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제가 짧은 시간 안에 고도성장을 할 수 있었던 것은 기업과 사람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특히 이들 기업가들은 독특한 경영이론과 기법들을 창안했으며 한국의 기업풍토에 적합한 비즈니스 모델과 경영이론들을 선보이기 시작했다. 삼성을 창업한 이병철은 인재제일주의를, 현대의 정주영은 생산의 혁신을, LG의 구인회는 인화모델을 각각 창안해 냈다. 현재 대한민국이 경제 강국으로 부상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이들 1세대 창업자들의 도전과 혁신적인 창업정신이 아니었으면 불가능했을지도 모른다. [일요서울]은 한국 경제의 한 획을 긋고 있는 기업들의 창업스토리를 출판물 또는 기존 자료를 통해 다시금 재구성해 본다. 마흔 네 번째 창업스토리의 주인공은 농업 글로벌을 이룬 하림(회장 김홍국)이다.

김홍국 하림 회장은 고등학교 3학년 때 처음으로 사업자등록을 냈다. 물론 미성년자다보니 보증인을 세웠다. 사업자등록을 낸 이유는 간단하다. 그 때 막 배합사료 공장들이 들어서면서 사료를 사 쓸 수 있었는데, 사료를 사기 위해서는 사업자등록증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고등학교를 다닐 때 그는 이미 큰돈을 만지고 있었다. 초등학교 때부터 그렇게 모은 돈은 어느덧 3000만 원 가까이 돼 있었다. 그 당시 김 회장은 마을 전체에서 한 대 있을까 말까 한 250cc 오토바이를 타고 학교를 다닐 정도였다.
위기와 실패가 준 깨달음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김 회장은 본격적으로 사업에 뛰어들었다. 돈이 생기니까 주변에 친구들이 늘어났다. 시간이 나면 술을 마시러 다녔다. 고등학교 때까지는 김 회장의 노동력만으로 사업을 했다. 즉 인건비가 하나도 들지 않았다는 말이다. 그러나 규모가 점점 커지면서 혼자서는 감당할 수가 없게 됐다. 그래서 사람을 고용했다. 그는 일을 그 사람에게 맡기고 술을 마시러 다녔다. 당연히 사업은 뒷전이 됐다.
그러던 어느 날 위기가 찾아왔다. 전염병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축산업의 특징 때문이었다. 돌림병이 돌면서 닭 값이 폭락한 것이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김 회장의 수중에는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 그러나 닭들이 살아 있는 한 사업은 계속해야 했고, 사료 값을 댈 수 없어 돈을 빌려야 했다.
마을에서 돈을 얻는데 이자가 자그마치 월 5부였다. 원금의 60%가 1년 이자였던 것이다.
이 때 김 회장은 일생일대의 큰 실패를 맛봤다. 집으로 연일 빚쟁이들이 들이닥쳤다. 그는 돼지우리 한쪽 구석에 모기장을 치고 숨어 지냈다. 그런 고생을 하면서 반성을 했다. 뒤늦은 후회였고, 이미 때도 늦어 있었지만 문제점을 분석했다.
그 때 생각한 것이 닭 값에 변동이 생기더라도 영향을 받지 않는 방법을 찾아야 겠다는 것이었다. 생산원가를 낮춰 능동적으로 대처하면 되겠다는 결론을 얻었다. 생산원가를 낮추기 위해서는 사료를 직접 만들어야 했다. 그게 바로 통합경영(Vertical Integration)이었다.
물론 당시에는 김 회장도 통합경영이 뭔지도 몰랐다. 그저 막연히 그렇게 생각했을 뿐이다. 그러니까 사료를 직접 만들면 사료 값 걱정에서 자유로울 수 있겠다는 게 통합경영에 대한 인식의 시초였던 것이다.
통합경영 토대가 되다
그 와중에 또 이런 생각도 했다. 닭 값이나 돼지 값이 폭락해도 이상하게 소시지 값은 안 떨어진다. 왜 그럴까? 그 때 번쩍 하고 깨달은 것이 있었다. 그렇다 고기를 가공해서 식료품을 만들면 원자재 값에 관계없이 제 값을 다 받을 수 있겠구나.
