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군부 ‘이상’설 긴급추적
북한군부 ‘이상’설 긴급추적
  • 이현진 북한문제전문가 
  • 입력 2004-12-28 09:00
  • 승인 2004.12.28 0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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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군부가 수상하다. 김정일의 북한 정권이 체제 이상설에 시달리면서 군부의 동향에 눈길이 쏠리고 있는 것이다. 1994년7월 김일성 사망 이후 권력을 승계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지난 10년간 북한체제를 선군정치란 기치로 이끌어 왔다. 모든 것보다 군대를 우선시한다는 선군정치에 따라 북한 군부는 막강한 권력기반을 구축했다. 군부의 핵심 포스트에는 김정일의 측근들이 포진했다. 노동당과 정치적인 무게가 실린 자리에 군부인사가 중용됐고 경제부문에 대한 군의 장악력도 높아졌다. 그런데 최근들어 군부 쿠데타설이나 김정일 위원장에 대한 저격설 같은 소문이 꼬리를 물고 벌어지고 있다.

군부의 발걸음에 북한 관측통들의 관심이 모아지는 것도 이 때문이다.미국의 뉴욕 타임스지는 지난 8일 인터넷판에서 “북한 군부가 김정일 독재체제에 대해 잇따라 반기를 들고 봉기하고 있다”고 전했다. 지난 92년 인민무력부 부총참모장인 안종호가 김일성 부자의 제거를 위해 쿠데타를 일으키려다 발각돼 처형된 사실도 이 신문은 지적했다. 신문은 또 미 중앙정보국(CIA)은 40억달러(4조4천억원)로 추정되는 김정일의 재산 중 상당부분이 스위스 비밀계좌에 은닉돼 있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는 점도 상기시켰다. 북한군부가 가난에 빠져들고 있는 나라사정과 달리 호화로운 생활을 하고 있는 김정일 위원장의 리더십에 도전하고 있음을 내비친 것이다.

우리 정부 당국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이런 워싱턴발 북한 체제붕괴설은 잇달아 외신을 타고 날아들고 있다. 11월 미국 대선에서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재선된 이후 불거지고 있는 김정일 권력 이상설은 불길이 잡히지 않고 있는 것이다. 군부의 이상동향설과 북한 정권 내부에서 벌어지고 있는 심상치 않은 움직임이 전혀 근거없는 이야기들이 아니라는 점이 속속 확인되고 있다.고위 정보소식통은 북한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련의 이상동향은 이미 지난 4월부터 조짐이 보이고 있던 사안이라고 귀띔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매제(여동생 김경희의 남편) 장성택 노동당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의 숙청설이 나온 시점부터 짚어봐야 한다는 얘기다.

북한의 평북 신의주에 인접한 용천역에서 중국방문을 마친 김정일 위원장이 통과한 것과 비슷한 시기 대규모 열차폭발사고가 터진 것도 이 때라 한미 정보당국은 촉각을 곤두세웠다고 한다.휴대전화를 이용한 김정일 위원장 암살시도설이 나온 직후 북한당국이 주민들이나 평양주재 국제기구 인사들로부터 휴대전화를 몰수하기 시작한 것은 5월말이다. 이어 북한은 7월부터 김일성 조문 불허를 이유로 남북당국 대화를 중단했다. 또 김정일의 처 고영희가 6월 프랑스에서 숨진 사실이 알려지면서 북한내부의 권력승계를 둘러싼 암투설이 나온 게 9월이다. 북한의 각 기관이나 호텔·국제회의장 등에 김일성 초상화와 함께 걸려있던 김정일 위원장의 초상화가 7월께부터 내려진 게 알려진 것은 11월부터다.

이런 일련의 분위기 속에 북한당국은 지난 9월부터 11월에 걸쳐 평양의 권력구조를 전격적으로 개편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여기에서 주목되는 것은 노동당 중앙위원회 산하의 군사부를 해체한 것이다. 노동당 기구의 개편이 확인된 것은 94년 김일성 사망이후 처음이란 점에서 눈길을 끈다. 정보 소식통은 군사부의 해체와 관련 “북한 권력의 핵인 군부에 대한 노동당의 간섭을 배제하고 군부에 대한 김정일 위원장의 친정체제를 강화하려는 조치”라고 풀이했다. 이에 따라 군 최고사령관과 국방위원장을 겸하고 있는 김정일 위원장과 총정치부-군일선으로 바로 연결되는 채널을 통해 군부를 직할통제하는 시스템이 구축됐다.사실 북한 당국이 군심 추스르기에 나선 것은 지난 2000년 남북정상회담을 전후해서도 있었다. 남북 화해협력 분위기 속에서 자칫 군부 강경세력이 불만을 가질 수 있다는 판단에 따라 이를 조기에 차단하려는 포석이었던 것이다.

