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업이나 한 국가의 경제를 막론하고 변화의 흐름을 잘못 파악하거나 시대의 비전을 제대로 수립하지 못한다면 역주행하기 십상이다.
월간 현대경영이 매출액을 기준으로 정리한 1965년 매출액 기준 10대 기업은 동명목재, 금성방직, 판본방적, 경성방직, 대성목재, 양회수출조합, 동신화학, 제일제당, 대한제분, 충주비료이다.
그로부터 45년이 지난 2010년 매출액 10위 기업은 삼성전자, SK이노베이션, 한국전력공사, 현대자동차, GS칼텍스, 포스코, LG전자, 우리은행, 삼성생명, LG디스플레이다. 시대의 트렌드를 바로 읽거나 그에 따르지 못해서 또는 이웃나라들과의 경쟁에서 뒤졌다면 한 시대를 주름잡았던 대기업들이라도 그 이름을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우리 속담에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 했다. 하지만 수많은 기업들이 혁신이 필요한 때 혁신에 뒤쳐져 몰락의 길을 걸었다. 대표적인 것이 과거의 영광에 안주했다가 파산의 갈림길에 선 기업들의 예다.
불과 10년 전만 해도 1865년 핀란드의 프레드릭 이데스탐이 설립한 세계 최대의 휴대전화 회사인 노키아(NOKIA)는 이 분야에서 세계 시장점유율 1위였다. 노키아는 유럽 휴대폰 시장을 석권했고 아시아에서도 좋은 성과를 냈지만, 스마트폰과 태블릿 PC등 모바일 중심으로 이동하는 휴대전화 시장 대응이 미흡해 계속 점유율이 하락했다.
이후 삼성전자가 안드로이드폰인 갤럭시 삼성을 출시해 글로벌 스마트폰 시장경쟁에 밀려 1위를 내주게 되었고, 애플에게 2위 자리를 내주게 되었다. 2010년에는 수익성이 떨어지는 무선모뎀 사업부를 일본 회사에 매각하기도 하였다.
또한 코스닥 시장에 상장됐던 휴대용멀티미디어플레이어(PMP)는 2000년 중반 이후 업계 1위 IT기업이었으나 2009년 스마트폰이 출시되면서 몰락했다. 1995년 조개껍질을 본떠 만든 세련된 디자인의 스타텍을 출시하여 시장 점유율 50%로 휴대폰시장을 점유한 모토로라도 경영진의 자만심으로 역시 사양길을 걷게 되었다.
또 다른 실패의 예로 코닥은 1881년 창업 이래 필름과 사진기술의 대표기업이었지만 파산 보호신청을 하게 됐다. 한때 미국 필름시장의 90%를 석권했지만 급속한 디지털화로 무너졌다.
문제는 코닥이 이 같은 디지털화의 흐름을 전혀 모른 게 아니었다는 점이다. 롤필름과 디지털 카메라를 처음 개발한 것도 코닥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코닥은 약 130년의 전통을 갖고 있는 장수 기업으로 한때 16만명의 직원을 둔 거대 기업은 과거 아날로그 카메라 필름 시장을 이끌어왔다.
하지만 코닥은 과거의 성공에 빠져 디지털 시대에 맞는 사업을 준비하지 못했다. 당시의 코닥 직원은 지금의 애플, 구글 직원에 비견될 정도로 소위 잘나가는 사람들이었다. 코닥은 2006년 캐논ㆍ소니에 이어 시장점유율 3위를 기록했지만 2010년에는 니콘ㆍ삼성 등에 밀려 7위로 떨어졌다. 마침내 코닥이 생산을 중단하게 된 것은 캐논ㆍ소니뿐만 아니라 니콘ㆍ삼성 등 경쟁업체가 디지털카메라시장에서 약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코닥 몰락의 원인은 미래의 변화를 알면서도 당장의 양호한 수익모델에 집착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새로운 미래 변화에 대응하는 실질적 대응체계를 갖추지 못한 것으로도 풀이된다.
거대한 기술발전의 흐름을 막을 수는 없다. 또한 대응을 게을리하면 강자 자리에서 순식간에 몰락한다. 그 어떤 기업도 예외가 아니다. 특히 기술의 패러다임 자체가 바뀔 시기에는 더욱 긴장해야 한다. 기존의 강자가 한꺼번에 몰락하는 경우가 종종 일어나기 때문이다. 아날로그 TV와 음향기술의 강자였던 소니가 디지털시대에 대응을 못해 추락한 경우도 좋은 예다.
