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림 ①] 한국을 대표하는 핵심 기업의 ‘창업스토리’
[하림 ①] 한국을 대표하는 핵심 기업의 ‘창업스토리’
  • 박시은 기자
  • 입력 2014-02-24 15:11
  • 승인 2014.02.24 15:11
  • 호수 1034
  • 42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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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아리 10마리 시작…고교생 사업가 떴다

[출처=글로벌 스탠더드│지은이 아주대│㈜샘터사] 한국경제가 짧은 시간 안에 고도성장을 할 수 있었던 것은 기업과 사람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특히 이들 기업가들은 독특한 경영이론과 기법들을 창안했으며 한국의 기업풍토에 적합한 비즈니스 모델과 경영이론들을 선보이기 시작했다. 삼성을 창업한 이병철은 인재제일주의를, 현대의 정주영은 생산의 혁신을, LG의 구인회는 인화모델을 각각 창안해 냈다. 현재 대한민국이 경제 강국으로 부상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이들 1세대 창업자들의 도전과 혁신적인 창업정신이 아니었으면 불가능했을지도 모른다. [일요서울]은 한국 경제의 한 획을 긋고 있는 기업들의 창업스토리를 출판물 또는 기존 자료를 통해 다시금 재구성해 본다. 마흔 네 번째 창업스토리의 주인공은 농업 글로벌을 이룬 하림(회장 김홍국)이다.

하림은 1차 산업인 농업을 2·3차 산업인 식품제조·유통산업으로 변모시켜 농업이 다른 어떤 산업보다 부가가치가 높은 산업임을 입증했다. 그 힘은 혁신적인 경영구조에서 나왔다. 하림의 경영구조는 버티컬 인터그레이션(Vertical Intergration), 즉 수직통합경영이다. 수직통합경영을 통해서 1차 산업인 농업을 2·3차 산업인 식품제조·유통산업으로 발전시켜 부가가치를 올리고 있는 것이다.

부가가치 창출에 승부를 걸다

현재 세계적으로 식품 환경은 엄청난 변화의 과정을 겪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을 뛰어넘고 있다. 문제는 무엇을 하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하느냐이다. 경영 방식에 따라서 1차 산업인 쌀 한 가마니의 부가가치를 상상할 수 없는 단계까지 높일 수 있는 것이다.
세계는 지금 이런 경영들이 사실상 보편화돼 있다. ‘농업’이라는 말이 우리나라에서는 재배와 사육을 의미하지만 선진국에서는 재배와 사육, 가공, 무역, 유통, 설비, 건설까지를 포함한다.

농업을 뜻하는 애그리컬쳐(Agriculture)의 의미도 점차 바뀌고 있다. 과거 농업의 개념은 토지를 이용해 작물 재배 또는 가축 사육을 해 의식주에 필요한 자재를 생산하는 산업이었다. 그러나 요즘 농업의 정의는 복합화, 산업화된 개념으로 바뀌었다. 즉 단순한 1차 산업에 머물지 않고 가공, 유통, 무역 및 농업시설의 건설까지 그 영역을 확장시키는 것이 바로 세계화 농업, 선진화된 글로벌 농업인 것이다.

농업이라고 하면 우선 넓고 기름진 땅을 연상하기가 쉽다. 그러나 농업의 중심은 식품산업이다. 선진국에서는 무엇보다 시장을 중요하게 여긴다. 땅보다 중요한 게 바로 생산물을 가공할 수 있는 식품공장이며 그것보다 중요한 게 그것을 소비할 수 있는 좋은 시장을 곁에 두는 일이다. 좋은 시장이 있으면 당연히 좋은 상품이 개발되고 따라서 생산성도 향상된다. 시장의 요구에 따라 브랜드를 개발하고 상품을 잘 개발하면 품질도 우수해진다. 좋은 시장 하나가 농업산업 전반을 발전시키는 것이다.
세계에서 농업 소득이 가장 높은 나라는 네덜란드다. 네덜란드는 연간 농업 무역 흑자를 100억 달러 이상 기록하고 있다. 네덜란드는 전체 농산물의 60%를 가공 수출해 부가가치가 매우 높다.
쌀 한가마니의 예에서 보듯이 부가가치를 높이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부가가치 창출은 시장에서 일어나고 있는 소비자의 요구에 적극 부응한다는 의미가 있다. 식품산업 종사자들이 소비자 지향적으로 수비자 욕구에 맞게 따라가는 것이다.