당시 평양의 북한군 최고사령부와 지방 군단·사단의 군부동향을 체크하던 우리 정보당국에 정상회담 이후 이상 징후가 몇 차례 포착됐다고 한다. 특히 정상회담 합의문이라 할 수 있는 6·15공동선언이 조인된 날짜가 바로 서해교전에서 북한군이 참패를 당한지 꼭 1주년이 되는 날에 이뤄졌다는 점은 북한 군부를 자극하기에 충분했다고 한다.당시 상황은 여기에서 멈추지 않았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6월13일 평양 순안공항에 도착한 김대중 대통령을 영접하기 위해 북한군 육·해·공군 명예 위병대를 불러 환영행사를 갖게 했다. 6월15일 환송오찬에는 북한군의 사실상 최고 실권자라 할 수 있는 조명록 총정치국장을 사복차림으로 참석시켜 김대중 대통령에게 술을 따르도록 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김 대통령과의 면담 때도 군부를 자극할 수 있는 말을 했다.

“군은 가만 나두면 주적개념만 생기고 하니 경의선 복원 공사에 동원해야겠다”는 언급이었다. 실제 최근 북한군 3개 사단 정도가 경의선 복구공사에 투입되기 위해 휴전선 인근지역에 텐트와 장비설치 공사를 하는 등 준비를 하고 있는 것으로 우리 정보당국은 위성촬영 등을 통해 파악하고 있다고 한다.북한 군부의 남북화해에 대한 반발은 정상회담 이전부터도 표출되기 시작했다고 익명을 요구한 군사 정보 소식통은 말했다. 지난 98년 6월 정주영 현대명예회장의 소떼 방북을 둘러싼 북한 군부와 대남기관 간의 알력이 그 시초로 알려져 있다. 김대중 정부 들어 잇단 화해 분위기를 못마땅하게 생각하던 북한 군부에 소떼 방북을 위해 판문점을 열어 달라는 대남기관의 요구가 좋게 들릴 리 없었다.

조명록·김영춘등 북한군부는 반발했고 대남기관인 조국평화통일위원회(통일전선전술 담당)와 아태평화위(대남경협 등 전담)등을 총괄하는 대남비서 김용순은 난감해했다. 북한 군부는 당시 “어떻게 지켜온 판문점인데 노인네가 소떼 몰고 넘어오게 하느냐 “며 강하게 불만을 나타냈다고 한다. 두 번째 군부의 자존심을 결정적으로 상하게 한 것은 98년 10월 이뤄진 금강산 관광이었다. 군부는 이 때도 군사요새나 다름없는 금강산을 남한 관광객에게 내준다는 게 말이 되느냐며 진통이 있었다고 한다. 그렇지만 평양 상층부의 결심은 이미 금강산을 특구로 현대에 내주는 쪽으로 기울어져 있었고 군부는 또다시 쓴 맛을 봐야 했다. 김정일 위원장도 이런 군부의 분위기를 감지하고 있었던 것으로 우리 정보당국은 파악하고 있다. 김정일 권력기반의 바탕이자 북한 체제를 떠받치고 있는 최대 세력이란 점에서 김위원장은 군부에 공을 들여왔다.

김 위원장은 아버지인 김일성 주석 사망 이후 무엇보다 군부에 대한 배려에 각별한 신경을 썼다. 군부 고위 인사들에게는 최신형 벤츠와 특각(별장)이 주어졌고 자신의 생일이나 주요 기념일에는 북한 군부에 대한 대대적인 승진인사가 이뤄졌다. 북한군 장성의 숫자가 우리의 3-4배에 이르는 1천3백명 수준이 된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한미 정보당국은 그 동안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군에 대한 확고한 통제력과 지지기반을 갖고 있다고 판단해 왔다. 하지만 이런 생각이 잇단 군부 이상조짐에 따라 흔들리고 있다는 얘기들이 나온다. 북핵문제 등을 놓고 김정일 위원장과 부시 대통령의 기세싸움이 본격화될 2005년에 북한 군부가 어떤 결단을 내리지는 않을지 향후 행보가 주목된다.

이현진 북한문제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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