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체추적] KT ENS 협력업체 대출사기 간부 그들의 이중생활
[실체추적] KT ENS 협력업체 대출사기 간부 그들의 이중생활
  • 강휘호 기자
  • 입력 2014-03-24 13:38
  • 승인 2014.03.24 13:38
  • 호수 1038
  • 28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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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에는 성공한 사업가 밤에는 ‘킹 오브 가라오케’

 별장·명품·외제차는 기본…VIP룸에서만 도박
내연녀에겐 ‘통 큰 남자’ 행세…수십 억 원 선물 펑펑

[일요서울 | 강휘호 기자] KT ENS 협력업체 대출 사기의 주동자들은 빼돌린 돈 3000여억 원을 가지고 대체 어디에 썼을까. 그 엄청난 실체가 밝혀졌다. 그들은 값비싼 명품을 몸에 두르고 외제차를 타는 것을 기본으로 알았고, 최고급 별장을 지어 신선놀음을 하기 바빴다. 이것으로도 모자랐는지 내연녀에겐 수십 억 원에 이르는 선물을 공수하며 ‘통 큰 남자’ 행세를 했다. 밤에는 더 대단하다. ‘킹 오브 가라오케’로 변신해 유흥을 즐기는 것으로 밤을 지새웠다. 그들의 이중생활을 [일요서울]에서 파헤쳐봤다.

그야말로 흥청망청 난봉꾼이었다. 돈을 쓴 사용처를 보면 양심에 구멍이 났다는 말이 딱 들어맞는다. 희대의 대출 사기꾼이었지만 내연녀에게는 ‘통이 큰 오빠’였고, 유흥업계에선 ‘킹 오브 가라오케’, 쇼핑할 땐 호화 별장을 가진 ‘명품족’이었다. 남의 돈으로 하루 24시간이 모자랄 정도로 바쁘게 살았던 것이다.

실제 경찰 조사 결과를 살펴보면 부당 대출금을 빼돌린 혐의를 받고 있는 KT ENS 협력업체 엔에스쏘울 대표 전모(51·수배 중)씨와 중앙티앤씨 서모(44·구속)씨가 초호화판 생활을 해온 흔적이 역력하다. 이들은 1조 8000억 원 규모의 부당 대출을 받고 이 가운데 3000억 원가량의 돈을 뒷주머니에 챙긴 것으로 드러났다.

우선 서씨와 해외 도피 중인 전씨가 개인용도로 쓴 금액은 각각 311억 원, 560억 원 정도로 추산된다. 인천 부평에 있는 175억 원짜리 대규모 창고를 공동명의로 사들여 자신들의 사업에 사용했다. 서울 양천구 목동에 있는 100억 원 상당의 건물도 동시에 매입했다. 거칠 것 없는 행보였다.

개인별로는 서씨가 충북 충주에 부친 명의로 별장을 지어 놓고 호화 생활을 한 것이 밝혀졌다. 해당 별장은 지하 2층, 지상 2층 규모로 수영장과 족구장, 노래방 시설까지 완비한 최고급 별장이다. 홈 바는 물론 벽난로도 설치돼 있었다.

나아가 전씨는 판교에 15억 원짜리 고급 빌라를 구입해 이를 내연녀에게 선물했다. 280억 원을 들여 상장회사를 인수하고, 대출 수수료와 사채 이자로만 360억 원을 쓴 사실도 있다. 다만 전씨의 거취는 남태평양의 바누아투공화국까지 도피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경찰의 설명을 들어보면 더욱 가관이다. 서씨는 이번 사건의 핵심 인물인 전씨, 그리고 동시에 연루된 금융감독원 자본시장조사국 김모씨와 해외골프는 물론 호화술판, 도박판을 전전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실체 알수록 가관

수사를 진행한 한 경찰 관계자는 “지인들, 회사 간부들과 함께 고급 유흥업소를 엄청나게 들락거렸다. 모두가 외제차를 끌고 명품을 사용하는 건 예삿일이었다”며 “마카오로 원정도박을 떠나기도 했는데 무조건 VIP룸을 이용할 만큼 돈을 펑펑 써댔다”고 밝혔다.

또 최고급 별장도 단순하게 생각할 수준이 아니라고 말한다. 관계자는 “단순 별장이 아니라 대리석과 목재, 마감재 등도 최고급으로 사용하는 등 초호화 별장으로 인테리어에만 12억 원이 들어갔다”고 덧붙였다.