그러던 차에 통합경영으로 뉴질랜드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이가 농민 교육을 위해 대전으로 강연을 왔다. 당시 농민 20여 명이 강연을 듣기 위해 그 자리에 참석했는데 그의 말을 제대로 알아듣는 사람은 드물었다.
김 회장은 강연자가 나눠준 통합경영에 관한 교재를 집으로 가지고 와 읽고 또 읽었다. 그 동안 김 회장이 머릿속으로 수도 없이 고민했던 생각들, 바로 그것이었다. 다른 사람은 빚을 지고 사업이 망해도 나는 빚을 지지 않을 방법, 출렁이는 원자재 값에 능동적으로 대비할 수 있는 방법, 그가 머릿속에만 그릴 뿐 공식화하지 못했던 것을 강연자는 학술적으로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놓고 있었다.
그날 이후 김 회장은 즉각 통합경영을 농업 비즈니스에 적극 도입했다. 바로 하림만의 독특한 경영방식인 ‘삼장통합경영’이 탄생한 것이다.
그 때가 1980년대 초였다. 그 때 사람들은 김 회장에게 미쳤다고 했다. 그는 그 좋던 친구와 술도 끊었다. 불필요한 사람은 만나지 않았다. 그날 이후 30대 초반까지 그는 단 하루도 쉬지 않았다. 사람이 일에 미치니까 아프지도 않았다. 기적처럼 한 번도 아파 누워 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그 어려운 시절들은 오늘의 하림을 탄생시켰다. 당시의 실패가 큰 교훈이 됐으며 새로운 실험을 할 수 있는 발판이 됐다.
그러나 하림은 기업 경영상의 이유로 또 한 번의 큰 위기를 맞았다. 뜻밖의 화재가 발생해 만 평이 넘는 공장이 한 순간에 잿더미로 변해 버린 것이다. 화재 사고는 1980년대 초 닭 값 폭락으로 인한 실패와 1997년 외환위기에 이어 세 번째 닥친 시련이었다.
하지만 공장이 불에 탔다고 경영을 멈출 수는 없는 일이었다. 비즈니스의 첫째 조건은 신용이기 때문이다. 하림은 화재 발생 즉시 다른 공장을 빌려 닭 생산 및 영업을 계속했고 일시적인 위기를 맞았지만 곧 극복할 수 있었다.
지난날 실패의 경험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화재 사고 당시 김 회장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도와주기도 했다. 이 때 하림은 기업은 사회와 더불어 나갈 수밖에 없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
농업 속 숨은 금은보화
하림은 우리나라가 주변에 축복받은 시장을 가지고 있다고 판단했다. 일본이라는 거대 시장이 가까이 있고 넓고 넓은 시장인 중국도 지척에 두고 있다. 하지만 과거에는 안타깝게도 그 좋은 시장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었다.
먹지 않고 살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먹거리 시장은 유행을 타지 않는다. 조금만 눈을 돌리고 시야를 확장하자. 농업의 장래는 무궁무진하다. 우리가 오늘날 말하는 식량 자급은 쌀 자급이 아니다. 농업 무역의 흑자를 이루는게 바로 자급을 달성하는 것이다. 농림축산물 무역적자가 해마다 늘어나면 농업 관련 산업 전체가 덩달아 위축되고 만다. 글로벌 마인드를 가지고 농업의 미래를 내다봐야 한다.
바로 하림의 생각이었다. 정부 차원의 노력도 필요했다. 당시 농업을 보호한다는 미명하에 관련 산업을 각종 규제로 꽁꽁 묶어 놓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다음은 통합경영으로 경영구조를 혁신해야 했다. 하림은 경영구조를 바꾸고 규제를 완화하면 많은 품목에서 20~30%의 원가절감이 가능해질 것이라고 예측했다.
