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있다” VS“아니다” 팽팽한 주장
“살아있다” VS“아니다” 팽팽한 주장
  • 이인철 
  • 입력 2004-01-29 09:00
  • 승인 2004.01.29 0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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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봉 한달도 지나지 않아 관객 500만명을 돌파한 영화 ‘실미도’가 숱한 화제를 낳고 있다. 영화가 흥행에 성공하면서 당시 역사 속에 묻혀있던 실존인물들이 모습을 드러내며 ‘실미도’부대와 관련된 얘기들을 전하고 있다. 이 가운데 최근 관심을 끌고 있는 것이 영화속 주인공 강인찬(가명)의 생존여부다. 공식적으로 실미도부대 훈련병중 생존자는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영화의 모델이 된 원작 백동호씨의 소설 ‘실미도’에는 강인찬과 또 다른 훈련병 1명이 생존한 것으로 묘사됐다. 하지만 생존한 기간병들은 생존자는 없다고 입을 모은다.

‘과연 실미도 훈련병 중 생존자는 있는 것일까?’ 영화 실미도는 지난 1971년 8월 23일 일어난 인천 실미도 북파공작원 훈련부대인 684부대 훈련병들이 교관 17명을 사살한 뒤 부대를 이탈, 서울 노량진까지 진출했다 자폭하는 일명 ‘실미도 사건’을 배경으로 만들어졌다. 당시 정부는 실미도 부대 훈련병들은 모두 자폭, 사살, 사형 등으로 숨졌다고 밝혔다. 영화에서는 주인공 강인찬은 폭탄을 품에 안고 자살을 선택했고 다른 동료 훈련병들 역시 강인찬의 몸을 덮고 모두 죽는다. 그러나 소설 ‘실미도’에서는 강인찬과 훈련병 1명이 동료 훈련병들과 함께 청와대로 향하지 않고 탈출해 현재 생존하고 있는 것으로 묘사돼 있다. 이에 대해 원작자 백동호(46)씨는 “옥중에서 만난 강인찬의 이야기를 통해 실미도 사건을 접하고 취재해나가는 과정에 여러 증언을 듣고 책을 쓰게 됐다”며 “그는 분명 살아있다”고 말했다.

백씨는 “강인찬이 모습을 드러내고 싶어 하지 않는다”며 “입장을 바꿔놓고 생각해 보면 그의 이런 입장을 이해할 수 있다”고 생존인물임을 강조했다. 백씨에 따르면 총 31명의 훈련병 중 7명은 훈련과정과 무의도 강간사건으로 죽어 24명의 훈련병이 남는다. 그런데 집단 탈출 사건이 터지면서 한 명은 동료들이 쏜 총에 맞아 죽었고 나머지 2명은 살아남기 위해 동료들과 같이 청와대로 가지 않고 보트를 타고 다른 곳으로 탈출했다는 주장이다. 백씨는 또 “강인찬이 자신과 함께 탈출에 성공했던 동료 훈련병과 다음해 모 일 서울역에서 만나기로 했지만, 그가 나오지 않아 그 사람의 이후 행방을 모른다고 말했다”고 해 또 다른 생존자 1명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백씨는 이를 뒷받침하는 객관적인 증거들로 탈출한 실미도 훈련병들을 최초 발견한 김모 일병이 21명이라고 보고한 증언, 당시 국내외신문기록에 탈출 인원이 21명으로 기재된 점, 사건 당일 오후 1시20분경 당시 대간첩대책본부에도 21명으로 보고된 점, 무의도에 살고 있던 마을 주민의 증언을 들었다.특히 “훈련병 2명이 보트를 타고 어디론가 가는 데 그들을 향해 총을 쏘는 것을 보았다”는 무의도 주민의 증언을 강조했다. 그러나 당시 실미도 부대에 몸담고 있었던 교관과 기간병들은 “생존자는 없다”고 입을 모은다. 영화 속 조중사(허준호)역과 가장 비슷한 인물로 알려진 당시 소대장 김이태(60)씨는 “내가 알기로는 모두 죽은 것이 맞다”며 “생존자는 없다”고 말했다.

김씨는 “소설 속에 등장하는 강인찬은 가명이겠지만, 부대에서 강씨 성을 가진 사람은 두 사람이 있었다”며 “두 사람모두 부대에서 훈련 도중 죽었다”고 밝혔다. 생존 기간병인 양동수씨도 “죽은 훈련병들의 시신을 직접 눈으로 다 확인했다”며 “생존자는 없다”고 잘라 말했다. 양씨는 또 “시신은 모두 19구였는데 3구가 얼굴을 확인할 수 없어 군화를 벗겨 이름을 확인했다(훈련병들은 군화에 이름을 기재했다)”며 “생존했던 4명은 재판과정과 수감장소에서 모두 확인했다”고 밝혔다.

양씨는 또 “군에서 복무할 때 휴가를 나가 서울 명동에서 동료들과 함께 모 처에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는데 등뒤에서 누군가가 실미도에서 있었던 내 일을 다른 사람들에게 실감나게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며 “한참동안 듣다가 참다못해 뒤돌아서 그 사람에게 항의했는데 그러자 무릎을 꿇고 미안하다고 사정했던 경험이 있다”고 자신이 겪었던 일화를 하나 소개했다.당시 소대장 김양부(59)씨는 “훈련병들은 단결력이 강해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며 “훈련병 중에 이탈자가 있었다면 그냥 놔두고 나올 그들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송석주(당시 소대장)씨도 “생존한 훈련병은 없다”고 전했다. 그렇다면 당시 21명으로 보고된 군 기록은 잘못된 것일까?

이인철  chlee@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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