이 외에도 서씨를 둘러싸고 현찰을 수천만 원씩 가지고 다니기도 했다거나 술자리에서 수백만 원에 이르는 팁을 줬다는 등 밤에 벌어진 일화도 많이 드러났다. 일각에선 술값을 계산할 때 잔돈은 받지 않는 사람으로 유명했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이번 사건에 연루된 또 다른 인물인 조모 모바일꼬레아 대표는 경찰 조사에서 “총액 538억 원을 대출받아 (전 대표 등에게) 전달해 수수료 명목으로 2억9000만 원을 받았다”고 진술하기도 했다.

달아난 전씨의 행방

실체를 알면 알수록 놀라움의 연속이다. 그러나 경찰은 범죄를 저지른 혐의로 KT ENS의 김모 전 부장과 서씨 등 15명을 검거했지만 해외로 달아난 이 사건의 핵심 용의자 전씨는 여전히 잡지 못하고 있다. 경찰은 현재 그를 인터폴에 수배하는 등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전씨가 수사망에 걸려들면 상환되지 않은 돈 3000억 원 가운데 사용처가 확인되지 않은 수백억 원도 수면 위로 떠오를 전망이다. 경찰은 나머지 수백억 원도 도박·유흥 등에 썼을 것으로 보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전씨가 해외를 자주 다녔고 도박을 즐겨했던 것으로 미루어 도박에 사용됐을 가능성이 가장 높다”고 전했다.

그러나 이렇게 어이없는 사건이 벌어지고 그 용도가 황당무계하기에 이를 데 없지만 사용처에 따른 가중처벌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 경찰 관계자는 “누가 얼마큼 사용했는가에 따라 법적 형량이 정해질 것으로 본다. 사용처가 황당하지만 괘씸죄가 적용되거나 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전했다. 누군가는 평생 구경도 못해볼 거액을 사기로 벌어들여 흥청망청 써댄 이들의 최종 형량이 궁금한 대목이다.

한편 앞서 일어난 KT ENS 협력업체 대출 사기 사건은 KT ENS의 협력업체들이 5년간 1조8000억 원이라는 천문학적인 액수를 사기를 쳐 대출받은 희대의 사건으로 기록됐다. 이와 같은 범죄가 일어날 수 있었던 배경으로는 금융권의 부실한 대출 관리 시스템이 첫 번째로 지목된다.

경찰에 따르면 사기대출에 이용된 허위 매출채권을 발급하는 데 사용된 법인 인감도장은 아르바이트생이 보관할 정도로 허술한 관리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에 금융기관들은 대기업인 KT의 자회사인 KT ENS가 매출채권을 양도한다는 내용의 승낙서만 믿고 거액의 대출을 해 준 사실이 더해졌다.

사기 대출에 이용된 허위 매출채권 양도 승낙서와 관련해 부정 대출을 도운 김 전 부장은 이 도장을 관리자의 감시가 소홀한 점심 때 등을 이용해 몰래 꺼내 서류 위조에 사용했다고 진술했다.

경찰 관계자는 “금융기관들이 제출 받은 계산서가 세무서에 신고 됐는지, 세금계산서 내용과 같이 실제 매출이 있었는지 확인하는 과정이 미흡했다”고 말했다. 즉, 너무나 허술한 관리 체계 속에 대출 사기를 치는 것은 누워서 떡 먹기보다 더 쉬웠던 셈이었다.

아울러 심각한 도덕적 해이 문제도 폭발했다. 협력업체인 중앙티앤씨가 휴대전화 주변기기를 납품하고 매출 채권을 담보로 은행에서 대출을 받는 과정에서 세금계산서의 납품 단가가 부풀려진 사실을 김 부장이 알아챈 것은 2007년 중순이다.

그런데 경찰에 따르면 김 부장은 곧바로 돈의 유혹을 건넨 중앙티앤씨에 포섭을 당하고 말았다. 이후 유착관계를 맺게 된 김 부장은 오히려 적극적으로 이들편에서 사상 최대 사기 대출 사건을 만들어 냈다. 돈의 유혹으로 시작되는 도덕적 해이는 사회와 재계 전반에 너무나 깊게 깔려 있는 악마의 속삭임과도 같다.

hwihols@ilyoseoul.co.kr

강휘호 기자 hwihols@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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