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세 상승의 환상…희생양은 하우스ㆍ렌트푸어
연착륙보다 견착륙 시도…잠재적 채무 없애야
[일요서울 | 김나영 기자] 유독 우리나라에는 집값 상승에 대한 믿음이 굳건한 사람들이 많다. 특히 서울과 수도권을 중심으로 한 부동산 시장에는 소위 ‘부동산 불패론’이 널리 퍼져 있다. 이러한 바람은 차기 서울시장·대통령 등을 선출할 때도 여지없이 적용돼 역사를 바꿀 정도였다.
사실 모든 산업과 시장에는 사이클이 있고 부동산 역시 여기에서 예외일 리 없다. 그럼에도 부동산 시장은 계속해서 성장해야만 한다는 이 같은 믿음은 어디에서 나온 것일까. 이러한 사람들의 생각에 찬물을 끼얹은 것이 바로 선대인경제연구소의 선대인 소장이다.
최근 ‘집값 바닥론’이 고개를 들자 다시금 부동산 시장이 꿈틀대고 있다. 내놨던 급매물을 거둬들이는 것은 물론 은행에도 주택자금대출 문의가 이어진다는 전언이다. 물론 정부정책이 우왕좌왕하며 혼선을 빚고는 있지만 가계부채 1000조 원 시대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의 현상이다.
이미 집값 상승을 꿈꾸며 지나친 대출을 받아 집을 산 후 원리금 상환에 허덕이는 사람들은 한둘이 아니다. 그렇다고 이를 순진한 하우스푸어들의 잘못으로만 치부하기에는 너무나도 복잡한 것이 현실이다.
이를 두고 선 소장은 부동산 시장의 사이클 측면에서 우리나라는 이미 대세상승기에서 대세하락기로 접어든 상태라고 냉정하게 진단했다. 이는 해방 이후부터 우리나라를 지배해 온 부동산 패러다임의 근본적인 전환이라는 설명이다.
이제는 대세하락기
마치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이 있는 것처럼 집값도 등락을 거듭한다. 하지만 현재처럼 계속해서 집값을 떠받치는 데만 치중하면 추후 사회 전체가 치러야 할 대가는 엄청나다. 평생을 갚아야 하는 빚이 사라지지 않는 것은 물론 집값 거품 때문에 잠재적 채무가 대물림될 수도 있다.
선 소장은 저서 ‘미친 부동산을 말하다’를 통해 지금의 부동산 대세하락기는 앞으로도 최소 4~5년 이상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고 예측했다. 만약 부동산 패러다임 전환기의 충격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면 10년 이상 지속되는 일본식 장기 침체에 빠질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때문에 현재 우리나라 부동산 시장에 필요한 것은 연착륙(소프트 랜딩)이 아닌 견착륙(펌 랜딩)이라는 것이 선 소장의 주장이다. 이미 연착륙을 할 수 있는 기회는 놓쳤지만 그나마 경착륙(하드 랜딩)보다는 견착륙이 낫다는 재촉도 곁들였다.
이와 관련해 선 소장은 “지금 정부는 연착륙이 불가능한데도 무리하게 연착륙을 시도하면서 오히려 경착륙 가능성을 키우는 모양새”라며 “단기적으로는 일정한 충격을 받더라도 현재는 견착륙을 선택할 수밖에 없고 그나마 견착륙 기회도 그리 많이 남지 않았다”고 단언했다.
선 소장이 제시한 향후 예상은 하우스푸어들에게는 공포감을 조성하고 내집 마련을 기다리는 이들에게는 인내를 요구한다. 만약 집값이 앞으로 5년에 걸쳐서 30%가량 떨어진다고 가정할 때, 시중 주택담보대출 금리가 아무리 유리한 조건에 나온다고 해도 이를 감당할 수 있는 가계는 없다는 예시가 그러하다.
같은 버블, 다른 대처
렌트푸어에도 관심을 기울였다. 선 소장은 단순히 전세공급이 부족한 것이 아니라 안전한 전세의 공급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것을 문제로 꼽았다. 또 안전한 전세가 부족한 현상은 단순히 전세가격을 끌어올리는 데 그치지 않고 매우 큰 파장을 낳을 것이라고 예고했다.
이웃 일본이 걸어온 부동산 버블도 빼놓지 않았다. 다만 일본의 경우 부동산 가격이 폭락한 뒤 가계를 동원했지만, 우리나라는 부동산 거품이 거의 빠지지 않은 상태에서 가계를 동원하는 점이 다르다고 봤다.
반면 스웨덴의 경우에는 부동산 거품이 빠지기 시작하자 신속하게 부실채권 정리에 나선 것에 주목했다. 스웨덴은금융위기에 대처하기 위해 은행지원청을 설립하고, 배드뱅크를 만들어 부실채권을 정리했다. 무엇보다 일본처럼 대규모 재정을 동원한 건설 부양책을 쓰지 않은 것은 물론 가계를 부동산 거품의 늪으로 끌어들이지 않았다.
우리나라 정부가 부동산 기득권 위주의 정책으로 사태를 계속 악화시킬 경우도 계산에 넣었다. 당장 부동산 거품이 꺼지면 성난 민심은 누군가에게 화살을 돌릴 것이고 그 대상은 정부일 공산이 크다. 건설업계나 금융권의 입장에서도 이러한 부동산 버블이 사라지는 것보다는 어떻게든 유지되는 쪽이 사실상 업황에 유리하다.
당장 정부가 쓰고 있는 각종 부동산 부양책 역시 시기가 어긋난다고 분석했다. 지금 우리나라의 수도권 주택가격은 13%가량 빠졌을 뿐이다.
앞서 일본의 경우 부동산 가격이 40% 이상 내려앉은 상태에서 부양책을 썼고 이는 실패한 바 있다. 그럼에도 실패의 길을 따라가며 가계에 부동산 가격을 떠넘기는 폭탄 돌리기를 지속한다는 지적이다.
위기는 늘 예상보다 빨리 찾아온다는 격언이 있다. 선 소장은 지금이라도 먼저 부실 부동산에 대한 정리 신호를 분명히 함으로써 더 이상의 하우스푸어를 양산하지 않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주택담보대출의 거치기간 만기 연장이나 대출 갈아타기에 대한 규제를 단계적으로 강화해 가계부담이 일시에 몰리는 것을 막아야 한다고 설득했다.
더불어 선 소장은 공공적 차원에서 가계 컨설팅을 실시해 채무상환 기간과 조건을 재조정할 수 있어야 한다는 해법을 제시했다. 이와 함께 건설업계의 시장 청소로 개발공기업들의 자산을 매각해 부채를 정리하고 불필요한 사업을 중단해야 한다는 것도 강조했다.
특히 선 소장은 재정지원의 초점을 다주택 하우스푸어보다는 1주택 하우스푸어로, 자가주택 소유자보다는 전월세 세입자와 저소득층 등으로 옮겨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는 지탱할 수 없는 부동산 거품 유지 때문에 다주택자, 1주택자, 전월세 세입자가 순차적으로 집값 떠받치기에 동원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주장과 상통한다.
선 소장은 “이미 하우스푸어로도 모자라 전월세푸어까지 양산하는 단계에 들어선 지금이라도 적극적으로 부동산 거품 빼기에 나서야 한다”면서 “그래야 부동산에 묶여 있는 돈들이 생산경제로 흘러가면서 한국경제가 새로운 활로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예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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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나영 기자 nykim@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