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제 강력사건의 ‘단골 해결사’
미제 강력사건의 ‘단골 해결사’
  • 이인철 
  • 입력 2003-10-30 09:00
  • 승인 2003.10.30 0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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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7년 뺑소니 사건때 첫 도입해 효과본 후 각종 수사에 본격 활용전문인력 크게 부족 … 증거능력에 대한 제도적 장치도 미비‘완전범죄는 없다’최면수사가 적극적으로 활용되면서 사건 해결의 결정적인 단서를 제공하고 있다. 최근 구로경찰서는 신혼 남편을 흉기로 찔러 숨지게 한 뒤 달아난 살인 용의자 김모(39)씨를 최면수사를 통해 검거했다. 이밖에도 여대생 하모양 피살 사건, 개구리 소년 실종사건 등 굵직한 사건에 최면수사는 단골로 등장하고 있다. “전문화된 인재를 양성해 보다 활성화시켜야 한다”는 목소리가 일고 있는 최면수사의 국내 현주소를 짚어봤다. 최면수사(hypno-investigation)는 법최면(法催眠:forensic hypnosis)과 같은 의미로서 범죄수사에 최면을 이용하는 것을 말한다.

사건발생 현장에 단서는 없고 단지 목격자나 피해자만 있는 경우, 최면을 통해 무의식 속에 잠재되어 있는 희미한 기억을 떠올려 수사에 필요한 단서를 구하는 수사기법이다.가장 활발하게 최면수사를 이용하는 나라는 미국. 1970년대부터 최면수사를 활성화 시켰고 현재 FBI가 최면수사 전문인력을 양성해 배출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97년 정신과 전문의 박희관씨가 뺑소니 차량의 목격자에게 최면을 걸어 차량번호를 알아내 사건 해결에 결정적인 단서를 제공한 사례가 최면수사의 시작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후 99년부터 수사에 도입됐고, 현재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 전담인력이 배치돼 활동중이다. 최면수사는 주로 강력사건에 많이 이용되며 목격자와 피해자는 있지만 사건의 증거가 없는 경우에 많이 실시되고 있다.

최면수사는 99년 본격적으로 도입된 이후 최근까지 약 1천여건이 진행됐으며 지난해에만 196건이 진행됐다. 장소는 특별히 가리지는 않지만, 경찰서와 국과수 범죄분석실 등에서 진행되며 최면 당사자의 법적 동의하에 이뤄진다. 2시간 가량이 소요되는 최면수사는 먼저 15분 정도 최면감수성, 즉 최면이 잘 걸리는 타입인지 등의 여부를 체크한 후 그 결과를 보고 1시간 정도 최면을 유도한다. 이후 사건에 대한 기억을 떠올리게 하여 진술을 받는 과정이다. 사건의 단서가 나오면 경찰은 이를 토대로 곧바로 수사에 착수하게 되는 것. 그러나 최면수사는 사건의 피해자, 목격자 등 참고인들이 대상이며 용의자나, 피의자에게는 실시하지 않는다. 10년 동안 300여 사건에 대해 최면수사를 진행했던 대한최면수사학회 고제원(45) 회장은 “용의자나 피의자는 진술의 증거능력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며 “이들은 최대한 최면에 안 걸리기 위해 노력하며 최면 상태에서도 거짓말을 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최면수사는 99년 본격적으로 도입된 이후 약 1천여건, 지난해에만 196건이 실시되는 등 해마다 경찰의 최면수사의뢰가 증가하고 있는 추세다. 이는 최면수사가 사건해결에 결정적인 단서를 제공한 사례가 많기 때문이다.실제 지난해 3월 여대생 하모양 총기피살사건 수사에서 경찰은 목격자 최모(40)씨에 대한 최면을 통해 범행 차량의 번호판을 확인하는 결정적인 증거를 확보했다. 또 지난해 1월에도 인천시 송도호텔 앞에서 32세 남성이 구타당해 사망한 사건에서도 목격자에 대한 최면을 통해 용의자가 빨간색 티뷰론을 타고 도주했다는 것과 운전자가 여성이었다는 진술을 확보해 용의자 곽모씨를 검거했다. 그러나 최면수사가 범인을 잡는 것은 아니다. 고 회장은 “최면수사는 사건을 종결짓는 것이 아니라 사건의 실마리를 풀 수 있는 단서를 제공하고 방향을 제시하는 것”이라며 “최면수사를 통해 나온 단서를 경찰이 활용해 범인을 검거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최면수사의 신뢰도는 80%정도. 100% 신뢰할 수 없는 것은 자신이 직접 본 것과 마음에 떠오르는 것과 다를 수 있고 특히 평상시 상상하는 부분이 최면 상태에서 떠올라 사실과 다른 결과가 나올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라는 게 고 회장의 설명. 최면수사를 진행하기 힘든 경우는 강간피해자. 사건당시의 잊고 싶은 충격적인 장면을 재현하게 되기 때문에 그 장면을 떠올리는 것 자체가 두려워 자기방어를 하는 사례가 많다는 것. 이와 함께 숫자, 글자를 떠올리는 경우는 신뢰도가 가장 많이 떨어진다. 이는 자신이 좋아하는 숫자나 글자를 떠올리는 일이 많기 때문. 대개 10건 중 2건 정도만 정확하게 일치할 뿐 나머지는 다른 숫자를 떠올리는 일이 다반사라고 전한다. 최면에 잘 걸리지 않는 경우도 어려움을 겪게 만든다.

