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요서울 | 홍준철 기자] 민주당이 딜레마에 빠졌다. 김한길 당 대표를 비롯해 일부 당 지도부가 지방선거를 앞두고 야심차게 꺼낸 ‘무공천’ 카드가 현실론에 부딪혀 무산위기에 처했다. 명분과 실리 사이에서 ‘명분’을 내세웠지만 기초단위 출마자들의 거센 반발에 무릎을 꿇는 모습이다. 물론 김한길 대표가 막판 ‘전국단위의 무공천 선언’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하지만 그 출혈이 너무 심하다. 자칫 지방선거 이후 당이 와해 내지 해체되는 위기에 처할 수 있다. ‘무공천’ 카드가 안철수 신당과 차별화 경쟁에서 새정치에 대한 이슈를 선점하고 집권 여당을 거짓말 정권으로 몰아세우려는 목적이었지만 ‘무공천=선거패배’는 요원해지고 있다. 이래저래 박근혜 대통령과 집권 여당 그리고 안철수 신당은 ‘무공천의 역습’이라는 화장실 속에서‘자승자박’에 빠진 민주당을 바라보며 미소를 날리고 있다.
민주당 ‘무공천 카드 없던 걸로…’ 수순밟기?
여당, ‘그럼 그렇지…’ 안철수, 대정치권 ‘공세’
민주당이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을 향해 공약을 지키자며 꺼낸 ‘무공천 전략’이 내부 반발에 휩싸여 갈팡질팡하고 있다. 이미 김한길 대표는 여론 수렴 차원에서 11일 당 소속 광역단체장 회의를 개최해 기초선거 단위에서 독자 무공천 찬반을 묻는 자리를 마련했지만 이견만 보이고 소득없이 끝났다. 박원순 서울시장, 최문순 강원도지사는 ‘무공천’ 카드에 찬성 입장을 밝혔지만 송영길 인천시장, 이시종 충북도지사는 반대 입장을 내놓았다. 안희정 충남지사와 호남 광역단체장들은 ‘조건부 찬반’ 입장을 밝히면서 유보적인 태도를 보였다.
선거 방정식 유야무야되는 무공천 카드
외형상 지역별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광역단체장의 입장이 엇갈렸다. 찬성론자들은 ‘당’ 보다는 ‘인물’에 방점을 찍고 있는 반면 반대론자들은 ‘인물’보다는 ‘당’에 더 의존하는 모습이다. 대표적인 것이 민주당 소속 영남권 인사들이다. 민주당에 이렇다할 인물이 없는 새누리당 텃밭에서 그나마 당을 걸고 나와야 공천이 가능하고 출마도 가능한데 ‘무소속’으로 출마할 경우 존재감마저 사라지기 때문이다.
‘무공천 반대론자’(현실주의자)들은 무공천을 할 경우 민주당을 탈당해 무소속으로 출마해야하는 탓에 분명한 반대입장을 보이고 있다. 게다가 후보 난립으로 인해 가뜩이나 불리한 여당 분위기 속에 치러지는 선거에서 패배가 불보듯 훤하다는 점도 한 몫 하고 있다. 유력한 경쟁 상대인 새누리당은 공천을 통해 한 명으로 압축된 상황에서 선거 결과는 보나마나하다는 입장이다. 충북과 인천 지역이 대표적이다. 특히 ‘반대론자’들은 무공천 이후 당의 와해나 해체를 우려하고 있다.
민주당 한 관계자는 [일요서울]과 통화에서 “기초단체장 이하 후보자들이 당의 지원없이 출마해 당선되건 패배하건 선거이후에 민주당에 다시 복당하려고 하겠느냐”며 “어차피 당에 대한 빚이 없는 상황에서 무소속으로 남아있으면서‘이기는 편 내편’이라고 안철수 신당이나 새누리당에 입당해도 당에서 컨트롤 할 수 있는 힘이 없다”고 내다봤다. 민주당은 기초단위 조직이 와해된 상황에서 당을 유지하기가 힘들어져 결국 안철수 신당만 ‘이삭줍기’식으로 도와주는 모양새가 될 것이란 분석이다.
