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라고 자신을 소개한 그는 온갖 명품으로 온몸을 휘감고 있어 한눈에도 사람들의 눈길을 끌기에 충분했다.선배는 그에게 합석을 권유했고 이에 K씨는 P씨 일행과 자연스럽게 섞여들었다. 그와 술잔이 몇 순 배 돈 후 선배는 술자리 일행들에게 “K씨는 펀드를 통해 많은 돈을 벌었고 지금은 서울 R호텔의 최고급 룸에서 수개월 째 투숙하고 있다”고 소개하며 그가 상당한 재력가임을 은근히 내 비쳤다. 이 말을 들은 P씨 일행은 술에 취한 상태였음에도 불구하고 화들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R호텔의 최고급 룸에서 하루 투숙하는 금액은 500여만원이 넘는다는 점을 감안할 때 숙박비용으로 아파트 몇 채를 살 수 있을 정도의 큰돈이기 때문이었다. 이 말을 들은 P씨 일행중 한 사람이 “차라리 집을 한 채 구입해서 살지 왜 호텔에 사느냐”고 묻자 그는 “외국에서 거주하며 한번씩 한국에 들어오기 때문에 그럴 필요까지는 없다”고 말했다.
그가 자리에 합석한 후부터 테이블의 술 종류는 최고급 양주로 꼽히는 발렌타인 30년산으로 바뀌었다. K씨가 “오늘은 제가 모시겠습니다”라고 말했기 때문에 술값 걱정은 하지 않고 P씨 일행은 술을 마셨다. 다음 날 아침 6시까지 술자리가 이어졌다. 모두다 거의 인사불성 상태에 이를 정도로 마셨다는 것. 이날 이들 5명이 마신 순수 술값만 해도 1,000여만원에 달했고, 여기에 안주와 아가씨 봉사료 등을 포함하면 1,200만원을 훌쩍 넘었다.그러나 이들은 K씨가 술값을 치를 것이라 믿고 있었기 때문에 별 걱정을 하지 않았다. 다음날 저녁이 돼서야 정신을 차린 P씨는 선배에게 한 통의 전화를 받고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선배는 “K씨가 지갑을 깜박하고 안 가져 왔다며 술값을 외상으로 처리해줬다”면서 “그런데 오늘 전화를 해 보니까 전화를 안 받는다. 아무래도 잠적한 것 같다”고 근심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P씨는 “술독을 풀기 위해 사우나에 갔을 수도 있으니 너무 걱정말고 일단 기다려 보자”며 선배를 안심시켰다. 그러나 K씨는 이후로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다. P씨는 “우리가 별도로 조사해 보니 실제로 그는 최고급 생활을 해 온 것으로 드러났다”면서 “또 호텔측은 고객신상보호라는 구실로 해당 사실에 대해 일절 함구하고 있지만 조사결과 호텔 숙박료도 내지 않은 것 같다”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또 그는 “나는 너무 술에 취해 정신이 없었지만 K씨가 술값을 다 치른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이렇게 뒤통수 맞을지 몰랐다”고 말했다. 만약 P씨의 주장대로 K씨가 호텔 숙박료도 내지 않고 도망갔다면 호텔 측이 입은 피해는 클 수밖에 없을 터. 하지만 이에 대해 P씨는 “호텔 측은 자사의 이미지 실추를 우려해 이 같은 사실을 부인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그가 잠적한 후 하나 둘씩 드러나는 K씨의 행각은 놀라움과 더불어 의문투성이다.우선 K씨는 펀드를 통해서 돈을 벌었다고만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그 많은 돈을 벌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가 자주 들렀다는 또 다른 룸살롱 관계자에 따르면 룸살롱서 하루에 2,000만원을 탕진하기는 예사라고 한다. 팁으로 100만원짜리 수표를 아무렇지도 않게 마구 뿌리다시피 했다는 것. 또 한번에 두 세명의 미녀들을 호텔 방으로 데리고 가 질펀한 육체의 향연을 즐긴 경우도 많았던 것으로 전해졌다.그와 함께 2차를 나간 적이 있다는 룸살롱의 여성은 “머물고 있는 호텔 수준이나 말하는 것을 봐서 팁을 많이 줄 것이라 생각했지만 특별히 그렇게 많이 주진 않았다”고 밝혔다.K씨가 장기간 이용한 것은 호텔만이 아니다. 자동차도 렌터카를 이용했는데 그가 이용한 자동차는 모두 외국 B사에서 나온 최고급 세단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그가 종적을 감춘 후 P씨의 선배는 수소문 끝에 겨우 K씨의 집을 찾을 수 있었다. 그러나 그의 집을 찾아간 그 선배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 거의 폐가에 가까운 그의 집을 보고 아연실색할 수밖에 없었던 것. 집기와 옷가지 등이 여기저기 흩어져 실내는 엉망이었고 가전제품도 최근에 보기조차 힘든 구형 일색이었다고. 이에 대해 P씨는 “선배 말로는 그 집은 사람이 살지 않는 듯 했고, 이상한 것은 이웃 사람들에게 물어 보니 불과 얼마 전까지도 K씨가 한번씩 들렀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를 전해들은 P씨 주변 사람들은 ‘혹시 복권 당첨자일 수도 있다’는 추측도 내놓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화제의 인물 K씨, 부산에 있다”
P씨가 여기 저기 수소문해서 알아본 결과 K씨는 부산에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경찰에 알려 붙잡는 문제에 대해 P씨의 선배는 “아직 K씨 나름의 자세한 사정도 들어보지 않은 상태이기 때문에 일단 좀더 두고 볼 생각이다”라고 입장을 밝혔다.P씨의 선배가 극단적인 조치를 취하지 않는 데는 이유가 있다. 사실 K씨는 그 날 하루 술값을 내지 않았다 뿐이지 그 전에는 수천만 원의 매상을 올려줬던 단골이기 때문이다. 술값도 모두 그 자리에서 치렀음은 물론이다. 최근 접대 실명제로 인해 룸살롱의 경기가 안 좋은 것을 감안하면 구세주인 셈이다. 또 K씨는 화류계에서도 오래 전부터 유명인사였던 것으로 드러났다. 때문에 P의 선배는 일단 자초지종을 당사자에게 들어보자는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그러나 K씨는 하루 수천만원의 돈을 뿌리고 다녔음에도 불구하고 거주가 일정치 않고 자동차도 자신의 것이 아닌 렌터카를 이용했다는 점과 당시 호텔에 체크아웃도 제대로 하지 않고 갑자기 잠적한 행동 등 많은 의문을 남기고 있다.
윤지환 jjd@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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