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너 불참은 당연…시나리오대로 30분 내 속전속결
재직자ㆍ기관투자가로 채운 주총장…관전포인트 실종
[일요서울 | 김나영 기자] 일명 ‘주총데이’로 불리는 매년 3월 둘째 주와 셋째 주 금요일. 이날 상장회사의 정기 주주총회 몰림 현상이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 기업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일정을 몰아붙이며 주총장을 임직원 등 거수기들로 채웠다. 한 기업의 의사를 결정하는 주총이 소액주주들의 의결권을 원천봉쇄하는 형식적인 의례로 전락하고 있는 것이다.
해마다 3월 2~3주에는 각 상장사들의 주총이 몰려 있다. 그중에서도 올해는 지난 14일과 21일 주총을 연 기업이 각각 118곳, 662곳으로 총 778곳에 이른다. 이는 전체 상장사 1761곳의 44%에 달해 양일 모두 ‘슈퍼주총데이’라는 별명이 무색하지 않을 정도다.
문제는 주총 대부분이 같은 날, 같은 시간에 열리는 데다 일사천리로 진행되는 탓에 소액주주들은 몸이 열 개라도 참여가 힘들다는 점이다. 올해도 각 상장사들의 주총이 열린 날짜와 시간은 어김없이 14일과 21일 오전 10시로 똑같은 데 이어 평균 30분 안팎의 속전속결을 자랑했다.
실제로 삼성의 경우 17개 상장사 전체가 14일에 주총을 열었으며, 현대차그룹과 LG그룹도 2곳을 제외한 상장사 전부가 이날 주총을 진행했다. 이중 삼성전자의 주총은 45분 만에 끝났으며 현대차는 25분, LG전자는 20분 만에 주총이 종료됐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오너 일가의 등기이사 선임과 이사보수 한도 조정 등 다수 민감한 이슈들도 큰 이변 없이 시나리오대로 통과됐다. 삼성은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이 등기이사로 재선임됐고, 현대차는 정몽구 현대차 회장과 정의선 현대모비스 부회장, LG는 구본준 LG전자 부회장 등이 재선임됐다.
이들 모두가 주총에 참여한 것도 아니다. 현대차의 경우 정몽구 회장과 정의선 부회장 부자가 나란히 불참했다. 특히 LG의 경우 구본준 부회장은 LG전자의 대표이사로 돌아온 된 2011년부터 현재까지 주총에 한 번도 참석한 적이 없다. 유일하게 삼성의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이 주총에서 의장으로 3년째 참석하는 데 대해 ‘놀랍다’는 반응이 나올 만하다.
이에 반해 회장들이 구속ㆍ석방ㆍ재판 중인 SK·한화·CJ그룹은 21일 일제히 등기이사 명단 바꾸기에 바빴다. 실형 선고를 받은 최태원 SK 회장은 모든 계열사 등기이사직에서 물러났다. 석방된 김승연 한화 회장과 재판 중인 이재현 CJ 회장도 지주사 및 계열사 등기이사직에서 공식적으로 이름을 내렸다.
기회 뺏긴 소액주주들
주요 대기업 주총장에 온 주주들은 대부분 해당기업 재직자거나 기관투자가들로 짧은 시간 내 거수기 역할만 하고 사라지는 모습을 보였다. 게다가 재직자들은 같은 건물 내 사무실에서 근무하다가 잠시 주총장에 얼굴을 내밀고 자리를 채웠다가 돌아가는 양상이 뚜렷했다.
물론 이들도 실제 주주이기 때문에 주총장에 참석한 것이라는 항변도 있다. 그러나 회사의 녹을 먹는 입장인 임직원이 주총에 참석해 날카로운 질의를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로 인해 상장사들이 일부러 소액주주의 참여 자체가 어렵도록 일정을 짜고는 임직원으로 빈 자리를 대체한다는 지적이 나오기도 했다.
이러한 사정은 기관투자가들도 마찬가지다. 현재 대다수 국내 기관투자가들은 투자대상에 대해 갑이 아닌 을의 입장에서 투자를 진행하고 있다. 최근 국민연금이 새로운 의결권 행사지침으로 주목받고 있지만 아직은 이렇다 할 의결권을 행사하는 기관투자가를 찾아보기 힘든 것이 현실이다.
사실 이와 같은 슈퍼주총데이가 생겨나고 주총이 겹치는 근본적인 이유는 사업보고서 제출기한 규정의 탓도 크다. 자본시장법은 상장회사의 사업보고서 제출 기한을 사업연도 종료 이후 90일 이내로 한정하고 있다. 이 사업보고서에는 배당금이 기재돼 있어야 하는데 배당금액은 주총에서 승인을 받아 결정된다.
종합하자면 주총이 열려 배당금액이 승인되어야만 사업보고서를 제출할 수 있는 형태가 그려진다.
12월 결산법인의 경우 3월 말까지 결산부터 외부감사, 주총 소집 및 개최를 숨가쁘게 진행해야 한다. 결국 주주들의 의견을 반영해 기업의 과거를 짚고 미래를 결정하는 주총의 본래 의미 따위는 무시되는 형국이다.
이외에도 별다른 반대의견 없이 통과되는 주총 안건을 뜯어보면 그 자체로도 문제가 많다는 분석이 나와 이목을 집중시켰다. 한국기업지배구조원에 따르면 일부 상장사들은 이사 보수한도와 관련한 안건에서 사실상 보수를 늘리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를테면 이사회 규모를 줄이면서 보수한도 총액을 일부분 축소한 후 다시 총액을 증액하는 식이다. 게다가 퇴직임원에 대한 보상도 후해지면서 이에 대한 비용도 증가하고 있어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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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나영 기자 nykim@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