우리 주식은 정말로 쌀?

하림은 어떤 상품을 만들고 소비자에게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소비자의 생각에 제품을 맞추는 것이 선진경영이라고 생각했다. 그 때문에 하림은 일방적으로 제품을 만들고 소비자의 선택을 기다려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하림의 사업 방향은 소비자의 입장에서소비자의 입맛에 맞춰, 소비자가 원하는 식품을 개발하고 생산·유통 시키는 것이 목표다.
글로벌 농업 경쟁력은 소비자의 생각을 미리 앞서가는 일에서부터 시작된다는 설명이다.
우리가 먹는 주식은 쌀이다. 정말 그럴까? 60년대에는 쌀이 우리 먹거리의 70% 이상을 차지했다. 그러나 지금 쌀이 우리 식단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8% 미만이다. 먹거리의 50% 이상이 돼야 주식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우리는 여전히 쌀을 주식으로 인식하고 있다.

식량 환경은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과거에는 쌀을 중심으로 한 탄수화물 식량이 주식을 이뤘다. 그러나 지금은 고기를 중심으로 한 단백질 식품으로 먹거리 환경이 변화해 가고 있다. 국민 소득이 향상되고 부가가치가 높은 먹거리가 다양하게 생겨났기 때문이다.
옛날에는 육류 섭취가 1년에 명절, 생일 때 서너 번 먹는 전부였지만, 요즘은 매일 고기를 안 먹는 가정이 없을 정도로 늘어났다. 지방과 달리 단백질은 먹어도 살이 덜 찐다. 그래서 육류 소비가 빠르게 증가하고 있는 현실이다.

네덜란드는 100년 전 빵을 집에서 만들어 먹었다. 그러나 지금은 99%의 국민이 공장에서 가공되어 나온 빵을 사먹고 있다. 우리나라도 현재 밥을 용기에 담아 간편하게 먹을 수 있는 ‘햇반’류의 제품이 봇물처럼 쏟아져 나오고 있다.
그 뿐인가? 우리에게 없어서는 안 될 김치조차 공장에서 대량으로 만든 제품이 빠르게 식단을 점령해 가고 있다. 불과 10년 전만 해도 꿈도 꿀 수 없는 일이었다. 당시에는 김치를 사다 먹으면 게으른 여자 취급을 받았다. 우리나라 먹거리 환경은 이렇게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하림은 여기에 주목했다. 농업은 사양길이 아니라 미래의 최첨단 산업이라고 판단했다. 농업 속에 금은보화가 숨어 있는데 사람들 대부분은 사회적 인식 때문에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열에 아홉은 농업을 1차 산업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하림은 이를 완전한 오해라고 판단했다. 농업은 단순히 농산물 원자재를 생산하는 과정이 아니라 생산된 농산물이 제품화 과정을 거치고, 식품 개발로 이어져 부가가치를 올려 유통되는 3차 산업이라고 생각했다.
닭을 예로 들어 보자. 닭을 사육하는 과정은 농장에서 이뤄지는 1차 산업이다. 그런데 닭이 공장에서 가공되면 2차 산업이 되고 그것이 유통 과정을 거치면 3차 산업이 된다.

자금이 투입되는 시기는 1차 산업인 농장에서다. 종사자를 개발하고, 사료를 들이고, 예방접종을 시키고, 부화에 이르는 여러 공정을 거치게 되고, 마침내 공장으로 옮겨져 가공 과정을 거친다. 1차 산업이었던 닭 사육이 돈으로 나타나는, 즉 수익을 내는 시기는 바로 이때다.
닭뿐만이 아니다. 쌀 한가마니를 가지고 떡을 만들면 가격이 얼마나 될까? 혹은 얼마의 부가가치를 올릴 수 있을까? 쌀 한가마니로 떡을 만들면 보통 80만 원에서 100만 원까지 받을 수 있다. 16만 원짜리 쌀 한가마니에 약간의 기술과 재료를 투입해 6배 이상의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셈이다. 쌀은 떡 뿐만이 아니라 음료 등으로도 개발이 가능하다. 그렇다면 자그마치 4~5백만 원어치를 만들 수 있다. 의약품을 만들고 생명공학 제품을 만들게 된다면 그 부가가치는 무한대로 치솟는다.
그 때문에 하림은 ‘농업이 곧 경제’라고 생각했다.

