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적절한 관계’는 탈나기 마련
‘부적절한 관계’는 탈나기 마련
  • 이인철 
  • 입력 2004-04-22 09:00
  • 승인 2004.04.22 0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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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짓을 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죄송합니다.”아들의 담임교사와 ‘잘못된 만남’을 갖고 이를 빌미로 금품을 뜯어내려던 40대 여성이 경찰에서 후회의 눈물을 흘렸다. 대구지방경찰청 기동수사대는 지난 6일 아들의 담임 선생님과 성관계를 갖고 이를 미끼로 돈을 뜯은 혐의(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로 권모(46·여)씨와 권씨의 오빠(61) 등 2명을 검거했다. 한 차례의 부적절한 관계로 인해 빚어진 ‘학부모의 담임교사 협박사건’ 내막을 들여다보았다. 경찰에 따르면 권씨와 아들의 담임교사였던 이모(49)씨의 잘못된 만남은 지난 2월 빚어졌다. 지난해 여름 같은 반 학생에게 폭행을 당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권씨가 담임이었던 A씨에게 전화를 걸어 도움을 요청한 것.

상담차 만났다 부적절한 관계 가진 게 빌미

가해자측 학부모와 원만한 해결이 이루어지지 않자 권씨는 교사 A씨를 만나 이를 상의할 계획이었다. 두 사람은 학부형과 교사의 자격으로 만났지만, 대화를 나누다 우연찮게 눈이 맞고 말았다. 결국 팔공산 인근의 모 여관으로 자리를 옮겨 성관계를 가진 것. 그러나 이 일은 두 사람에게 큰 고민거리를 안겨다 주었다. ‘해서는 안될 일을 했다’는 죄책감에 짓눌린 것. 교사 이씨는 제자의 얼굴을 볼 수 없었고 권씨도 ‘선생님이 평소 자신을 아끼고 사랑해준다’고 고마워하던 아들에게 얼굴을 들 수 없었다. 이에 권씨는 하루하루를 마치 가시방석에 앉은 것처럼 근심 속에 살아갔다.

하지만 권씨의 오빠가 개입되면서 이 일은 엉뚱하게 흘러갔고 더 큰 문제를 야기했다. 우연히 동생의 근심 어린 표정을 본 오빠 권씨가 “걱정거리가 있냐”며 “무슨 일이냐”고 물은 게 화근이었다. 오빠의 계속된 물음에 권씨는 그 동안 가슴속에 묻고 있던 속사정을 털어놓고 도움을 요청했다. 그러나 곳곳에 부채가 널려있어 이를 갚을 길이 없어 고민하던 권씨 오빠는 내심 쾌재를 불렀다. 특히 당장 빚을 갚기 위해 3,000여만원이 필요했던 터라 오빠 권씨가 이를 더 없이 좋은 돈벌이 기회라고 판단한 것. 그는 동생에게 “내가 하는 대로만 하면 네게 돈을 주겠다”며 “선생에게 5,000만원을 요구하자”고 제안했다. 그러나 권씨는 “나도 좋아서 한 것이니 그러면 안된다”고 말렸다. 또 5,000만원은 너무 심하다고 거절했다. 하지만 “내가 시키는 대로 하라”는 오빠 권씨의 강요를 이기지 못해 결국 동참하고 말았다.

‘내 잘못이다’뒤늦은 후회

이 때부터 두 사람은 교사 이씨에게 “당장 5,000만원을 내놓으라”는 협박을 가하기 시작했다. 성관계를 가진 것만으로도 힘겨워하던 이씨는 돈도 돈이지만, 자신의 30년 교직생활에 큰 불명예를 남기게 되는 것이 괴로웠다. 4차례의 거듭된 협박에 견디다 못한 이씨는 돈을 마련해 건네주는 것으로 이 일을 정리하기로 결정했다. 이에 이씨는 형에게 전후사정을 말한 뒤 5,000만원을 빌렸고 권씨에게 ‘5일 돈을 건네주겠다’고 약속을 했다. 그러나 이씨의 말을 듣고 난 후 돈을 빌려주었던 형은 생각이 달랐다. 그들이 또 다시 돈을 요구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 경찰에 약속장소를 신고했다. 경찰이 현장에 도착했을 때는 양측이 이미 돈을 주고받고 권씨 오빠가 ‘더 이상 돈을 요구하지 않겠다’는 각서를 쓴 뒤였다.

경찰의 추궁에 권씨의 오빠는 ‘돈을 받은 일이 없다’며 강력히 부인했지만 죄책감에 시달려왔던 권씨가 순순히 모든 것을 털어놨다. 권씨는 경찰조사에서 “내 잘못이 크다”며 “그런 접근 안했어야 했는데 선생님에게 죄스럽다”고 울면서 뒤늦게 후회했다. 또 “아들이 ‘선생님에게 나쁜 일을 저지른 것이 아니냐’고 물어 고개를 들 수가 없다”고 실토했다. 교사 이씨도 경찰에 “사표를 내야하지 않겠느냐”고 반문하며 “교육자로서 가책을 느낀다”고 말했다. 그는 또 “그 동안 그 아이에게 관심을 가져왔고, 그 아이도 나를 잘 따랐다”며 “모르는 사이도 아니고 죄지은 사람같아 가슴이 아팠다”고 고백했다. 결국 한 번의 잘못된 만남이 학부모와 교사 그리고 사제간의 관계를 엉뚱하게 만들어 버렸다. 한편 경찰은 권씨 남매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했지만, 검찰은 권씨의 오빠에게 대해선 죄질이 나빠 구속했고, 동생 권씨는 오빠의 강요에 의해 한 것으로 판단 불구속했다.

이인철  chlee@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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