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묘한 판단기준이 직장내 성희롱 될 수 있어
제3자 통한 정신적 스트레스가 근로환경에 악영향 미쳐
“은희씨랑 영업1팀 김 대리님이랑 모텔 들어가는 거 봤잖아~”, “작년에는 같은 팀 유부남하고 바람났다는 얘기도 들었어”, “은희씨는 이런 소문이 많은걸 보니 정말 풍기가 문란한 모양이야”, “혼자 순진한 척하더니 남자 홀리는 재주가 있나 봐.”
경숙은 동료직원 은희에 대해 이러한 얘기들을 하고 다녔다. 그 결과 같은 지점 직원들이 ‘지점 명예와 이미지를 훼손하고 직원들을 농락했다’며 은희와 근무할 수 없다는 탄원서를 회사에 제출했다. 은희는 성적소문으로 인해 인근병원에서 직장 내 스트레스로 인한 두통, 불안감, 우울감, 수면장애 등으로 통원치료를 받기에 이르렀는데…
이와 같은 사례에서 업무 등 관련성 여부를 따진다면 경숙의 성희롱적 언동으로 인해 해당 지점 직원들이 은희와 함께 근무할 수 없다는 탄원서를 회사에 제출되는 등 은희에게 적대적이고 모욕적인 근무환경이 조성됐으므로 이는 국가인권위원회법 제2조제5호에 정한 업무관련성이 있다 할 것이다.
보통의 가해자들은 본인의 행동에 대해 ‘기억이 나지 않는다’ 또는 ‘그런 적 없다’며 발뺌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참고인조사 등을 통해 사실여부를 확인할 수 있다.
여성이 혼인 관계에 있지 않은 남성과 모텔에 들어가고 남자들과 잠자리를 같이했다는 등의 소문이 직장 내에 유포된 것은 그 사실 여부와 상관없이 여성에게 성적 수치심과 굴욕감을 유발하기에 충분하다. 또 인근병원에서 직장 내 스트레스로 인한 두통, 불안감, 우울감, 수면장애 증상으로 통원치료를 받은 상황 등을 종합해 볼 때 은희는 경숙의 언동으로 인해 상당한 성적 수치심 및 굴욕감을 느꼈다고 볼 수 있다.
고용상의 불이익에 대한 부분을 보면, 해당 지점의 직원들이 은희의 사생활을 이유로 은희의 전직을 요구하는 탄원서를 작성해 회사에 제출했다. 설령 경숙이 이러한 결과를 예측하지 못하고 한 발언일지라도 이는 은희에게 매우 위협적이고 적대적이며 모욕적인 근무 환경이 형성되었는바 이는 환경형 성희롱에 해당한다 볼 수 있다.
『남녀고용평등법 시행규칙』 제2조(직장 내 성희롱 판단기준의 예시)와 『남녀차별금지기준』 제17조는 성적인 내용의 정보를 의도적으로 유포하는 행위를 언어적 성희롱행위로 규정하고 있다.
직장 내 성희롱이 발생하면 권고나 시정사항이 아니더라도 가해자와 피해자가 같은 공간에서 근무하지 않도록 조치하는 회사의 세심한 배려가 꼭 절실하다. 2006년 위와 비슷한 국가인권위원회(이하 인권위)의 결정례를 살펴보면, 인권위는 피진정인(경숙)에게 인권위가 주최하는 인권교육 수강을 권고하고, 회사 대표이사에게 진정인과 피진정인이 같은 공간에서 근무하지 않도록 조치할 것을 권고했다.
한편, 피진정인은 인권위의 권고 결정에 불복해 법원에 행정소송을 제기했는데 법원은 피진정인이 성적 소문을 유포한 행위가 성희롱 행위에 해당하는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고 판단했다. 단, 인권위가 피진정인 소속 회사에 대해서 내린 권고 결정만을 처분으로 보아 취소하고, 피진정인에게 특별인권교육 수강을 권고한 데 대한 취소 청구는 처분성이 없다고 각하해 피진정인의 청구를 일부 받아들였다.(인권위 일부 패소. 서울행정법원 2006. 12. 13. 선고 2006구합46152)
또 남성들끼리 키득키득 대며 한 음담패설도 성희롱으로 인정된 사건이 있다. 회사에 신입 여직원이 입사했는데 남자직원들끼리 “그 여자는 내꺼니까 건들지 마!”, “콜라에다 약을 타서 어떻게 해보지 왜 그냥 보냈냐?”라는 말을 했다. 일반적이고 전형적인 성희롱은 피해자가 상대방으로부터 직접적으로 성적인 언동을 당하는 형태인데 당사자가 없는 자리에서 행한 성적언동이 성희롱에 해당하는지가 쟁점이 된다.
이에 대해 인권위는 법률이 직장 내 성희롱을 금지하고 제재하는 것은 성차별적 편견이나 권력관계에 근거해 직장에서 직·간접적으로 이뤄진 성적 언동이 피해자의 근무 환경을 악화시킴으로써 고용 관계에서 피해자가 비자발적으로 위축되거나 배제되는 것을 막고자 하는 데 있다고 정의했다. 또 직장 동료나 상하 관계에 있는 사람들 간의 대화는 당사자에게 전달되지 않더라도 근무 환경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으므로 지속적인 업무 관계를 맺고 있는 직장 내에서 특정 여성을 대상으로 성적 언동을 하는 것은 비록 당해 여성이 간접적으로 전해 들었다 할지라도 직접 들은 것과 마찬가지로 해당 여성에게 정신적 스트레스를 주고 근로 환경에 악영향을 줄 가능성이 높으므로 이는 규제되어야 할 성희롱의 범주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특히 이 사건에서 피진정인이 말한 내용은 여성을 성적 욕망의 대상으로 삼는 저급한 표현으로 사회 통념이나 합리적 여성의 기준에 비춰봤을 때 성적 수치심을 느끼게 하기 충분하다. 이러한 언동이 당사자인 진정인에게 전달됐다면 당사자가 성적 굴욕감 또는 혐오감을 느끼는 것은 당연하다고 판단되는 것이다. 이 사건은 피해자가 나중에 간접적으로 전해들은 성적 언동도 성희롱에 해당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직장 내에서의 성희롱은 성희롱인지 아닌지 판단기준이 미묘하다. 오랫동안 잘못 정착된 관습이나 문화 속에서 가볍게 치부되는 일이 누군가에게는 성희롱이 될 수 있다.
‘실없는 말이 송사 간다’라는 속담이 있다. 장난으로 사소하게 시작된 불쾌한 말이 심각한 상태로 발전할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하고 배려하고 존중하는 조직문화가 정착되도록 모두의 노력이 필요한 때이다.
<구나원 전문강사>

이지혜 기자 jhooks@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