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공무원 간첩 사건 둘러 싼 파워게임
서울시 공무원 간첩 사건 둘러 싼 파워게임
  • 오두환 기자
  • 입력 2014-03-17 09:53
  • 승인 2014.03.17 09:53
  • 호수 1037
  • 11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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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조 여부가 아닌 사건 본질은 간첩”
▲ 국정원

검찰, 남는 것 없는 싸움판에 뛰어든 꼴
국정원, 국정원법상 수사협조 안 하면 그만

[일요서울 | 오두환 기자] 검찰의 ‘서울시 공무원 간첩 사건’ 증거 조작 의혹 수사가 속도를 내고 있다. 온도차는 있지만 여야를 비롯해 대통령까지 나서 이번 사건의 진실을 명백히 밝힐 것을 주문하고 있다. 하지만 검찰을 바라보는 시각이 곱지 않다. 지난 10일 진행된 국가정보원 압수수색은 오히려 구색 맞추기가 아니냐는 비판까지 받고 있다. 검찰은 8시간에 걸친 국정원 압수수색에서도 정작 사건의 핵심 연결고리인 수사국장의 방에는 들어가지도 않고 국정원이 만든 서류를 받아왔다.

‘서울시 공무원 간첩 사건’은 전 국민의 관심이 쏠려있는 중요한 사건이다. 정치적으로도 여야가 지방선거의 필승을 위해 이 사건에 온 힘을 쏟고 있다. 검찰의 수사 결과에 따라 국정원장의 사퇴여부도 결정될 수 있을 만큼 이 사건은 정치적으로도 큰 파장을 몰고 올 전망이다. 검찰도 마찬가지다. 검찰의 적극적인 쇄신을 바라고 있는 국민과 정치인들의 바람이 이번 사건을 통해 평가 받게 된다.

하지만 과연 검찰이 대통령, 청와대, 국정원의 눈치를 보지 않고 제대로 된 수사를 할 수 있을까. 이를 위해서는 김진태 검찰총장이 총장직을 걸고 ‘사즉생’의 각오로 달려들어야 한다.

구색맞추기 비난 이기고 의혹 밝힐 수 있을까

12일 민주당 우원식 최고위원은 당최고위원회의에서 “수 주 동안 문제가 불거졌음에도 국정원 사과문 발표, 대통령 유감 표명 후에야 압수수색이 단행된 것은 검찰의 정권 눈치보기 극치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청와대와 국정원, 검찰의 사전교감과 조율이 있었던 게 아닌가 하는 의혹이 강하게 제기되고 있는데, 이래서는 검찰의 수사 결과를 믿을 수 없다는 것이 국민의 대체적인 판단”이라며 “지난 2월 국회에서 통과된 상설특검제 1호를 즉각 발동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마디로 검찰의 국정원 수사가 ‘구색맞추기’라는 것이다. 지난 10일 진행된 국정원 압수수색에서 검찰은 이번 사건의 핵심인물인 수사국장의 방에는 들어가 보지도 못했다. 국정원에서 쉽게 문을 열어줬을 리도 없겠지만 검찰이 적극적인 의지도 보이지 않았다.

검찰이 이렇게 애매모호한 태도를 보일 수밖에 없는 이유는 이번 사건이 가지는 특성 때문이다. 지방 선거를 앞두고 터진 사건인 만큼 결과에 따라 여당이든 야당이든 한쪽이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또 내용 자체가 민감할 수밖에 없는 간첩에 관한 것이다. 그런 데다가 중국과도 연관돼 있어 정치는 물론 외교문제로 비화될 수 있어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이런 가운데 사건을 바라보는 시각차도 검찰의 행동에 제약이 되고 있다. 여당과 국정원 등은 증거조작부분에만 초점을 맞춰 수사하기를 바라는 눈치인데 반해 야당은 간첩사건의 증거까지 찾아주길 바라는 분위기이기 때문이다.

결국 검찰은 수사가 끝나 결과를 발표하더라도 한쪽에는 욕을 먹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자신들이 원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을 경우에는 “정권의 눈치를 봤다”거나 “수사 의지가 없었다”라는 말을 피할 수가 없다. 한마디로 남는 것 없는 장사에 나선 꼴이다.

