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관계없다” 책임 떠넘기기 바쁜 업체들
누적 피해자 많아…적극적 유지보수 필요성 대두
[일요서울 | 강휘호 기자] 엘리베이터도 급발진 사고가 발생한다? 일반적으로 급발진 사고란 ‘자동차가 운전자의 제어를 벗어나 가속되는 현상’을 말한다. 그런데 지난달 18일 경남 창원의 고층아파트 엘리베이터가 갑자기 멈춰섰다가 꼭대기층까지 치솟는 사고가 발생했다. 더욱이 상상만 해도 아찔한 해당 사고의 동영상이 온라인상으로 유포돼 적잖은 파장이 일고 있다. 이를 두고 일각에선 예견된 인재라는 지적이 팽배한 가운데 [일요서울]이 엘리베이터 급발진 사고의 실상을 들여다봤다.

충격적인 엘리베이터 급발진 사고 소식은 그 여운이 쉽사리 가시지 않고 있다. 엘리베이터가 2초 만에 15층부터 39층까지 24개 층을 통과한 뒤 솟구쳐 아파트 천장에 부딪치는 장면이 워낙 충격적이었던 탓이다.
지난달 27일 MBC는 경남 창원 마산 회원구의 한 고층 아파트에서 발생한 엘리베이터 사고 현장을 담은 CCTV 영상을 보도했다. 공개된 영상엔 당시 상황이 적나라하게 담겨 있다.
사고가 난 엘리베이터는 지난달 18일 밤 9시께 아파트 15층에서 갑자기 멈췄다. 엘리베이터를 홀로 타고 있던 주민 A씨는 10분 정도 비상벨을 누르고 문을 발로 차다가 강제로 엘리베이터 문을 열고 탈출을 감행했다.
그러고 나서 불과 2분 뒤, 엘리베이터는 2초 만에 꼭대기층인 39층까지 급상승했다. 급발진했던 엘리베이터는 아파트 천장에 부딪치고 나서야 움직임을 멈췄다. 만약 A씨의 탈출이 조금이라도 늦어졌다면 처참한 인명피해가 발생할 수도 있는 끔찍한 순간이었다.
그런데 해당 사고는 이미 예견되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더욱 충격에 휩싸였다. 해당 엘리베이터는 한국승강기안전기술원의 지난 1월 안전점검 당시 승·하강 제어 장치인 권상기에서 소음이 발생한다며 2개월 안에 수리하거나 부품을 교체하라고 지적받은 바 있다.
또 사고 당일 해당 엘리베이터에는 부품 교체 작업이 이뤄졌던 것으로 알려졌다. 교체 작업은 이날 오후 6시쯤 마무리됐고 1시간의 테스트 운행 후 저녁 7시부터 정상 운행됐다. 사고는 정상 운행된 지 2시간이 지난 밤 9시쯤 발생했다. 결국 사고가 일어난 것은 핵심 부품을 교환한 직후에 발생한 것이었다.
당연히 아파트 입주민들은 단단히 화가 났고 항의가 빗발쳤다. 말도 안 되는 사고가 일어났다는 점과 당시 영상이 대대적으로 공개됨에 따라 아파트 이미지가 하락됐다는 점이 그들을 화나게 했다.
사고가 발생하자마자 창원메트로시티입주자 커뮤니티 사이트는 “사고 동영상이 어떻게 공개된 건지 설명해 달라”, “모든 단지 엘리베이터 점검을 철저히 해야 한다”는 등의 항의 글로 도배됐다.
꼬리를 무는 변명들
아울러 [일요서울]의 취재결과 사고 아파트는 창원메트로시티아파트로 확인됐다. 시공사는 태영건설과 한림건설, 엘리베이터 업체는 티센크루프코리아였다. 하지만 책임소재가 있는 세 회사는 마치 시한폭탄을 서로에게 떠넘기듯 변명만 늘어놓고 있었다.
태영건설은 공동 시공사인 것은 맞지만 해당단지와는 무관하다는 입장이다. 태영건설 관계자는 “메트로시티의 경우 한림건설과 공동으로 시공했다. 그러난 사고가 난 아파트는 한림건설이 시공했던 건물이기 때문에 우리와는 어떠한 관계도 없다”고 선을 그었다.
이어 “엘리베이터 업체도 한림건설 측에 문의를 해봐야 알 것”이라며 “태영건설은 아는 것이 없다”고 덧붙였다.
