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요서울 | 김나영 기자]금융권 전반이 위조 매출채권 대출사기에 휘말려 몸살을 앓는 가운데 이번엔 한국씨티은행이 그 바통을 잡았다. 삼성전자 협력업체의 최고재무책임자(CFO)가 일으킨 대출사기는 씨티은행 한 곳만을 노렸다. 여타 대기업 협력업체가 비슷한 수법으로 타행에 대출사기를 쳤을 가능성도 거론되고 있어 귀추가 주목된다.
대기업 관련은 ‘OK’…위조된 협력업체 매출채권 다발
전자식 아닌 수기 맹점 노려…‘크로스체킹’만이 살 길
이번엔 해외 매출채권 위조다. 삼성전자 협력업체인 디지텍시스템스의 최고재무책임자(CFO)는 매출채권을 꾸며내 씨티은행에 제시했다.
씨티은행은 디지텍시스템스가 삼성전자에 납품한다는 사실에 안도해 제대로 된 확인절차를 거치지 않고 돈을 내줬다. 디지텍시스템스는 은행에서 미리 납품대금을 지급받고 이를 추후 삼성전자가 갚아나가는 형태다.
이와 같은 해외 매출채권 팩토링은 채권을 양도하고 대출받아 유동성을 확보한다는 점에서 외상매출채권 담보대출(외담대)과 비슷한 신용거래다.
하지만 외담대가 대부분 전자식으로 이뤄지는 반면 팩토링의 경우 해외라는 점에서 아직까지 전자보다는 수기 방식이 쓰이고 있다. 이번 대출사기는 수기라 위조가 가능하다는 점을 활용한 범죄였다.
앞서 드러난 KT ENS 대출사기를 살펴보면 외상매출채권이라는 공통점이 발견된다. 이 경우는 차주인 특수목적법인(SPC)을 설립해 대출이 이뤄지는 자산담보부대출(ABL)의 형태를 띠고 있다.
ABL의 기본적인 줄기는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과도 유사하다. 하지만 ABL은 SPC에 직접 대출을 실행해 분리 효과가 크다. 다만 전자식이 아닌 수기로서 신용보강이 이뤄진다는 맹점이 있고 이를 통해 범죄가 일어났다.
팩토링의 허점
최근 적발된 대출사기의 일차적인 책임은 매출채권을 위조한 쪽에 있으나 금융권의 허술한 여신감리도 간과할 수 없는 부분이다.
KT ENS의 협력업체들은 거래처가 KT 자회사라는 네임밸류만으로 대출심사대를 무사통과했다. 디지텍시스템스 역시 거래처가 삼성전자라는 이유만으로 대출을 받을 수 있었다.
이 과정에서 은행들은 현장실사나 전화확인 등을 전혀 시행하지 않았다. 이후 대출원리금이 기한 내에 꼬박꼬박 들어오자 문제의식조차 갖지 못했다. KT ENS 대출사기에 연루된 하나ㆍ농협ㆍ국민은행 등 17개 금융사는 수사가 진행될 때까지 내부적으로 파악된 것이 전무했다.
디지텍시스템스에 대출해준 씨티은행의 경우에는 원리금이 들어오지 않자 그제서야 의심을 했고 사기였음을 깨달았다.
속수무책으로 당한 은행들은 KT ENS 또는 타 금융사로 책임을 전가하기에 바빴다. 씨티은행의 경우에는 단독인데다가 책임을 떠넘길 곳이 마땅찮았고 이를 검찰에 고발했다.
일각에서는 여신시스템의 허점을 여실히 드러내고도 자기반성보다는 피해 메우기에 급급한 모습이라는 비판이 흘러나왔다.
금융당국은 여타 대기업 협력업체들의 대출도 샅샅이 살피겠다는 입장이다. 이 과정에서 비슷한 방법으로 이뤄진 대출사기가 꼬리를 물고 드러날 가능성도 짙다. 금융권 전반에 ‘대기업 협력업체면 대출 무사통과’라는 인식이 만연해 있어서다.
금융권 관계자는 “사전심사와 사후 모니터링이 제대로 작동되지 않는 여신시스템의 구멍으로 인해 대출사기가 횡행하고 있다”면서 “만약의 경우에 대비한 크로스체킹 등 리스크관리 제도를 총체적으로 재정비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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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나영 기자 nykim@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