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 “내가 피해자다” 괴담
재계, “내가 피해자다” 괴담
  • 박시은 기자
  • 입력 2014-02-17 12:59
  • 승인 2014.02.17 12:59
  • 호수 1033
  • 28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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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한마디 잘못했다가 ‘훅’ 날아간다

 

▲ 지난 4일 여수 기름유출 사고와 관련해 열린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긴급현안보고에서 윤진숙 전 해양수산부 장관이 김석균 해양경찰청장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정대웅 기자> photo@ilyoseoul.co.kr

막상막하 막말 이어달리기…생존자 누구
기름·개인정보 유출 해결보다 책임회피

[일요서울 | 박시은 기자] 재계 내에서 ‘피해자 발언’ 괴담이 속출하고 있다. “내가 피해자다”를 외친 이들마다 역풍을 맞고 있기 때문이다. 여수 기름유출 사고 관계자인 GS칼텍스와 윤진숙 전 해양수산부 장관은 물론 카드 정보유출 사건과 관련해 이신형 NH농협 분사장, 현오석 경제부총리도 이를 피하지 못했다. 이 같은 역풍에도 불구하고 KT ENS 대출사기 관련자들까지 피해자 발언에 동참하자 일각에서는 “피해자 코스프레가 유행이냐”며 또 한 번의 피바람을 예고하고 있다. 이에 재계는 피해자 발언에 급격히 몸을 사리고 있어 [일요서울]이 이를 살펴봤다.

‘말 한마디로 천 냥 빚을 갚는다’는 속담이 있다. 그만큼 말 한마디가 중요하다는 뜻이다. 그런데 최근 재계에서는 말 한마디 잘못했다가 ‘훅’ 간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적절치 못한 피해자 발언으로 인한 괴담이 생겨났을 정도다.

시작은 GS칼텍스 여수 기름유출 사고부터다. 지난달 31일 발생한 GS칼텍스 기름 유출 사고를 두고 사측은 “우리도 피해자”라며 ‘보상주체’라는 표현에 대한 부담감을 드러냈다. 그러자 어민과 국민들은 분노를 감추지 못했다. GS칼텍스가 직접적인 사고의 원인은 아니지만, GS칼텍스의 이해관계로 인해 부두에 도착한 유조선이 사고를 냈다는 점에서 마냥 피해자라고 보기는 어렵다.

본지 [1032호-잇따른 사고로 속 타는 허동수 GS칼텍스 회장]에서도 보도했듯 GS칼텍스는 사고 후 계속해서 늑장신고와 사고량 축소, 해무사 부재, 피해 노동자 산재 신고 막기 등으로 논란을 일으켜 ‘피해자’라는 발언에 대한 분노가 가중될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20년 전 시프린스호 사고가 같은 장소에서 일어난 바 있어 GS칼텍스는 환경운동연합회 등으로부터 유사사고 방지 노력이 부족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이에 GS칼텍스는 어민들과의 협의회에서 “보상액을 선지급 하겠다”며 논란 잠재우기에 나섰지만 협의 과정에서 여전히 “보상주체라는 언급은 쓰지 말 것”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때 불난 집에 부채질을 하는 사람이 나타났다. 바로 윤진숙 전 해양수산부(이하 해수부) 장관이다. 윤 전 해수부 장관은 지난 5일 여수 앞바다 기름유출 사고 새누리당 당정협의에서 “1차 피해자는 GS칼텍스, 2차 피해자는 어민이다”고 폭탄선언을 했다. 본격적인 피해자 발언 역풍이 시작된 것이다.

이에 이현재 새누리당 의원이 “가해자인 GS칼텍스가 왜 1차 피해자냐”며 도선사 관리 등 기강이 제대로 서 있지 않았던 점을 언급했고, 윤 전 해수부 장관의 잘못된 문제 인식을 지적했다. 이미 한차례 기름유출 사고 현장에서 코를 막고 인상을 찡그려 논란을 일으킨 바 있어, 윤 전 해수부 장관에 대한 국민들의 분노 역시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당정협의에서 적절치 못한 발언뿐만 아니라 억울하다는 듯한 태도로 웃음까지 연발해 사태는 더욱 악화됐다.
결국 윤 전 해수부 장관은 이 사건으로 ‘해임’됐다. 그동안 지속적으로 자질논란을 일으켜왔던 터라 대부분의 누리꾼들은 “속 시원하다”는 내색을 감추지 않았다.

