 박씨는 현재 뇌출혈로 거동을 하지 못하고 치매증세가 있어 사람조차 알아보지 못할 정도인 것으로 알려졌다.

사건 파헤친 검사 김용원 변호사

부산 형제복지원사건은 당시 울산지청 소속 검사였던 김용원 변호사(현 법무법인 한별 대표·59)가 우연한 기회에 얻은 ‘첩보’로 시작됐다. 김 변호사는 당시 수사상황을 기초로 1993년 ‘브레이크 없는 벤츠’라는 책까지 펴냈다.

김 변호사는 1986년 12월 울산에서 알게 된 한 사냥꾼으로부터 “여기서 멀지 않은 산 속에 이상한 작업장이 있다. 인부들이 산을 깎는 작업을 하는데 경비원들이 몽둥이를 들고 지킨다. 경비원들이 인부들을 개 패듯이 패는 것을 몇 번 보았다. 커다란 개 여러 마리가 인부들을 지킨다”라며 당시의 제보 상황을 책 속에 고스란히 적어뒀다. 김 변호사는 제보와 함께 곧장 그 작업장(울주)으로 달려가 현장을 확인했다.

김 변호사는 원래 박 원장에 대해 ‘징역 20년’을 구형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검찰총장 등 ‘윗분들’은 ‘징역 15년’ 혹은 ‘징역 10년’을 그에게 요구했다. 박 원장의 횡령액수도 11억여 원에서 6억여 원으로 축소해야 했다. 대검으로부터 “횡령액수를 7억 원 이하로 하라”는 명령이 내려왔기 때문이다.

1987년 6월, 김 변호사는 박 원장에게 징역 15년과 벌금 6억여 원을 구형했고, 1심 재판부는 징역 10년과 벌금 6억여 원을 선고했다. 하지만 항소심에서 박 원장의 형량은 점점 줄어들었다.

박 원장 무죄 선언 김용준 전 헌법재판소장

박 원장에게 무죄를 선고한 판사가 바로 김용준 전 헌법재판소장이다. 김 전 헌법재판소장은 유신정권 시절인 지난 1975년 12월 15일에 제정된 ‘내무부 훈령 제410호’를 근거로 박 원장 등의 감금죄에 무죄를 확정했다. ‘내무부 훈령 제410호’는 ‘부랑인의 신고, 단속, 수용, 보호와 귀향 및 사후관리에 관한 업무처리지침’을 가리킨다.

김용원 변호사는 이 훈령을 “걸인과 껌팔이 등 부랑인은 연고자가 나타날 때까지 복지원 같은 시설에 무기한 감금해둔다는 것”이라고 요약하면서 “부랑인이 아닌데도 부랑인 취급을 당해 감금된 사람들을 위한 대책을 마련하지 않고 있다”는 문제점이 지적됐다.

하지만 결국 김 전 헌법재판소장은 인권침해가 충분한 훈령을 근거로 박 원장 등의 감금죄를 인정하지 않았다. 김 전 헌법재판소장은 지난해 국무총리 후보로 거론되기도 했다.

피해자이자 수용자 한종선씨

한종선씨는 누나와 함께 1984년부터 1987년까지 부산 형제복지원에 수용됐었다. 한부모 가정이었던 한씨는 아버지가 파출소에 작은 누나와 함께 인계를 해 형제복지원에 들어가게 됐다. 시설에 가면 국가가 지원해주니 좋은 것 입을 수 있고 혼자서 키우는 것보다 맡기는 게 낫다는 말을 듣고 아버지가 시설에 맡긴 것이다.

한씨는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그 안에서 일단 먹을 게 너무 없어요. 지네나 솔방울, 솔잎, 그냥 꽃처럼 열리는 것 대부분 다 따먹습니다”라고 전했다. 또 그는 “성폭행 같은 경우에는 진짜 너무 비일비재했다”며 “힘센 형들이나 경비들이나 조장들, 이런 사람들이 있죠. 소대장들하고. 그런 사람들이 나이 어린 아이들 상대로 많이 했었죠”라고 전했다.

사실 형제복지원 사건이 지금 이렇게 이슈가 된 것은 한씨 덕분이다. 한씨가 2012년 5월부터 2013년 2월까지 1인 시위를 하면서 재조명됐기 때문이다.

한씨는 2012년 전규찬 한국예술종합학교 미디어영상학부 교수가 기획하고 박래군 인권재단 소장과 함께 쓴 책 ‘살아남은 아이’를 통해 복지원에서 자행된 고문과 구타, 성폭행 등의 인권유린 상황을 고발했다. 현재 한씨는 형제복지원사건 진상규명을 위한 대책위원회 피해생존자모임 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특별법 발의한 진선미 의원

진선미 의원은 27년 동안 묻혀 있던 형제복지원 사건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법을 발의했다. 발의안에 따르면 진 의원 측은 국무총리실 산하에 형제복지원 진상규명위원회를 설치해서 2년 동안 피해자나 유족들의 신고나 진상규명위원회 인지조사를 통해 사건의 진상을 밝힐 것을 요구하고 있다. 또 피해자나 유족으로 인정된 사람들에 대해 배상을 하거나 생활지원금, 후유장애에 대한 위로금 지원도 요청하고 있다.

freeore@ilyoseoul.co.kr

오두환 기자 freeore@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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