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터넷 해킹은 책임 없다? 롯데 측 “오해일 뿐”
롯데쇼핑 과징금 폭탄…소비자 이탈 본격화 되나
[일요서울 | 강휘호 기자] 신동빈호(號)가 출항 중인 롯데그룹이 거센 풍랑을 맞고, 좌초 직전까지 내몰린 모양새다. 범국민적 공분을 산 롯데카드 개인정보 유출 사건의 충격이 가시기도 전에 롯데쇼핑이 수백억 원대의 추징금 폭탄을 떠안았다. 그런데 여기서 끝이 아니다. 이번엔 롯데백화점·롯데마트가 개인정보 유출에 대한 책임을 회피한다는 논란이 일고 있다. 끊이지 않는 악재 속에 롯데그룹을 향한 소비자들의 신뢰도는 바닥을 치고 모럴해저드 현상이 도를 넘고 있다는 여론의 비난도 들끓고 있다. 하지만 신동빈호는 이렇다 할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어 당분간 이 같은 추세가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요즘 롯데그룹의 상황을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그야말로 총체적 난국이다. 그룹의 수장인 신동빈 회장이 직접 나서 대대적인 롯데그룹 정보보호 위원회를 열어 “사태 수습과 재발방지에 만전을 기해 달라”고 부탁했을 정도다.
최근 논란에 휩싸인 가장 큰 문제는 롯데쇼핑이 개인정보 보호의 책임을 회피하고 있는 것이 아니냐하는 의문이다. 롯데백화점과 롯데마트의 개인정보 취급 약관에 각각 ‘기본적인 인터넷의 위험성 때문에 일어나는 일에 대해 책임을 지지 않는다’, ‘해킹에 의한 정보훼손에 책임을 지지 않는다’는 조항이 삽입돼 소비자들로 하여금 불안감을 조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롯데카드 회원 개인정보가 유출되는 과정에서 롯데백화점이나 마트 영업장에서 롯데카드를 가입한 고객 정보까지 함께 빠져나갔지만 약관에 따르면 롯데쇼핑 계열사들은 책임이 없음을 명시하고 있다.
특히 그동안 롯데마트는 신한생명보험과 함께 K3와 아반떼 중 한 대를 1등 경품으로 내건 ‘2014 새해맞이 이벤트 福’ 경품행사를 이달 2일부터 다음달 23일까지 진행하는 등 다양한 방법으로 개인정보를 수집해왔다. 이를 통하면 성명, 성별, 생년월일, 휴대폰번호, 롯데마트 이용지점, 거주지역, 직업, 자녀 유무, 가입보험상품 등 상세한 개인정보가 모두 신한생명보험과 롯데손해보험으로 넘어간다.
이와 함께 개인정보 유출 문제가 여전히 롯데를 괴롭히고 있다. 개인정보 책임 회피 논란이 불거진 배경도 이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 얼마 전 사상초유의 개인정보 유출 사태가 일어나 국민들의 혼란이 야기된 바 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 5일 오후 6시 기준으로 정보 유출로 인한 롯데카드의 탈회 건수는 25만 8000건, 해지 건수는 61만건으로 집계됐다.
더욱이 정보가 유출된 고객 중 실제 소송에 참여할 당사자를 전체 피해자 4300만 명의 1%로 산정하고 개인당 20만원의 정신적 손해를 인정한 싸이월드 소송 사례를 적용하면 롯데카드는 352억 원에 이르는 손해배상금을 물어야 한다. 카드재발급 비용으로도 150만장가량의 카트 재발급을 위해 75억 원의 관련 비용을 추정하는 상태다.
아울러 금융당국은 지난달 24일 모든 금융회사에 불법유통 개인정보를 활용한 영업행위 가능성이 높은 전화, SMS, 이메일, TM 등을 통한 대출 권유·모집행위를 3월 말까지 중단하도록 조치해 실적에 엄청난 타격을 주고 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지난 5일 국세청에 따르면 롯데쇼핑은 세금탈루 등의 혐의로 추징금 600억 원을 선고 받았다. 지난해 2월 롯데호텔이 200억 원의 추징금을 부과 받은 데 이어 롯데그룹 역대 최고 규모의 추징금 폭탄을 얻어맞은 것이다.
