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빚더미에 앉은 소치올림픽, 공정성논란에 올림픽 정신 실종
빙상연맹과 대한체육회 해단식 뭇매…평창을 위한 개선 절실
[일요서울 | 김종현 기자] 소치 동계올림픽을 밝혔던 성화가 지난달 24일 꺼지면서 17일간 불타올랐던 전 세계 선수들의 땀과 눈물, 감동도 마무리 됐다. 하지만 이번 대회가 공정성 논란에 휩싸이면서 올림픽정신까지 훼손됐다는 이야기가 나돌 정도로 후폭풍은 거세다. 여기에 한국대표팀 역시 강점이었던 빙상 경기에서 주춤하면서 대한빙상경기연맹과 체육계 전체로 비난의 화살이 돌아갔다. 어느 때보다 아쉬웠던 소치 동계올림픽, 그 명암을 되짚어본다.
지난달 25일 소치 동계올림픽 선수단이 인천공항을 통해 귀국했다. 한국은 이번 소치 대회에서 금메달 3개, 은메달 3개, 동메달 2개로 목표했던 3회 연속 10위권 진출에 실패하며 아쉬운 해단식을 가졌다.
최종삼 부단장의 성적 보고를 시작으로 진행된 해단식은 김정행 대한체육회장, 유진룡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의 인사말로 이어졌다. 유 장관은 “소치를 끝으로 세계의 이목은 평창에 집중될 것이다. 정부는 소치의 성과를 분석해 4년 앞으로 다가온 평창 동계올림픽을 철저히 준비하겠다”고 말했다. 김재열 단장은 “해단식을 마지막으로 소치를 향해 달려온 지난 4년간의 대장정은 막을 내린다. 이제 우리 앞에는 새롭고 더 큰 도전이 남아있다”며 “2018 평창에서 대한민국의 이름으로 새 역사를 만드실 여러분을 응원하겠다”고 소감을 전했다.
이후 열린 기자회견은 시간부족을 핑계로 몇몇 선수에게만 집중된 채 성급하게 끝나면서 해단식을 지켜보던 취재진들과 팬들의 뭇매를 맞았다.
정작 듣고 싶었던 선수들의 인터뷰는 없었고 고위직 인사들의 인사말 대결로 마무리 돼 보여주기 식 행사만 급급해하는 체육계의 현실을 드러냈다.
이 같은 풍경은 낯설지 않다. 매번 큰 대회를 치르고 돌아오는 선수단이 겪어야 하는 연례행사와도 같다.
2년 전 런던 올림픽에서 선수단은 인천공항에서 해단식과 기자회견을 가진 뒤 올림픽 특집방송 출연을 위해 서울 여의도로 이동해야 했다. 더욱이 이날 서울에 많은 비가 내렸지만 선수들은 예정대로 야외무대에서 춤추고 노래를 해야 하는 웃지 못할 풍경이 연출됐다. 또 4년 전 밴쿠버 동계올림픽 때는 대통령과 오찬을, 6년 전 베이징 올림픽 역시 선수단은 해단식 후 퍼레이드에 참가해야 했다.

남자쇼트트랙 부진 성적부진의 직격탄
이처럼 해단식까지 아쉬움으로 장식한 대한민국선수단의 성적은 메달 부진에 시달렸다. 이에 홈경기인 평창 동계올림픽을 앞두고 동계스포츠 강국으로 도약하는 데도 빨간불이 들어왔다. 더욱이 이번 대회에 역대 최대 규모인 71명을 파견했지만 3개의 금메달에 머물면서 후폭풍은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한국보다 많은 선수를 출전시키고도 한국보다 낮은 순위를 기록한 나라는 103명이 출전해 금1, 은3, 동1개를 따낸 핀란드뿐이었다.
앞서 선수단은 동계올림픽 성적이 꾸준히 향상되고 있는 점과 지난 대회보다 12개의 금메달이 늘어난 점 등을 고려해 목표달성이 수월할 것으로 판단했다.
그러나 성적은 달랐다. 김연아(25)처럼 편파판정의 피해자도 있지만 한국의 메달밭으로 여겨졌던 쇼트트랙에서 부진을 이어가면서 그 충격은 컸다. 특히 남자쇼트트랙팀은 노메달에 그치는 부진을 보였고 러시아로 귀화한 안현수(29·빅토르 안)가 이번 대회에서 금메달 3개를 목에 걸면서 한국과 러시아는 처지가 뒤바뀌었다.