한림건설은 절대 자신들만의 문제가 아니라고 항변했다. 그리고 책임을 엘리베이터 업체로 떠넘기는 모습을 보였다. 한림건설 관계자는 “시공은 한림건설에서 했지만 엘리베이터 업체 발주는 태영건설과 공동으로 진행됐다”면서 “엘리베이터 담당 업체는 티센크루프엘리베이터코리아라는 회사다”라고 설명했다.
마지막 티센크루프는 현재 조사가 진행되고 있으며 시공사와도 긴밀한 협조 체제를 구축하고 있다고 전했다. 티센크루프 관계자는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우리 역시 원인 규명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면서 “사고 원인 조사가 끝나봐야 후속 대처가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재미있는 것은 티센크루프 관계자가 “태영건설과 한림건설이 공동 시공한 것으로 알고 있다”며 “태영건설이 해명 자료를 요구해 이미 제출을 마친 상태”라고 밝힌 부분이다. 한림건설이 시공을 담당했기 때문에 엘리베이터 업체가 어딘지조차 모른다고 일축했던 태영건설 관계자의 말과는 상반된 증언이다.
정리해보면 태영건설은 한림건설에 전가했고 태영건설이 지목한 한림건설은 티센크루프에 다시 전가한 꼴이다. 시한폭탄을 마지막으로 넘겨받은 티센크루프는 책임을 지면서도 홀로 모든 것을 감당하기는 억울하다는 표정이다.
이와 같은 상황을 바라본 엘리베이터업계의 한 관계자는 “만약 사고 원인이 사용자 과실이 아닌 제품 문제로 밝혀진다면 엘리베이터 업체가 가장 큰 책임을 지고 있는 게 맞다”면서도 “시공사는 시공과 분양만 담당한다 치더라도 책임을 회피할 것이 아니라 입주민 불안 해소와 도의적 차원에서 원인 규명에 동참하고 사과를 전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조언했다.
더불어 이번 사고를 매우 이례적인 안전사고로 치부해선 안된다는 지적도 많다. 그동안 엘리베이터 안전 문제가 줄곧 제기돼왔고 시공사와 엘리베이터 업체들이 이를 간과하고 있다는 의견이다. 이에 따라 정부는 엘리베이터 문이 떨어져 나가지 않도록 방지장치 부착을 의무화하는 등 대책 마련에 나서기도 했다.
더욱이 이러한 지적은 태영건설과 한림건설이 시공한 아파트입주자나 티센크루프 엘리베이터가 설치된 건물을 사용한다고 밝힌 이들에게서 쉽게 들을 수 있다. 엘리베이터 고장이 너무 잦아 집이 있는 고층까지 걸어서 올라가야 했던 사연은 다반사다. 엘리베이터가 갑자기 멈추거나 추락을 경험했다는 이들도 적지 않다.
티센크루프 엘리베이터가 설치된 건물에서 생활을 하고 있다고 밝힌 한 입주자는 “엘리베이터에 탈 때마다 이상한 소리가 들려 불안함을 느낀다. 더욱이 얼마 전 사고를 접한 뒤로 더욱 신경 쓰인다”며 “티센크루프 엘리베이터가 사고를 일으켰다고 하니 너무 무섭다. 당장 티센크루프에 항의를 할 생각”이라고 전했다.
한편 아직까지 우리나라에서 엘리베이터 급발진으로 인명피해가 있었다는 보고는 알려지지 않고 있다. 다만 미국 뉴욕 맨해튼의 한 사무 빌딩에서 40대 여성이 엘리베이터를 타려는 순간 엘리베이터가 갑자기 출발하며 엘리베이터와 벽 사이에 끼여 숨지는 참담한 사고가 일어났던 적이 있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사고를 당한 여성은 자신의 사무실로 가기 위해 엘리베이터를 타려던 도중 갑자기 엘리베이터가 위로 올라갔다. 이윽고 출입문에 반쯤 몸이 걸쳐 있던 그는 2층까지 끌려 올라갔고 결국 엘리베이터와 벽 틈 사이에 끼여 처참한 몰골로 숨졌다.
당시 사고가 일어났던 빌딩은 총 25층으로 대부분의 사람들이 엘리베이터를 이용하는데도 불구하고 몇 년 동안 시 당국의 엘리베이터 안전 조치 권고를 무시해왔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러한 상황으로 봤을 때 그동안 엘리베이터 유지보수에 적극적이지 않다는 지적을 받아왔던 건설업체와 엘리베이터 업체들은 당분간 책임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으로 전망된다.
hwihols@ilyoseoul.co.kr
강휘호 기자 hwihols@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