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경영인체제 돌입? 매출하락에 뒤숭숭
일감몰아주기 논란…책임 회피 의혹도 일어

[일요서울 | 강휘호 기자] 김상헌 동서그룹 회장이 등기임원직을 사퇴한 배경을 두고 여러 가지 시선이 엇갈린다. 우선 잇따른 총수들의 등기임원 사퇴와 맞물려 “개별 임원 보수 공개의무를 회피하기 위함이다.”, “사업 관련 책임을 덜기 위한 의도 아니냐.” 등의 지적이 흘러 나왔다. 다만 여타 그룹 총수들의 등기임원 사퇴 때와는 다소 다른 의견도 있다. 김 회장의 사퇴를 기점으로 동서그룹의 오너일가 중 등기임원직을 수행하는 인물이 전무해졌다는 점을 들어 “동서그룹이 전문 경영인 체제로 완전히 돌아선 것 아니냐”고 추측한다. [일요서울]은 동서그룹에 흐르는 미묘한 변화를 짚어봤다.
동서의 오너 경영 체제가 서서히 지워지고 있다. 유력 후계자로 꼽히던 장남 김종희씨는 1여 년 전 돌연 회사를 떠났다. 당시 유력한 후계자로 거론되던 종희씨는 동서에서 상무직에 올라 경영지원 부문을 맡았었지만 현재는 회사 경영에 전혀 관여하지 않고 있다. 비록 종희씨가 여전히 창업 3세 가운데 보유 주식 가치가 가장 높지만 경영과는 거리가 멀기 때문에 후계구도는 오리무중이다.
더불어 김 회장까지 지난 7일 2013사업연도 정기주주총회에서 동서의 등기임원직을 내려놨다.
동시에 지난해 말 동서식품 사장에서 동서 회장으로 자리를 옮긴 이창환 회장은 사내이사로 신규 선임됐고 김종원 현 대표이사 사장과 윤세철 전무가 재선임됐다.
이로써 동서의 경영진은 모두 전문 경영인으로 채워졌다. 유력 후계자 후보와 오너 본인이 1년 터울로 경영에서 손을 뗀 것이다. 아직까지 김 회장과 종희씨가 자리를 비운 이유는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고 있다.
또 그룹 주력계열사인 동서식품의 매출 하락이 분위기를 더욱 뒤숭숭하게 만든다. 전체 매출액이 300억 원 수준, 영업이익에서 10억 원 남짓 떨어진 수치다. 액수가 크진 않지만 9년 만에 처음으로 역신장한 것임을 감안하면 다소 의아하다.
금융감독원 등에 따르면 동서식품 매출액은 지난해 1조5304억 원으로 전년 1조5604억 원에서 300억 원가량이 빠졌다. 2000년 이후 매년 7% 이상의 성장률을 보였던 동서식품의 성장세와 비교하면 체감 수치는 더 높다.
다만 시장점유율 측면에선 여전히 부동의 1위를 고수한다. AC닐슨이 조사한 커피믹스 시장 점유율을 살펴보면 지난해 기준 동서식품 맥심은 1~11월 평균 81%를 기록했다. 2위 남양유업의 프렌치카페는 12.7%, 네슬레 네스카페가 3.7% 정도 차지하는데 그쳤다.
논란 여지 없을까
이처럼 그룹 주변에 흐르는 이상기류는 무성한 뒷말을 만들어 내고 있다. 우선 김 회장의 사퇴를 두고 대부분은 전문경영인 체제로 완전히 변화하려는 의도로 해석한다.
이에 따라 매출 역시 성장통을 겪는 것 아니냐는 해석도 있다.
식품업계의 한 관계자는 “후계자가 없는 상황에서 오너 본인이 경영에서 물러난다는 것은 경영권 승계 작업을 ‘올스톱’했다는 의미”라면서 “전문경영인 체제로 돌아서려는 의지가 확실하게 묻어난다”고 바라봤다.
그러나 아직 소유와 지배가 일치하지 않는 기형적 구조가 나타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없진 않다. 즉, 등기임원이 아니더라도 실질적인 의사결정권을 쥔 상태에서 그 결정에 대한 책임은 지지 않는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는 설명이다. 이렇게 되면 책임경영 논란이 일게 된다.
김 회장이 여전히 엄청난 주식을 보유하고 있다는 점도 이와 같은 우려를 불식시키지 못하는 데 한몫 하고 있다.
기업 경영성과 평가사이트인 CEO스코어(대표 박주근)가 국내 상장사 1765곳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동서그룹은 김 회장이 지주회사인 동서를, 김석수 회장이 동서식품을 나눠서 경영하고 있는데 오너 일가는 동서 지분만 보유하고 있다.
동서는 국내 최대 커피업체인 동서식품을 비롯해 현재 9개 계열사를 거느리고 있는 동서그룹의 지주회사 노릇을 하고 있다.
이 가운데 김상헌 회장의 보유 주식은 오너 일가 전체 보유 주식 가치의 40%다. 김석수 회장은 오너 일가 보유 주식 가치의 35%를 갖고 있다. 두 형제가 보유한 지분을 합치면 75%에 육박한다.
더군다나 여기에서도 경영권 승계의 움직임은 뚜렷하게 나타나지 않는다. 종희씨를 비롯해 창업 3세 가운데 회사 지분을 보유한 세 사람의 지분율은 7.33%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이 외에는 임원 연봉공개, 재벌 총수들의 법정이슈 등 관련 사안에 따른 등기임원 사퇴가 아니냐는 주장도 있다. 혹시 모를 법적 책임에 휘말리는 걸 피하기 위해 등기이사직을 내놓은 것 아니냐는 관측이다.
갑을논란, 골목상권 침해 등으로 유통 및 식품 기업에 대한 규제가 갈수록 강화되는 상황에서 연봉 공개 의무까지 더해짐에 따라 법적 책임 등을 피하려는 수작이라는 비판도 일고 있다.
동서그룹은 이와 같은 상황에 대해 일정 부분만 인정하고 있다. 동서그룹 관계자는 “전문경영인 체제로 완전히 돌아선 것은 맞다”면서 “앞으로도 당분간 김 회장과 후계자들이 등기임원에 오르는 일은 없다”고 전했다.
하지만 “몇 년 후 일은 장담할 수 없다. 김 회장의 의중을 모두 들여다 볼 수 없지만 후계 경영 승계가 다시 시작될 수도 있다”고 여운을 남겼다.
그러나 그 외의 부분은 전면적으로 부정했다. 매출은 “거의 변화가 없다. 영업이익이 10억 원 정도 빠졌는데 인지하지 않아도 되는 수준”이라고 설명했고, 책임 경영 논란은 “전문경영인 체제 강화가 아닌 다른 이유는 전혀 없다”고 잘랐다.
한편 동서그룹은 일감몰아주기 논란도 일어나 눈총을 받고 있다. 계열사 중 하나인 성제개발의 실적이 급감하자 내부거래 비중을 늘린 것으로 파악된다. 지난 13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동서그룹 계열사인 성제개발은 2013 회계연도에 내부거래 비중이 54.1%로 2012년(43.7%) 보다 11%포인트가 증가했다.
매출액과 영업이익은 각각 143억8991만 원, 9억7463만 원을 기록해 전년도 138억2580만 원, 8억6083만 원과 비교해 각각 4%, 14% 증가한 수치를 나타냈다. 성제개발의 지분은 동서가 43.9%, 종희씨가 32.98%, 김 동서식품 회장의 아들 동욱씨와 현준씨가 각각 13%, 10.93%를 보유한 회사다.
hwihols@ilyoseoul.co.kr
강휘호 기자 hwihols@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