한편 수사기관의 최면수사 요청건수에 비해 이를 맡아 진행할 전문인력은 부족한 실정이다. 김광원 인천경찰청 기획계장이 발표한 <최면수사 활성화 방안에 관한 연구>라는 논문에 따르면 국내에서는 약 30명 정도의 전문인력이 최면수사에 활용되고 있다. 이 때문에 전문인력 양성이 시급한 상황이다. 여기에 법적 증거능력 문제도 해결해야 될 과제다. 대한최면수사학회 고 회장은 “무엇보다 전문인력의 양성이 시급하며 증거능력에 대한 법적 논란에 대해서도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며 “특히, 최면수사가 수사기법으로 자리잡을 수 있도록 제도적인 장치가 마련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인터뷰-대한최면수사학회 고제원 회장

“사건의 80% 해결 실마리 제공”<최면과 최면수사>의 저자이자 대한최면수사학회 고제원(45) 회장은 97년 FBI에서 최면수사관련 자격증을 얻은 뒤 귀국이후 최면수사를 진행해 왔다. 최근까지 300여 사건의 최면수사에 참여했고, 국과수 최면수사 전문인력을 양성하는 등 최면수사 전문인력 양성에도 힘을 쏟고 있다. 고 회장은 역할이 점점 커지고 있는 최면수사에 대해 “최면수사는 미궁에 빠진 사건을 해결하는데 큰 역할을 한다”며 “전문인력 양성과 최면수사에 대한 제도적 장치마련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고 회장은 또 “최면은 과학적인 방법으로 접근해야 한다”며 “단지 호기심거리로 오락적, 상업적 목적으로 이용하는 행위는 경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 최면수사에 많은 기여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면수사에 본격적으로 뛰어든 계기는?▲ 대학에서 심리학을 전공했는데 최면을 이용하면 모든 사건의 범인을 다 잡을 수 있을 것이란 단순한 생각으로 접근했다. 그러나 실제 접근해 보니 본인이 최면에 걸리지 않으려고 하면 걸리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이때부터 심도 있게 접근했고 본격적으로 최면수사에 대해 연구했다.

- 최면수사는 몇 건 정도 했나?▲ 97년 FBI에서 자격증을 딴 뒤 국내에 들어와 시작했다. 97년 최면을 통해 몽타주를 작성해 범인을 검거했던 사건을 시작으로 현재까지 약 300여건을 했다. 이중 약 80%정도 사건 해결의 실마리를 제공했다.

- 최면수사학회의 현황은?▲ 현재 30여명 정도가 활동하고 있다. 최면수사에 대해 관심이 있는 심리학자, 교수들이 대다수다.

- 전문인력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많은데?▲ 국과수 범죄 분석팀 직원을 비롯해 경찰 등 30여명의 인력을 양성했지만, 사실 경찰의 최면수사 요청건 수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형편이다. 이에 내년 2월 고려대 행동과학연구소에서 최면수사전문인력 양성을 위한 교육을 검찰과 경찰을 대상으로 2주 동안 실시할 계획이다.

이인철  chlee@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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