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서울 | 이범희 기자]김윤 삼양그룹 회장이 지난 18일 열린 한일경제협회 12대 회장으로 추대했다.
김 회장은 2005년부터 한일경제협회 부회장, 한일산업기술협력재단 이사로 활동해 왔다. 그런데 그의 회장 취임을 두고 호사가들 사이에서 뭇매를 맞고 있다. 친일기업이 결국은 일본과의 경영 간 교두보 역할을 하고 있다는 비난이다. 임기는 3년이다.
그렇다면 이같은 비난이 들끓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는 삼양그룹의 창업기를 들여다보면 이해할 수 있다.
삼양그룹의 전신은 1924년 고 김연수 회장이 설립한 ‘삼수사’다.
고 김연수 회장은 일제시대 때, 일본에 국방헌금을 납부하고 학병권유 연설을 한 사실이 알려져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위원회’에 의해 ‘친일파’로 분류된 인물이다.
위키백과에 따르면 그는 일본 유학생으로 1921년 교토 제국대학을 졸업하고 귀국한 뒤, 형인 김성수가 경영하던 경성직뉴와 경성방직의 간부로 근무했다.
이 과정에서 조선총독부와 가까이 지내면서 오랫동안 친일 기업인으로 활동했다. 1935년 총독부가 편찬한 ‘조선공로자명감’에 조선인 공로자 353명 중 한 명으로 경성방직 사장이라는 직함과 함께 수록됐다.
1939년 경성부 주재 만주국 명예총영사, 1940년 조선총독부 중추원의 참의 직을 받았다. 특히 1937년 중일 전쟁 발발 이후에는 거액의 국방헌금을 기부하는 등 더욱 적극적으로 협조하면서 경성방직을 기반으로 군수 산업에 뛰어들었고, 1944년 전쟁 지원을 위한 조선항공공업주식회사를 설립하기도 했다.
1920년 초의 줄포 농장전쟁 기간 중 국민총력조선연맹(1940), 조선임전보국단(1941), 조선국민의용대(1945) 등 친일 단체에서 간부로 활동하고 대학생들을 상대로 학병 지원을 권유하는 연설 활동을 벌였다.
1949년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에 의해 체포돼 검찰 앞에서 자신의 죄를 순순히 시인하고 속죄하였다 한다. 이후 2009년 고 김 회장의 유족들이 친일파 결정을 취소해 달라는 행정 소송을 제기했지만 법원은 원고 패소 판정을 내렸다. 이에 고 김 회장은 여전히 친일파 명단에 그 이름을 올리고 있다.
재계관계자는 "한일 교류가 잘못된 것은 아니지만 친일기업 오명에서 자유롭지 못한 삼양그룹이 맡아 말이 나오는 것 같다"고 전했다.
한편 한일경제협회는 한국과 일본 경제계의 주요 관심사를 논의하고 협력 체제를 구축할 목적으로 지난 1969년 설립됐으며, 매년 한국과 일본에서 번갈아 회의를 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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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범희 기자 skycros@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