이러한 경영 기법들은 이미 전 세계적으로 보편화 돼 있다. 회사를 경영하는 것만이 경영의 전부는 아니다. 농업도 경영이다. 많이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자동차 공장에서 생산원가를 3% 줄이는 것보다 농업 환경에서 30% 줄이는 것이 훨씬 쉬울 수 있다. 월등히 높은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것이다.
직업에 대한 편견을 버려라
사람들 대부분은 사회적 지위가 높은 것을 직업의 우선순위에 둔다. 김 회장은 이를 참으로 어리석은 생각이라고 여겼다. 길에서 구두 닦는 것을 낮고 천한 직업으로 여기는 사람들이 많지만 실상은 구두 닦는 사람들이 일반 직장인들보다 더 많이 벌고 있다.
‘직업이 나를 영화롭게 하지 못하면 내가 직업을 영화롭게 하라’는 말이 있다. 우리는 사회적 고정 관념에 너무 얽매여 있다. 옛날에는 도시로 나가지 않고 시골에 눌러앉아 닭을 키우겠다고 하면 한심한 자식으로 취급받기 십상이었다. 농사는 힘만 있고 배우지 못한 사람의 전유물로 생각하던 시대가 있었고, 현재까지도 그런 인식이 일부 남아 있는 실정이다.
김 회장은 취업이 안 된다고 아우성치지 말고 오픈 마인드로 주변을 돌아보라고 말한다. 눈을 돌려 보면 돈을 벌 수 있는 일자리가 수없이 많다. 열정적으로, 창의적으로 자기 앞날을 개척해 나갈 수 있다는 설명이다. 꿈을 꾼다는 것은 이룰 수 없는 높은 곳을 보는 것이 아니라 바로 자기 위를 보는 것이다.
꿈은 낮은 곳에서 높은 곳으로 점차 높이를 상승시켜야 한다. 김 회장 역시 그러다 보니까 통합경영이 보이고 오늘날 하림을 이룰 수 있었다. 모든 꿈은 한 번에 이뤄지지 않는다.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 나가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문제점을 발견하고 발견 즉시 해결하는 것, 이것이 글로벌 마인드, 글로벌 경영이다. 지금 가장 각광받는 산업은 인간의 삶과 직결된 생명공학이다. 생명공학의 주된 원자재는 동물, 식물, 미생물이다. 다시 말해 농업이다.
농업은 아트이자 곧 미래다
가공식품은 집에서 만든 음식보다 훨씬 위생적이다. 앞으로 주방 면적은 점점 더 줄어들고 대신 식품회사는 계속 늘어날 것이다. 식품의 주된 우너료는 농산물이다. 농업은 미래의 가장 경쟁력 있는 산업이며, 농업과 관련한 직업은 미래의 가장 가치 있는 직업이 될 것이다.
하림은 철저히 설비 집약적인 사고로 무장돼 있다. 또한 하림은 기업가적인 사고를 한다. 병아리 한 마리를 부화시키고 키워서 고기를 생산하고 제품을 만들기까지 모든 과정을 기계설비가 처리한다.
하림은 단순히 닭고기를 생산하는 회사에서 벗어나 닭고기 전문회사로서 농장, 공장, 시장을 하나로 묶는 통합경영 시스템을 통해 경영의 효율성을 높이고 있다. 닭고기 시장의 확대를 기하고 있으며 바이오 식품 분야와 닭 쓸개를 이용한 신약 개발 등 생명공학 분야에도 투자를 아끼지 않는다.
하림은 감성적으로 사고해야 할 상황과 냉철한 머리로 사고해야 할 상황을 반드시 구분 지어야 된다고 말한다. 비즈니스는 감성이 아닌 현실이다. 우리 농업의 경쟁력은 이성적인 사고로의 전환에서부터 비롯될 수 있다.
그 때문에 하림은 말한다. “농업도 글로벌이다. 우리의 미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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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박시은 기자>
<출처=글로벌 스탠더드│지은이 아주대│㈜샘터사>
박시은 기자 seun897@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