여기에 안 선수 파문이 다시 고개를 들면서 빙상계에 대한 국민들의 질타가 거세게 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사자인 빙상연맹과 대한체육회는 아무런 입장을 밝히지 않은 채 침묵으로 일관하는 모습을 보여 빈축을 샀다.
이번 대회 설상과 썰매종목에서는 이전 대회보다 많은 한국선수들이 참가해 평창에서의 가능성을 확인했다. 하지만 최하위의 성적에 머물러 빙상과 피겨스케이팅에 쏠려있는 메달종목을 설상과 썰매종목으로 넓혀야 하는 과제를 재확인했다.
그나마 스텔레톤의 윤성빈(20·한국체대), 봅슬레이 원윤종(29·경기연맹), 프리스타일 모굴스키 최재우(20·한국체대), 여자컬링대표팀 등이 메달 가능성을 보여주면서 위안을 삼을 수 있었다.

쇼트트랙 실력 평준화 메달프로젝트 절실
가능성을 확인한 소치였지만 평창 대회에서의 좋은 성적에는 회의감을 남겼다.
우선 피겨여왕 김연아가 이번 대회를 끝으로 은퇴했고 올림픽 2연패의 빙속여제 이상화(25·서울시청) 역시 평창 대회 출전은 불투명한 상태다.
동계올림픽의 꽃인 피켜스케팅은 김연아의 뒤를 이을 후계자가 마땅치 않다. ‘김연아 키즈’로 불리는 김해진(17·과천고)과 박소연(17·신목고) 등이 소치 대회에서 결선까지 진출했지만 아직 기량 면에서 메달권 진입에는 미치지 못했다.
반면 이번 대회 금메달을 딴 러시아의 아델리나 소트니코바(18)를 비롯해 율리아 리프니츠카야(16), 미국의 그레이시 골드(18) 등 경쟁선수들이 무서운 성장세를 보여주면서 메달권 진입 가능성은 희박하다.
스피드스케이트도 이상화가 출전을 결심하기 전까지는 메달을 기대하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 또 남자 단거리와 장거리의 간판인 모태범(25)과 이승훈(26·이상 대한항공)은 여전히 메달 후보로 꼽히지만 4년 후엔 적지 않은 나이가 부담스럽다.
쇼트트랙은 실력 평준화로 인해 평창에서도 치열한 접전이 예상된다. 여자팀은 심석희(17·세화여고)와 박승희(22·화성시청)를 포함한 유망주들이 평창에서 에이스로 뛸 것으로 예상돼 그나마 큰 위안이 된다. 하지만 남자 쇼트트랙은 걸출한 에이스가 없어 노메달의 수모가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더욱이 파벌다툼의 여지를 없앤다는 취지로 만든 현재의 선발절차가 오히려 에이스들의 발목을 잡는 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과거 빙상연맹은 1차 선발전에서 2배수로 선수를 뽑아 5개월 동안 내부경쟁을 시킨 뒤 2차 순위 결정전을 통해 국가대표 남녀 각 5~6명을 최종 선발했다. 그런데 2008년부터는 경쟁 없이 단 한 차례의 선발전을 통해 국가대표를 뽑고 있다. 여기에 2010년에는 ‘타임 레이스’ 방식을 도입했다. 결승선을 통과하는 순위가 아닌 개인기록 순으로 국가대표를 선발하고 있다.
파벌을 막겠다고 도입된 선발제도는 그 후유증도 크다. 기록 선발은 몸싸움이 심한 쇼트트랙과는 사실상 거리가 멀다. 또 한 차례의 선발전은 당일 선수들의 컨디션과 부상여부에 따라 기량이 가장 뛰어난 선수라도 탈락할 수밖에 없다. 결국 소치 대회에서의 부진도 뛰어난 선수들이 부상으로 빠지거나 선발전을 통과하지 못해 이미 예견된 결과라는 것.
이외에도 가장 많은 관중이 찾는 아이스 하키는 현재 한국 팀 실력으로는 올림픽 출전권조차 따기 힘든 수준이다. 또 소치 대회에서 다수가 출전하며 가능성을 높인 설상종목은 여전히 찬밥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지난달 25일 개막한 제95회 동계체전을 놓고 봐도 설상·썰매 종목에 대한 관심과 지원은 턱없이 부족하다. 소치 대회에서 한국설상 종목 최고 성적인 12위에 오른 모굴스키 최재우를 비롯해 스키점프 국가대표팀은 동계체전에 초대조차 받지 못했다. 또 스켈레톤 기대주 윤성빈, 봅슬레이 파일럿 원윤종도 마찬가지.
