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모씨 등 3명 지분 11% … 경영권 싸움
원한도 없고, 직원도 아닌 그들의 정체는

[일요서울 | 박시은 기자] 하루아침에 최대주주가 바뀌어 55년간 회사를 지켜온 회장이 위기에 처한 드라마 같은 일이 벌어졌다. 국산 선풍기 명가 신일산업 김영(60) 회장의 얘기다. 신일산업을 둘러싸고 벌어진 적대적 인수·합병(M&A) 의혹 논란은 개인투자자인 황귀남(52)씨의 지분 매집에서 시작됐다. 이번 논란은 어느새 법적 분쟁으로까지 비화된 상태다. 그런데 개인투자자인 황씨가 왜 갑자기 M&A에 나선 것일까. 또 이 분쟁으로 신일산업의 향방은 어떻게 될까. [일요서울]이 사건의 내막을 들여다봤다.
신일산업에서 형제간의 지분 싸움도 아니고 원한관계로 인한 경영권 다툼도 아닌 알 수 없는 경영권 싸움이 벌어졌다.
신일산업은 1959년 설립된 후 국내 최초로 전기모터를 개발하고, 1970~1980년대 선풍기로 이름을 떨쳤다. 그동안 김 회장은 대외활동에 나서기보다 경영에만 힘써왔다. 그런데 지분상의 취약구조를 파고든 적대적 M&A로 위기에 봉착하면서 김 회장의 조용한 경영 행보에 차질이 생겼다.
신일산업의 경우 김 회장과 특수관계인의 지분율은 9.90%(503만주)밖에 되지 않는다. 이렇다보니 개인투자자들이 지분을 확보하고, 다른 주주와 의결권을 공동으로 행사하는 주주간 계약을 체결하면 언제든지 최대주주가 바뀔 수 있다.
업계에 따르면 지난달 황 모씨 등 3명은 이 같은 방법으로 신일산업의 최대주주가 됐다. 황씨 등은 경영 참여 목적으로 신일산업 지분 11.27%(573만주)를 확보했다고 밝혔다. 황씨가 가진 지분은 5.11%(260만4300주)이지만 황씨의 우호세력들이 각각 2.7%(137만5220주), 3.45%(175만8780주)를 매수해 특별관계자 지분율이 증가했다.
개인투자자 황씨가 최대주주로 올라서면서 적대적 M&A로 의심되는 행보를 보이고 있으나 신일산업 측은 명확한 이유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신일산업 관계자는 “회사 근로자도 아니었고 어떤 관계도 없는 인물이다. 오너일가와의 친분도 없는 것으로 안다”며 “적대적 M&A로 추측하고 있다”고 말했다.
최대주주로 올라선 황씨는 충남 천안에서 공인노무사 사무실을 운영한다는 사실 외에는 신일산업과의 어떤 관계도 밝혀진 것이 없다.
또 신일산업이 오는 4월 139억 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계획하고 있지만 급한 불을 끄는 데 불과하다는 지적도 있다. 근본적으로 지분 취약 구조를 개선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유상증자로 김 회장과 황씨 간 지분 격차는 조금 더 벌어지게 할 수 있지만 우호지분으로 활용할 만한 주요주주가 없는 구조를 해결하지 않으면 또 다시 경영권을 위협받을 수 있다. 더욱이 이 같은 취약구조는 단번에 해결하기도 어렵다.
신일산업은 현재 자사주를 보유하고 있지 않으며 어느 정도 지분율을 가진 기관투자자도 전무하다.
황씨 등은 현재 사내외 이사와 감사 선임, 적대적 M&A 방어를 위한 회사 정관 개정 등을 요구하며 법원에 주주총회 의안 상정 가처분 신청을 제기한 상태다. 황씨는 김앤장 법률사무소 소속 변호사 3명을 선임했다.
황씨는 지난달 27일 공시를 통해 신일산업 정기 주주총회에서 “회계장부 열람 및 본인을 포함해 이혁기, 정재성 씨를 사내이사로, 윤대중 씨와 오영학 씨를 사외이사로 선임해야 한다”는 신청서를 냈다고 밝혔다. 아울러 황씨는 기존 감사를 해임하고 새로운 감사를 선임해야 한다고도 주장했다.
황씨가 사외이사로 선임해야 한다고 지목한 윤씨의 경우 신일산업 지분 2.7%를 보유한 황씨의 우호세력이다.
적극적 경영 방어 돌입
이에 신일산업도 황씨 등에 대해 강력 대응하기로 방침을 정하고, 금융당국 조사 요청과 여론 환기에 나섰다.
김 회장 측은 보유한 신주인수권 255만주를 행사해 보통주로 전환하면 지분율이 14.21%(753만주)로 늘어나지만 경영권을 노린 활시위가 당겨진 만큼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신일산업은 같은 날 유상증자 증권신고서 내용 수정문에서 “경영권 참여 분쟁과 관련해 주주피해 예방을 위해 황씨 측을 금융감독원에 조사 의뢰한 상황이다”며 “황씨의 요구는 실현되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2004년에도 적대적 M&A 위기에 처한 바 있어 ‘특별다수결’과 ‘황금낙하산’ 조항을 정관에 추가해 방어체제를 갖춰놨기 때문이다.
‘특별다수결’이란 2인 이상 이사 해임은 출석한 주주의 90%, 발행주식 총수의 70% 이상의 찬성이 있어야 결의된다는 내용이다. ‘황금낙하산’ 조항은 적대적 M&A로 이사가 임기 중 실직하면 통상 퇴직금 외에 보상액으로 대표이사에게 30억 원, 일반이사에겐 20억 원 이상을 지급해야 한다는 내용의 신일산업 정관이다.
신일산업 발행주식 총수가 5092만 주이므로 특별다수결원칙에 해당하려면 황씨 측이 적어도 3565만 주 이상을 확보해야 한다. 또 김 회장을 제외한 이사진 임기는 2016년 3월까지다. 대략 3~4명을 이사진에서 떨어뜨린다고 가정하고 ‘황금낙하산’ 조항을 이행하려면 수십억 원대 추가 자금이 필요해야 하므로 사실상 황씨의 요구는 실현성이 없다는 설명이다.
그 때문에 증권가에서는 황씨가 주가 등 시세차액을 노리고 있다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경영권 분쟁이 있게 되면 서로 지분 확보에 열을 올리게 되고, 그러면서 주가가 올라가게 될 것이라는 기대감이 주가를 상승시키기 때문이다.
실제 신일산업주가는 경영권 분쟁 소송 소식에 급등했다. 지난달 28일 신일산업은 전일대비 9.35%(165원) 급등한 1930원을 기록하기도 했으며 최고 50%까지 급등한 바 있다.
한편 신일산업은 지난해 매출액 1202억 원, 영업이익 68억9000만 원을 기록하며 사상 최대 실적을 올렸다. 매출 중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선풍기는 창사 이래 최고 기록인 143만대를 판매했다. 제습기와 온수매트 등 계절상품과 일반 생활가전에서도 높은 성장세를 보인 결과다.
이를 바탕으로 올해는 창립 55주년을 맞아 ‘2016년 매출액 200억 원’ 목표를 세우고 창사 이래 처음으로 연예인 광고모델을 기용해 제습기 시장을 적극 공략할 계획이다.
신일산업 관계자는 “뜻밖의 사건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면서도 “어려움 속에서도 기존의 계획들을 차질 없이 진행하고 있으며, 목표 달성에 적신호가 켜지지 않도록 할 것이다”고 밝혔다.
seun897@ilyoseoul.co.kr
박시은 기자 seun897@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