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에서 떨어지면 ‘토스’하는 피감기관의 비애
공직자윤리법 피해 메뚜기 뛰는 고위직들 ‘닮은 꼴’
[일요서울 | 김나영 기자] 한국소비자원이 공정거래위원회 퇴직 간부들의 임시보호처로 지목됐다. 얼마 전 새로 취임한 부원장은 물론 2008년부터 소비자원에 재임했던 부원장들은 하나같이 공정위 출신이다. 게다가 공정위 출신 부원장들은 소비자원에서 연장된 임기를 다 채우지도 않은 채 한국상조공제조합으로 메뚜기 뛰듯 이동했다. 이와 같은 행태는 공직자윤리법상 퇴직 후 유관기관 취업 제재를 피하기 위한 출신세탁 코스다. 앞서 특수판매공제조합에도 이사장을 내려보냈다는 이유로 몸살을 앓고 있는 공정위의 낙하산 투하 행각을 짚어봤다.

유독 학연ㆍ지연ㆍ혈연 등 인맥을 따지는 우리나라에서 익숙한 단어가 바로 ‘낙하산’이다. 이런 탓에 공직사회가 온통 ‘낙하산 천국’이 된 것도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다. 최근 공정위의 낙하산이 속속들이 발견돼도 국민들이 심드렁하게 반응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러한 가운데 공정위의 산하 기관인 소비자원에서도 낙하산 인사가 반복적으로 벌어진 것이 드러났다. 임은규 전 공정위 경쟁제한규제개혁작업단장이 소비자원의 신임 부원장으로 취임하면서 세 번째 낙하산을 수놓았다.
임 부원장이 공정위를 떠난 것은 지난달 10일이고 소비자원으로 자리를 옮긴 것은 같은 달 17일이다. 언뜻 보면 일주일 만에 새 옷으로 갈아입은 것처럼 보이나 사전 작업은 치밀했다.
소비자원이 부원장 선임을 위해 임원추천위원회를 연 것은 지난해 11월 28일이다. 이후 12월 18일까지 3주 동안 공모부터 서류접수, 최종면접을 모두 마쳤고 그 대상에는 임 부원장도 포함돼 있었다.
그간 소비자원은 부원장 선임 과정에서 시간을 끈 전례가 별로 없었지만 이번에는 최종면접이 끝난 뒤 2개월 동안 잠잠했다. 그러다가 임 부원장이 공정위를 떠나자마자 뒤늦게 부원장을 공식발표하며 맞이한 셈이다.
소비자원ㆍ상조공제조합의 낙하산 투하 견디기
물론 낙하산의 사례가 임 부원장만은 아니다. 바로 전임자인 장득수 전 소비자원 부원장도 2011년 1월 5일까지는 공정위에 몸담고 있었으나 같은 달 28일에는 소비자원으로 둥지를 바꿨다.
장 전 부원장은 공정위 국제협력과장, 인사과장, 시장감시정책과장, 경쟁제한규제개혁작업단장 등을 두루 거친 공정위 출신이다. 지난해 1월에는 임기가 연장됐으나 같은해 11월 상조공제조합 이사장으로 둥지를 교체하면서 소비자원에서 중도퇴직했다.
또한 그 전임인 김범조 전 부원장은 공정위 경쟁촉진과장, 하도급과장, 조사국장, 서울사무소장을 거쳐 2008년 8월 소비자원으로 자리를 옮겼다. 역시 2010년 8월 임기가 연장됐는데 같은 해 12월 상조공제조합으로 터전을 바꿔 이사장으로 취임한 후 부원장직에서 중도하차했다.
이는 모두 소비자원의 소관 부처가 옛 재정경제부에서 공정위로 바뀐 2007년 이후부터 지속적으로 벌어진 일이다. 상조공제조합 또한 앞서 논란이 인 특판조합과 더불어 공정위가 감독권을 갖고 있는 조합으로 이사장 연봉이 수억 원에 이른다는 후문까지 돈다.
부원장들이 소비자원에 새로 취임한 2008년, 2011년, 2014년이라는 숫자도 관전 포인트다. 소비자원의 부원장 임기는 2년 단위로 상조공제조합 이사장 임기인 2년과 일치한다. 그러나 선출과 퇴임에 따른 공백기가 존재하므로 이를 메우기 위해 일단 1년씩 임기를 연장한 후 이사장직이 확보되면 중도퇴직하는 방법을 쓴 것이다.
결국 소비자원이 공정위 산하로 들어간 2007년 이후 부원장직에는 관련 전문가가 한 명도 재임하지 않게 됐다. 또 상조공제조합도 처음 출범한2010년 정창수 초대 이사장을 제외하면 관련업계 출신은 한 명도 없는 것이 현실이다.
정형화된 출신세탁 코스? 조직적 압력 가해
이로써 공정위 퇴직 간부들이 공직자윤리법을 피하기 위해 출신세탁 코스를 정립한 정황이 여실히 드러났다. 현행 공직자윤리법은 공무원 및 공직유관단체 임직원이 퇴직일로부터 2년간 퇴직 전 5년 동안 소속했던 부서의 업무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사기업체에 취업할 수 없음을 명시하고 있다.
더불어 노대래 공정위원장을 비롯해 당시 수장이던 정호열ㆍ김동수 전 공정위원장의 행보도 관심을 끈다. 이미 경찰은 공정위가 특판조합 이사장 선임에 조직적으로 압력을 가한 정황을 포착하고 전임 위원장들을 소환하는 등의 조치를 취했다.
만약 공정위가 소비자원과 상조공제조합 인사에도 관여했다는 이유로 수사의 폭이 넓어지면 다른 피감기관인 직접판매공제조합, 상조보증공제조합에서도 이러한 사례가 발견될 것으로 예측된다. 현재까지는 공정위 피감기관 4곳의 역대 이사장 17명 중 12명이 공정위 출신으로 알려져 있다.
피감기관 관계자는 “다소 늦은 감이 있지만 이제는 낙하산과 같이 고질적인 병폐를 단순한 도덕적 해이로 치부하지 않겠다는 의지가 엿보인다”면서 “향후 낙하산 근절을 위해 꺼내 든 형사처벌이라는 카드가 먹혀 들어갈지는 미지수”라고 말했다.
nykim@ilyoseoul.co.kr
김나영 기자 nykim@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