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체부, 대한야구협회 등 10여 곳 검찰 수사 의뢰
체육계 뿌리 깊은 비리는 학생시절부터 시작…

[일요서울 | 이지혜 기자]“안현수 선수의 문제가 체육계 저변에 깔린 부조리와 구조적 난맥상에 의한 것은 아닌지 되돌아봐야 한다.”
박근혜 대통령의 발언 이후 문화체육관광부와 검찰은 ‘체육단체 바로잡기’에 나섰다. 파벌뿐만 아니라 횡령 등 체육계에 만연해 있는 부조리를 바로잡아야 한다는 뜻을 밝힌 것이다. 대상은 문제가 된 빙상연맹 뿐만 아니라 대한배구협회, 대한야구협회 등 다양한 체육단체들이다. 바로잡기의 첫 걸음으로 검찰은 지난 27일에 대한야구협회 사무실을 압수수색했다. 이를 지켜보는 체육단체들은 잔뜩 긴장하고 있다.
지난 23일 막을 내린 소치 동계올림픽에서 최고의 실력을 뽐내며 3개의 금메달을 차지한 빅토르 안(안현수)으로 인해 국내 체육단체들이 잔뜩 긴장하고 있다. 빅토르 안의 귀화 이유가 빙상연맹의 파벌싸움 등의 부조리라는 것이 알려지자 여론은 물론 박근혜 대통령도 나서서 ‘체육계 부조리 격파’에 목소리를 높였기 때문이다.
첫 타자 대한야구협회 사무실 압수수색
문화체육관광부는 지난 1월 특별 감사를 통해 조직사유화, 부적절한 회계관리, 심판 운영 불공정 등의 문제를 가진 체육 단체 10여 곳에 대해 검찰에 수사를 의뢰했다. 검찰은 특별사건 전담 부서에 사건을 배당하고 본격적인 수사에 돌입했다. 수사 대상은 대한배구협회, 대한야구협회, 대한배드민턴협회, 대한공수도연맹, 대한복싱협회, 경기도태권도협회, 울산시태권도협회 등이다.
대한배구협회는 지난 2009년 서울 강남구 도곡동에 위치한 협회 건물을 매입하는 과정에서 130억 원의 건물을 180억 원에 매입한 횡령 의혹을 받고 있다. 대한공수도연맹은 회장 가족을 임원으로 임명해 조직을 사유화하고, 회장의 아들인 상근부회장이 대표 선수들의 개인통장을 관리하면서 훈련 수당 1억여 원을 횡령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또 대한야구협회는 협회 직원들이 ‘2012년 세계청소년야구선수권대회’ 사업비를 중복 정산해 7억여 원을 횡령한 혐의를 받고 있으며, 대한배드민턴협회는 직원들이 5억 원 상당의 후원물품을 빼돌렸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이 가운데 검찰의 첫 번째 칼날은 대한야구협회로 향했다. 지난 27일 오전 서울 강남구 도곡동에 위치한 대한야구협회 사무실을 압수수색한 것이다. 검찰은 압수물 분석을 마치는 대로 관련자를 소환조사할 예정이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체육 단체들이 잔뜩 긴장하고 있다. 다음 칼날이 어느 단체로 향할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수사 대상에 포함되지 않았다고 해서 안심할 수는 없다. 논란이 되고 있는 빙상연맹은 현재 수사 의뢰 대상에 포함되지는 않았지만 문체부에서 전면 감사를 실시할 예정이기 때문이다. 다음 감사 대상은 누가 될지 알 수 없다.
실력보다는 ‘파벌’ 체육계 전반적 비리 만연
이렇듯 체육계 비리는 최근 이슈가 된 빙상연맹뿐 아니라 모든 체육단체에 전반적으로 퍼져 있다.
지난 2007년에는 야구에서 심판 간의 파벌 싸움이 드러났다. 당시 KBO는 김호인 심판위원장을 직위해제한 뒤 대기발령 조치했다. 이유는 허운 심판을 1군으로 복귀시키라는 신상우 총재의 지시를 불이행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는 김 전 위원장과 허 심판간의 파벌 싸움에서 야기된 문제였다. 이에 하일성 KBO 사무총장은 “프로야구 발전을 저해하는 심판들의 편 가르기가 계속될 경우 해당자 전원을 중징계하고 재계약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유도는 용인대와 한체대, 마사회의 3파전이 존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 축구는 히딩크 감독 부임 전까지는 고려대와 연세대 간의 파벌 싸움이 치열했다.
지난해 5월에는 태권도 선수인 아들을 둔 아버지가 심판의 편파 판정에 항의하는 유서를 남기고 자살하는 사건도 있었다. 아테네올림픽 태권도 금메달리스트 문대성은 이 사건을 보고 “한 사람의 자살로 수면 위에 올라왔을 뿐이지 과거에도 계속 있었던 일이다. 코치와 학부모들이 심판에게 로비를 한다. 가정 형편이 어렵거나 괘씸죄에 걸린 친구들은 편파판정에서 자유롭지 못했다”고 말했다.
거기에 축구·씨름·배구·야구·농구 등에서 승부조작과 같은 비리 행위도 존재한다. 그 외에도 횡령, 조직 사유화 등 체육계가 가지고 있는 비리문제는 셀 수 없이 많다.
초·중·고 학생 때부터 뇌물·폭행 등 싹 키워
체육계의 비리 행태는 운동선수들의 학생시절부터 시작된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감독과 코치는 학부모에게 당연한 듯 ‘돈’을 요구한다. 학생들에게 ‘폭행’을 하는 것도 일상다반사다. 거기에 감독·코치 간의 파벌도 존재한다.
지난달에는 경기도 구리시의 어느 초등학교 수영코치가 학생들을 폭행하고 학부모에게 돈을 받았다는 주장이 제기돼 교육당국이 진상조사에 나섰다. 학부모들은 “동작이 느리다는 이유로 코치가 물 속에서 학생의 허벅지를 꼬집고 슬리퍼로 발바닥을 때리는 등 상습적으로 폭행했다. 또 전국대회 출전 때는 20만 원, 동계 훈련 때는 80만 원을 요구했다”며 해당 코치의 영구 퇴출을 촉구했다. 그런가 하면 지난해 10월 충북 옥천에서는 중학교 배드민턴 코치가 학부모로부터 금품을 받은 것이 드러났다.
이러한 행태에 대해 고등학교 야구부 출신 강모(28)씨는 “언론에 드러난 것은 일부분일 뿐 실제로는 뇌물이 만연해 있다”며 “학생시절부터 부조리에 익숙해진 사람들이 문제로 느끼지 못하고 계속해서 잘못을 반복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이는 사라져야할 악습”이라며 “이번 검찰 조사를 통해 체육계 비리의 뿌리가 뽑힐 수 있을지 궁금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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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혜 기자 jhooks@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