결국 수도권과 호남을 두고 한판 대결을 벌여야 하는 민주당 입장에서 ‘무공천 카드’가 오히려 지방선거 이후 안철수 신당에 세를 불리게 하는 발판을 마련해 줄 수 있다는 점에서 급제동이 걸리고 있는 셈이다. 안 신당 입장에서도 기초단위에 출마할 인물이 턱없이 부족한 상황에서 민주당의 무공천으로 인한 후보군이 대거 신당행을 선택할 경우 ‘수금정치’만 하면 되는 홀가분한 상황을 맞이할 수 있다. 새누리당으로선 ‘야권분열=선거승리’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대선 공약을 파기했다는 비판을 무릅쓰고 반대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설명된다.
실리주의자에 맞서 명분주의자 ‘후퇴’
애초 민주당은 ‘무공천’ 카드를 꺼내든 배경이 ‘새정치에 대한 이슈선점’과 인물난에 빠진 안 신당 현실에서 기초단위 선거구도에서 승리를 쟁취하고 아울러 박 대통령과 새누리당을 거짓말 정권으로 몰면 선거 정국에서 유리하게 작용할 것으로 내다봤다. 한 마디로 1타3피 전략인 셈이었다.
특히 ‘무공천 찬성론자’(명분주의자)들은 민주당 간판을 달면 오히려 불리한 지역 탓에 ‘인물’로 승부수를 띄우고 ‘명분’을 갖고 선거 국면을 정면으로 뚫고 나가는 게 유리하다는 판단이 깔려 있다. 조직보다는 바람을 타고 승리를 해야 하는 지역으로 서울과 강원도가 대표적이다. 또한 선거를 앞두고 이렇다할 이슈를 선점하지 못하고 있던 민주당으로선 ‘판’을 흔들어야 하는 압박감도 없지 않았다. 하지만 내부 반발과 조직 와해에 따라 당이 와해될 수도 있다는 위기감 속에 ‘무공천 카드’를 접기 위한 수순에 들어갔다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실제로 민주당은 19일 서울 광화문에서 정당공천 폐지를 촉구하는 집회를 개최한 데 이어 20일에는 기초선거 정당공천 폐지 촉구, 정치권·시민사회 공동기자회견을 가졌다. 하지만 정치권 일각에서는 집권 여당에 맞서 ‘명분쌓기용’으로 사실상 정당 공천 유지로 입장을 선회하기 위한 수순밟기라는 분석이다.
민주당 고위 관계자 역시 “박근혜 대통령 취임 1주년인 2월 25일에 기초단체장 정당공천 폐지 공약에 대한 박 대통령의 입장이 나오길 기대하고 있지만 크지는 않다”며 “장외집회나 시민단체 기자회견이 정리 집회가 아니냐는 눈총을 받고 있는 게 사실”이라고 토로했다. 이어 그는 “민주당이 정당공천제를 유지할 경우 당내에서 반발이 예상되고 새누리당에서도 ‘그럼 그렇지 민주당 너희가 별 수 있느냐’며 진정성에 흠집을 낼 공산이 높다. 안 신당 입장에서도 ‘기존 정당이 역시 기득권 포기를 못하고 있다’고 세게 민주당을 공격을 해 올 것”이라고 후폭풍을 대비하는 모습이다.
외통수 전략 ‘자승자박’부메랑 돼
안 의원으로선 지난 대선에서 중도에 대권 도전을 문재인 후보에게 양보한 상황에서 ‘기초단위 정당공천 폐지’에 대한 책임감이 양당에 비해 비껴 있는 게 사실이다. 안 신당 일각에선 “독자적으로 무공천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맞이한다면 기초단위 출마하는 후보군들이 ‘이럴 거면 왜 당을 만들었느냐’는 불만은 잠재우기 쉽지 않을 것”이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하지만 광역단체장에만 올인하고 있는 안 신당으로선 기초단체장 이하 선거에 크게 신경을 쓰고 있지는 않다. 오히려 민주당의 고민이 깊어질 수밖에 없다. 선거를 맞이해 회심의 일격으로 꺼낸 무공천 카드가 ‘자승자박’이라는 외통수 부메랑으로 돌아오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민주당 내에선 후폭풍을 그나마 잠재우기 위해선 ‘석고대죄’외에 뾰족한 수가 없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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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준철 기자 mariocap@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