특히 봅슬레이·스켈레톤·루지 등 썰매 세 종목은 역대 체전에서 한 번도 치러진 적이 없다. 경기를 할 트랙이 없기 때문이다. 2016년 10월 강원도 평창 알펜시아에 전용 슬라이딩 센터가 완공될 때까지 선수들은 마냥 지켜볼 수밖에 없다.
이밖에 설상최대 종목인 스키는 협회장조차 공석이다. 대한스키협회 제19대 회장으로 취임한 윤석민 회장(50·SBS미디어홀딩스 부회장)은 지난해 11월 갑작스럽게 물러났다. 윤 전 회장은 소치올림픽 선수단장을 김 빙상연맹 회장에게 뺏겼고 올림픽 D-100 미디어데이에서 빙상종목에 비해 홀대 받은 점 등을 이유로 사퇴했다.
결국 평창 올림픽을 위해서는 4년 뒤 20세 안팎이 되는 현재 15~16세 어린 선수들을 발굴해 집중 육성해야 하는 종합적인 메달프로젝트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또 빙상종목에 편중된 구조의 변화도 요구되고 있다. 이를 위한 인프라 확충과 지원책 마련이 선행되야 할 것으로 보인다.
빚잔치 소치, 올림픽 저주 평창도 사정권
한편 소치 올림픽이 마무리되면서 전 세계의 시선은 2018 평창 올림픽으로 쏠리고 있다. 특히 성공적인 경제 올림픽을 치르는 것이 관심사로 떠올랐다.
소치 대회는 러시아가 역대 올림픽 사상 최고액인 500억 달러(약 54조 원)를 투입하며 그 위세를 과시했다. 하지만 개막이 코앞에 다가왔을 때도 다 건립되지 않은 경기장을 비롯해 칸막이 없이 변기가 두 개 있는 화장실 등이 화제로 떠오를 정도로 준비가 미흡했다.
올림픽이 끝난 이후 소치는 더 큰 문제로 부각되고 있다. 블룸버그 통신은 러시아가 소치에 사후 활용도가 높지 않은 동계 스포츠 시설물 14개를 신설하면서 연간 17억~22억 달러(약 2조3434억 원)가 소요될 것으로 예상했다. 이는 ‘올림픽의 저주’에 시달릴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소치는 4만 개가 넘는 호텔 객실을 채울 방법을 찾지 못하면서 경제회복의 발목을 잡게 됐다. 미국 신용평가회사 무디스는 최근 보고서에서 “호텔들을 채우려면 매년 500만 명이 소치를 찾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는 평소 여름 휴양지 소치를 찾는 관광객의 두 배 이상이 와야 하는 수준이다. 당장 객실 이용률이 35~40% 수준까지 떨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이같은 문제는 평창올림픽을 준비하는 입장에서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평창 동계올림픽의 예산은 소치 올림픽의 5분의 1정도인 9조6000억 원(약 90억 달러) 정도가 투입된다. 하지만 대회가 가까워질수록 예산은 급증할 것으로 보여 예산을 최소화시키면서 내실있는 대회를 준비하는 것이 가장 큰 숙제로 떠올랐다.
이에 대해 김진선 평창동계올림픽조직위원장은 “우리는 경기장 시설 등에서 올림픽 사상 가장 콤팩트한 대회를 준비 중이며 가장 한국적이고 평창다운 올림픽을 만들겠다는 자신이 있다”고 강조했다.
이제 4년밖에 남지 않은 평창올림픽을 앞두고 아직 많은 부분의 해결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 매끄러운 대회 개최와 경제 올림픽이라는 숙제도 산적해 있다. 여기에 1992 대회부터 이어진 ‘개최국 톱 10진입’이라는 공식을 이어가기 위해서는 정부와 체육계에서 각고의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최근 불거진 체육계의 비정상적인 파벌과 부조리는 해소하고 건강한 투자와 인재양성이 절실히 요구되고 있다. 특히 소치 올림픽 선수단이 입국하자마자 겨울체전 출전을 강행한 대한체육회와 빙상연맹의 보여주기 식 관행부터 개선돼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todida@ilyoseoul.co.kr
김종현 기자 todida@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