닭 한마리 250원…병아리는 7원

김홍국 회장이 처음 사업에 눈을 뜬 것은 초등학교 4학년 때였다. 여름방학 때 외갓집을 갔다가 김 회장의 외할머니가 준 병아리 열 마리가 그 시작이였다. 외할머니는 잘 키워서 몸 보신 하라는 말씀과 함께 김 회장에게 병아리를 건내줬다. 그는 설레는 마음으로 사과박스에 병아리를 담아 집으로 돌아왔다.
당시 사료는 꿈도 꿀 수 없는 시절이었다. 아니, 굳이 사료가 필요하지도 않은 시절이었다. 자연에 먹이가 수두룩했다. 개울에 널린 개구리를 잡아다가 먹이고, 미꾸라지도 잡아다가 삶아 먹였다. 물론 가끔씩 부모님 몰래 쌀도 퍼다가 먹였다.

그렇게 애지중지하며 키운 병아리들은 김 회장을 배반하지 않았다. 정성으로 키운만큼 무럭무럭 자라줬다. 어미 닭이 되자 지나가던 닭 장수들이 사겠다고 했다. 그 때는 닭 장수들이 자전거 뒤에 닭장을 싣고 다니며 닭을 사갔다. 그 때 닭 한 마리 가격이 250원, 병아리는 한 마리에 7원이었다.
다 키운 닭을 팔고나니 김 회장의 수중에 대략 3천 원 가량의 돈이 생겼다. 그 돈을 가지고 만족했다면 오늘의 하림은 없었을 것이다. 그는 닭을 판 돈으로 다시 병아리를 샀다. 사료비도 들지 않고 인건비도 들지 않았다. 그야말로 꾸어 먹고 알 먹고였다.

닭을 키우는 재미는 정말 쏠쏠했다. 그는 “닭이 늘어나는 줄도 모르고 닭을 키우는 그 재미 자체에만 푹 빠져들었었다”고 말한다.
그가 초등학교를 다닐 때 가축을 사육하는 특별활동부가 있었다. 이른바 사육부였다. 선생님이 앞에서 설명하고 있을 때 그는 종이에다가 양계장을 그렸다. 모든 생각이 닭을 키우는 일로 집중됐던 것이다. 친구들이 놀자고 붙잡아도 듣지 않았다. 그에게는 더 재미있는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닭은 점차 늘어 갔다. 김 회장이 가진 돈도 점점 불어 갔다. 목돈이 생기자 그 다음 돼지를 키웠다. 돼지를 키우고 그 다음엔 염소를 키웠다. 그가 중학교에 다닐 때 학교 옆에 물엿 공장이 있었다. 물엿을 만들고 남은 찌꺼기는 훌륭한 돼지 사료였다. 그는 사료를 얻기 위해 아침 일찍 일어나 6㎞를 왕복했다. 그런 다음 다시 학교에 갔다. 물엿 찌꺼기 한 리어카를 얻어오면 2~3일 돼지 먹이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됐다.

이후 김 회장이 고등학교 3학년이 됐을 때, 그는 사업자등록을 냈다. 사료를 사기 위해서였다. 비록 고등학생에 불과했지만 그는 이미 큰돈을 만지고 있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에는 보다 본격적으로 사업에 뛰어들었다. 병아리 열 마리를 키우는 것으로 시작해 승승장구하자 마음의 여유가 생겼다. 규모도 엄청나게 커져 혼자서는 감당하기 힘들 정도가 돼 사람을 고용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에게도 위기가 찾아왔다.
<다음호에 계속>
<정리=박시은 기자>

 

박시은 기자 seun897@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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