검찰 총장과 검찰의 명예 걸렸다

이번 사건은 국정원의 협조 없이는 제대로 된 수사가 진행 될 수 없다.

하지만 검찰의 칼날이 국정원장을 향하고 있는 상황에서 선뜻 도움을 줄 리도 없다. 국정원은 이미 이번 사건에서 남재준 국정원장과 서천호 국정원 2차장은 몰랐다고 선을 그었다. 남 원장과 서 2차장은 결재라인에 없으며 이번 사건은 수사국장이 총괄해 담당 검사와 해당 수사팀이 협력해서 증거자료를 제출했다는 것이다. 꼬리자르기에 나선 것이다.

또 국정원법을 들어 국정원장이 검찰의 수사에 협조하지 않아도 된다는 자세를 취할 경우 검찰로서는 이를 해결할 방법이 없다. 대선 댓글 수사 때도 결국 검찰은 이 방패를 뚫지 못했다.

현재 검찰은 국정원 대공수사국 간첩사건 수사 단장을 1차 수사 선상에 올리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제대로 된 수사를 위해서는 그 윗선인 대공수사국장, 차장, 원장에 대해서도 수사를 해야 한다는 여론이 많다. 검찰도 이러한 여론을 알고 있다. 하지만 증거조작에 관여한 실무자들이 책임을 자신들의 잘못으로 돌려버리면 결국 윗선에 대한 수사는 물거품이 돼 버릴 수밖에 없다.

돌아가는 상황이 검찰에게 유리하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상황이 이렇게 돌아가자 정치권 일각에서는 김진태 검찰총장에게 성역없는 수사를 촉구하고 나섰다. 급기야 김 총장은 물론 검찰의 명예까지 언급하고 있다.

검찰도 이러한 상황을 잘 알고 있다. 다행스러운 점은 검찰이 이미 국정원 협력자를 체포해 조사한 가운데 국정원 소속 이모 영사까지 조사를 마쳤다는 점이다. 검찰의 수사를 지켜보는 관계자들은 한번 빼든 칼인 만큼 쉽게 거두지는 않을 것이란 전망도 있다.

이유는 김 총장의 이력 때문이다. 김 총장은 1995년 노태우 전 대통령, 1996년 한보그룹 정태수 회장 등의 입을 열어 당시 여권의 실세였던 홍인길 전 총무수석과 야권의 실세였던 권노갑 민주당 고문 등을 구속할 만큼 강단있는 검사다. 이런 그가 이번 사건을 그냥 넘어갈 리는 없다.

하지만 자칫 잘못하면 ‘간첩’ 사건의 본질이 흐려질 수 있는 만큼 신중한 자세가 필요하다.

서로 다른 입장 승자는 누구?

시간이 흐를수록 검찰의 시름은 깊어만 간다. 국정원과 검찰의 파워게임으로까지 번 진 ‘서울시 공무원 간첩 사건’은 아직까지 그 결말을 알 수가 없다. 14일자 동아일보 기사에 따르면 김 전 총장은 12일 대검찰청 간부회의에서 지금의 심정을 한시로 표현했다고 한다.
‘주천난주사월천(做天難做四月天)/잠요온화맥요한(蠶要溫和麥要寒)/출문망청농망우(出門望晴農望雨)/채상낭자망음천(採桑娘子望陰天).’

“하늘 노릇하기 어렵다지만 4월 하늘만 하랴/누에는 따뜻하기를 바라는데 보리는 춥기를 바라네/나그네는 맑기를 바라는데 농부는 비 오기를 바라며/뽕잎 따는 아낙네는 흐린 하늘을 바라네.”

대만의 학자 난화이진 선생이 ‘논어별재(論語別裁)’에 실은 시다. ‘서울시 공무원 간첩 증거조작 의혹’ 사건을 두고 청와대, 여야, 언론들이 서로 다른 입장을 내세우는 상황을 표현한 것이다.

freeore@ilyoseoul.co.kr

오두환 기자 freeore@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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