끝도 없는 악재들
앞서 서울지방국세청은 지난해 7월 16일부터 롯데백화점·롯데마트·롯데슈퍼·롯데시네마 등 롯데쇼핑 4개 사업본부에 대한 세무조사에 착수했다.
조사 결과 롯데쇼핑 산하에 편입된 롯데시네마가 매점사업권 등을 통해 세금을 일부 탈루한 것과 관련해 200억 원대의 과징금이 부과됐다.
특히 롯데시네마 매점 사업의 계열사 일감 몰아주기도 드러났다. 시네마 사업 수익을 나눠 가진 유원실업, 시네마통상, 시네마푸드 등 기업의 지분은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의 장녀인 신영자 롯데복지재단 이사장과 딸 신유미씨가 소유하고 있었다. 다만 현재 롯데시네마는 이들 사업의 수익구조가 문제되자 지난해 3월 매점을 직영으로 전환해 운영하고 있다.
결국 이와 같은 모습에 시민단체들은 비판의 목소리를 키우고 있다. 금융소비자연맹의 한 관계자는 “개인정보 유출과 관련된 대책이 너무나 무지한 상황”이라며 “개인정보 유출로 인해 피해가 발생하든 안 하든 책임을 지고 보상을 해야 하는데도 불구, 피해가 발생해야만 보상을 받을 수 있는 현실부터가 문제”라고 지적했다.
또 “이용약관에 네트워크의 위험성이나 인터넷의 위험성에 따른 피해를 보상하지 않는다는 것을 명시한 자체가 위험한 일”이라며 “국가적인 차원에서 대책을 마련하고 소비자들이 안심할 수 있도록 해야한다”고 조언했다.
그러나 롯데는 오해라고 주장한다. 롯데백화점 관계자는 “인터넷의 위험성이라고 명시하긴 했지만, 개인적으로 이용할 때 해킹이 되는 부분을 말한다. 기업의 기술적 사고는 보상한다는 입장”이라고 반박했다. 롯데마트 관계자는 “오해의 소지가 있다고 판단해 30일가량 공지 후 약관을 바꾸도록 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다만 “이전 판례를 살펴보면 기업이 최대한의 기술적 보완을 마쳤음에도 불구하고 유출 사태가 발생한 경우 보상을 해준 사례가 없다. 이러한 정보를 제공하려 했다”고 말해 여지를 뒀다.
이로써 책임 회피 논란의 가능성은 아직 남아 있다. 이를 다르게 해석하자면 개인정보가 유출됐다 하더라도 보상을 해준 적이 없다는 말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금융소비자연맹 금융국장은 “이번 대대적 개인정보 유출 사건에도 법적 조치를 취할 소비자를 1% 정도로 보고 있다”며 “더구나 피해가 있음을 소비자가 증명해야만 하는 구조를 가지고 있어 보상은 말 그대로 하늘의 별 따기 수준”이라고 꼬집었다.
한편 이러한 악재들로 인해 롯데의 내부는 혼란스럽기 짝이 없다. 한국신용평가는 지난 5일 롯데카드 무보증사채에 대한 신용등급을 AA로 유지하면서 등급전망을 안정적으로 낮춰 잡았다. 동시에 “강화된 규제로 성장둔화, 수익성 저하가 표면화되고 있다”고 우려를 나타냈다.
또 롯데쇼핑이 롯데카드의 주식 92.54% 보유하고 있다는 점이 알려지면서 롯데쇼핑의 주가도 불안하다. 지난 12일 기준 롯데쇼핑 주가는 34만2500원으로 전월 종가 대비 3만5500원이 하락한 수치를 보였다.
이미 업계는 개인정보 유출로 인한 롯데백화점, 롯데마트 등의 고객 유출도 불가피한 상황으로 보고 있다. 롯데카드를 통해 계열 유통사 제휴 할인 등을 진행하고 있는 가운데 롯데카드 회원 이탈이 심화되면 유통사의 고객도 자연스럽게 이탈할 것이라는 예측이다.
hwihols@ilyoseoul.co.kr
강휘호 기자 hwihols@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