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학생회장 당선 뒤 학생회비·행사비 횡령
도박 등으로 사기당한 지인 해결사로 나서
[일요서울 | 오두환 기자] 조직폭력배의 역사는 오래됐다. 보통 조선시대 때부터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조폭들은 광복을 전후해 등장했다.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김두한, 하야시, 시라소니 등이다. 이후 조폭들은 정치·경제적 상황에 따라 그 모습이 달라졌다. 오늘날의 조폭은 ‘기업형 조폭’으로 불린다. 과거와 달리 조직이 체계적이며 기업화 돼 겉으로 봐서는 조폭 조직인지 일반조직인지 구분이 힘들 정도다. 여기에 새로운 트렌드가 더해졌다. 바로 대학으로의 진출이다. 충청도도 예외는 아니다.
조폭의 대학진출은 10여 년 전부터 시작됐다. 순천의 중앙파는 2001년경부터 전문대를 중심으로 손길을 뻗쳤다. 10여 년 동안 약 20여 명의 조직원들이 총학생회장 자리를 이어가며 학생회비 4억 원을 횡령했다.
광양의 라이온스파도 2004년부터 대학으로 진출했다. 행동대장이 총학생회장에 당선되면서 8년 동안 총 13억 원을 횡령했다. 학생회비 3억7000만원을 빼돌렸고, 본인이 운영하는 기획사에 축제나 체육대회를 맡겼다. 결국 행사비가 부풀렸고 약 10억 원에 가까운 돈이 흘러나갔다.
충북의 조폭들은 충청대에 손길을 뻗쳤다. 2011년 학생회장에 지역 폭력조직인 파라다이스파 행동대장이 당선됐다. 행동대장 신모(31)씨는 총학생회장이 될 당시 전과 20범이었다. 2007년 대학 입학 직후 조폭 간 칼부림 사건에 연루돼 1년 6개월을 복역하고도 복학 후 학생회장까지 지냈다. 상식적으로는 납득할 수 없는 일이지만 신씨가 학생회장에 당선되는 일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당초 신씨는 총학생회장 선거 당시 전과가 없다는 사실을 입증하기 위해 ‘범죄경력증명’를 내야 했지만 학교에서는 확인도 하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범죄경력증명’은 개인의 범죄행위를 모두 기록한 것으로 경찰서에서 본인에게만 발급해 준다.
학생회장에 당선된 신씨는 연예인 초청 축제와 졸업앨범 판매 등 각종 행사에서 기획사와 짜고 3천만 원 이상 챙긴 것으로 나타나 기소됐다.
충남 대전에서는 2009년 한 대학 총학생회장 선거에 당선되기 위해 상대 출마예정자를 지역 조폭이 폭행하는 사건이 벌어지기도 했다.
대학 접수는 조폭계 트렌드
지방 조폭이 대학을 접수하는 일은 이제 조폭계 트렌드가 됐다. 과거 주수입원이었던 유흥주점이나 성매매업소 운영이 힘들어지자 새로운 사업처를 찾아나선 곳이 바로 대학이다. 지방대학은 수도권 대학에 비해 문턱이 낮다. 학생 수가 줄어들면서 대학 측이 입학자격을 완화한 탓이다.
대학에 쉽게 입학한 조폭들은 학과부터 서서히 장악해 학생회를 장악한다. 총학생회장이 된 뒤에 돈을 빼돌리는 것은 식은 죽 먹기다. 일단 지방 대학들은 수도권 대학들에 비해 학생회비 결산과정이 허술하고 감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곳이 많다.
학생회장이 되면 직접 주무를 수 있는 자금이 약 2억~5억 원 정도가 된다. 대부분 학생회비다. 경찰의 감시를 피해야 하는 유흥업, 사행성 게임장 운영 등 보다 훨씬 낫다. 조폭들에게 여기서 1~2억원 정도 빼내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이밖에 졸업앨범 제작비, 축제 및 행사비 뒷거래로 빼돌리는 자금까지 합하면 3억 원대를 웃돈다.
학생회장 선거 없앤 대학 등장
상황이 이쯤 되자 대학 측에서도 최근에는 보완책을 마련하고 있다. 범죄경력증명서를 선거입후보자 등록을 위한 필수 서류로 바꾸는가 하면 후보 추천인 수를 40명에서 80명으로 늘리도록 했다. 또 추천인 서명 대신 반드시 도장을 받도록 했다. 서명은 위조 가능성이 높다는 판단에서다.
총학생회장 투표를 없앤 곳도 있다. 구미대는 지난해 총학생회장 투표제를 없앴다. 대신 출마 후보자를 놓고 각 학과를 대표하는 대의원 학생들이 논의해 최종 후보를 총장에게 추천하도록 했다. 그러면 학교가 신원조회와 평판 검증 등을 통해 총장이 임명하도록 제도를 고쳤다. 이밖에 교수추천서를 받도록 한 대학교도 있다. 하지만 조폭들의 학교 접수를 막기 위해서는 근본적으로 학생회 운영비의 투명한 집행이 이뤄져야 한다.
파라다이스파 전국 최대 조직원 보유
충청도 지역에는 충남·북 지역과 대전지역을 합하면 총 32개 파가 활동을 하고 있다.
이중 충북지역에는 6개 파 320여명이 활동하고 있다. 파라다이스파가 가장 큰 조직으로 전국에서 가장 많은 76명의 조직원을 보유하고 있다. 청주를 기반으로 하고 있는 ‘파라다이스파’는 단순 폭력서클로 시작돼 1989년 조직으로 성장했다.
이전에 있던 ‘야망파’가 ‘시라소니파’와 ‘파라다이스파’로 갈라진 뒤 파라다이스파가 패권을 잡았다. ’시라소니파’는 자신들을 전설적 주먹 ‘시라소니’ 후예로 칭하며 붙인 조직명이다. 충주에는 신성만이파, 제천에는 조가파·인조파 등도 활동하고 있다.
충남지역에는 태양회파, 신그랜드파, 송악파 등 17개 파 288명이 대전은 왕가파, 신안동파, 한일파 등 9개 파 157명이 활동하고 있다.
최근 충북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는 시라소니파가 개입된 10억 원대 사기도박단을 검거했다.
영화 ‘타짜’ 속 사기 수법이 현실에서도 그대로 통했다. 사기도박단은 속칭 ‘꽃뱀(여성 바람잡이)’과 ‘타짜(전문 도박기술자)’를 동원한 도박판을 벌여 재력가들로부터 10억 원대 돈을 가로챘다.
이들은 2011년 5월 중순경 강원도의 한 골프장에서 자영업자 조모(55)씨 등 2명을 도박판에 끌어들인 뒤 전국의 골프장을 돌며 모두 16차례 걸쳐 사기도박을 벌여 10억 원을 뜯어냈다. 경찰 조사 결과 이들은 골프 모임을 통해 A씨가 미인계로 조씨 등과 자연스럽게 친분을 쌓도록 한 뒤 도박판으로 유인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후 전문 도박기술자와 선수로 역할을 분담한 뒤 돌아갈 패를 정해놓고 카드를 섞는 척만 하는 ‘탄 작업’과 위에 있는 카드를 주는 척하면서 아래의 카드를 주는 ‘밑장빼기’ 수법 등을 이용해 돈을 가로챈 것으로 확인됐다.
시라소니파 조직원들은 사기도박으로 돈을 잃은 피해자의 연락을 받고 도박현장에 나타나 사기도박 총책 김모(53)씨로부터 도박자금 4,200만원을 빼앗는 등 해결사 역할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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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두환 기자 freeore@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