이처럼 적절치 못한 언행으로 해임됐지만 윤 전 해수부 장관은 퇴임식까지 모두 치르고 해수부를 떠나 눈총을 받았다. 마지막까지 계란의 노른자처럼 논란의 중심에 서있는 주인공이 된 것이다.

윤진숙 화법, 新트렌드?

윤 전 해수부장관 해임으로 피해자 발언 사태는 일단락되는 듯 했다. 그런데 불난 집에 ‘기름’을 들이붓는 이들이 나타났다. 바로 현오석 경제부총리와 이신형 NH농협 분사장이다.
1억400만여 건의 개인정보가 유출된 카드 정보유출 사고 관계자들은 사건이 불거지자마자 기자회견을 열고 대국민 사과를 했다. 이날 농협·국민·롯데카드 사장단은 허리를 깊게 숙이며 사죄하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이런 행동은 연출에 불과했다. 이 NH농협 분사장이 “농협은 피해자다”고 주장하고 나선 것이다. 신용정보사인 KCB 파견 직원이 USB로 정보를 빼간 것이므로 농협카드도 피해자라는 설명이다. 지난 7일 국회 정무위원회가 실시한 카드 개인정보 유출사태 현장검증에서 등장한 ‘농협=피해자’ 발언에 여야 의원들은 거센 질책을 쏟아냈다. 국민들 역시 앞에서 사과를 하던 모습은 사라지고 피해자라며 억울함을 호소하는 모습에 황당함을 감추지 못했다.

앞서 현오석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장관이 “개인정보 유출 사태는 개인정보 제공에 동의한 국민 잘못이다”는 내용의 발언으로 질타를 받고 있던 터라 책임회피 논란은 더욱 심화됐다. 심지어 부적절한 발언으로 윤 전 해수부 장관이 전격 경질된 지 하루도 안 돼 나온 피해자 주장은 사태를 악화시키는 데 일조했다. 이에 윤진숙 화법이라는 말이 생겨났을 정도다. 각각의 사건이 종합적인 하나의 사건으로 얽힌 셈이다. 이 NH농협 분사장이 급히 “부적절한 발언이었다”며 사과했지만 엎질러진 물을 주워 담을 수는 없었다.

이에 한 누리꾼은 “윤진숙 전 해수부 장관과 다를 게 뭐냐”며 “어처구니없고 무능력하며 무식한 창고지기가 나타났다”고 말했다. 사람들의 돈을 맡아두던 창고에 불이 나 돈이 모두 잿더미가 되고 말았는데, 창고지기가 책임을 지기는커녕 엉엉 울면서 “내 창고를 잃어버렸으니 내가 피해자다!”고 외치는 상황과 다름없다는 것이다.
또 다른 누리꾼은 “국가 경제를 책임진다는 수장들이 단체로 실언하기로 작정을 했냐”며 강력하게 비난하기도 했다.

이 NH농협 분사장과 현 부총리는 아직까지도 피해자 발언, 책임 회피 발언을 사과하며 국민들의 눈치를 살피고 있다. 그럼에도 이번 사건으로 인한 분노는 쉽게 잠재우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 피해보상을 놓고 여전히 명확한 대책이 마련되지 않았으며 현 부총리 사퇴 요구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이처럼 피해자 발언 한마디에 ‘훅’ 가는 이들이 속출하자 재계는 급격히 몸을 사리는 눈치다. 논란에서 한 발 빠지려다가 오히려 된통 당한다는 시선이다. 이윤을 창출하려다 기업의 영속성이 사라질 위기가 올 수도 있다는 설명이다.

한편 그럼에도 불구하고 KT ENS 대출사기 사건 관련자들까지 피해자 발언에 동참해 또 한번의 피바람이 예고되고 있다. 사건은 벌어졌는데 모두가 피해자일 뿐 관계된 혐의가 없다며 발뺌하기에 급급한 모습이다. 아직 수사 중인 단계지만 사건에 연루된 관계자들의 책임공방으로 인한 ‘피해자’ 논란은 피하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피해자 논란의 괴담이 확산되는 가운데 괴담의 다음 주인공은 누가될지 재계의 귀추가 주목된다.

seun897@ilyoseoul.co.kr

박시은 기자 seun897@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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