이러한 과정에서도 미국의 듀폰은 미국 경제전문지 포춘이 1955년 ‘500대 기업’을 선정한 이래 동사 채드 홀리데이회장의 말대로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아 끊임없이 19세기 초 화약 제조회사로 출발, 1990년대 말 ‘종합 과학회사’로, 20세기 초 화학과 에너지, 20세기 중반 대표적인 화학회사로 변신(transformation) 하였기 때문에 성장할 수 있었다”고 한다.
여기서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것은 쑥스럽기는 하지만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말에 용기를 얻어 말하고자 하다. 나는 평범한 은행원으로 출발했다. 은행에서 대졸 신입사원으로 들어가자마자 주임의 직책을 부여 받았다. 몇 년 후 대리가 되었다.
창구 일선에서 물러나 뒷자리에서 창구직원들이 뒤로 넘겨주는 입출금전표에 확인도장을 찍는 책임자 역할을 하게 된 것이다. 이때 고참 선배 직원이 내게 하는 말, “김대리! 이제 책임자가 되었으니 은행원은 도장만 가지고 다니면 되는 거야” 하는 소리를 들었다. 격무에 시달리던 행원시절을 청산한 대리인 나에게 위로로 한 말인 것으로 풀이됐다.
하지만 주말마다 낚시나 등산, 동료집을 돌아가며 한주간의 업무 스트레스도 풀 겸 고스톱이나 장기, 바둑 등으로 소일하기에는 시간이 너무나 아까워졌다. 미래에 변화될 때를 대비하여 은행대리 시절 시작하게 된 주경야독이 기초가 되어 일하면서도 공부하는 습관이 붙어 은행지점장, 본부장으로 퇴임 후에 대학강단에 서게 되었다. 이로 인해 금융기관에서 익힌 실무경험과 연관된 강의를 할 수 있었고 지금도 변화의 트렌드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영국 최초의 카톡릭 교회인 웨스트민스터 대성당 지하묘지에 있는 한 영국 성공회 주교의 무덤 앞에 적혀 있는 글이다. “내가 젊고 자유로워서 상상력에 한계가 없을 때 나는 세상을 변화시키겠다는 꿈을 가졌었다. 좀 더 나이가 들고 지혜를 얻었을 때 나는 세상이 변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내 시야를 약간 좁혀 내가 살고 있는 나라를 변화시키겠다고 결심했다. 그러나 그것 역시 불가능한 일이었다. 황혼의 나이가 되었을 때 나는 마지막 시도로 나와 가장 가까운 내 가족을 변화시키겠다고 마음을 정했다. 그러나 아아, 아무도 달라지지 않았다. 이제 죽음을 맞이하기 위해 자리에 누운 나는 문득 깨닫는다.
만약 내가 내 자신을 먼저 변화시켰더라면, 그것을 보고 내 가족이 변화되었을 것을. 또한 그것에 용기를 얻어 내 나라를 더 좋은 곳으로 바꿀 수 있었을 것을. 그리고 누가 아는가, 세상까지도 변화되었을지.”
모든 사람들이 자기혁신에 동참해야만 성공하게 되므로 충분한 시간과 역사가 필요하다. 세계는 끊임없이 변화하고 발전한다. 현대에 이르러 그 변화 발전의 속도는 점점 빨라지고 있다.
이 격변하는 세계에서 우리가 매일 새로워지지 않으면 안 된다. 어제의 사고, 어제의 행동으로는 변화하는 이 시대를 적응하기조차 힘겹게 되었다. 지금은 변화의 핵심을 알고 대처해 나가는 능력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시대이다. 따라서 선견력과 적응력은 이 시대에 탁월성을 발휘하는 모든 사람이 가진 가장 큰 특성이다.
2014년은 “우리나라가 경제혁신 3개년 계획의 시발점으로 창조경제 확산과 성과창출의 원년이 되도록 정책적 역량을 집중하겠다”는 정책적 의지를 더욱 확고히 해나가는 때다. 우리 각자도 생존을 위해 보다 효과적이고 능동적으로 자신을 변화시켜가는 능력을 키워야 한다. 고정된 사고나 행동 방식에 얽매이지 않고 시대가 요구하는 보다 다양하고 중요한 가치에 참으로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을 찾아내고 키워야 할 것이다.
<김의식 경영학 박사>

김의식 ilyo@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