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해 벽두에 시작된 제44차 세계경제포럼(WEF·다보스포럼) 연차 총회가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렸다. 이번 포럼에는 경제 관련 정부 핵심 인사들과 전경련 회장 등 금융계와 재계의 주요 인사들도 함께 참석했다. 이 자리에서 박근혜 대통령은 포럼 개막 첫날 ‘창조경제와 기업가정신’을 주제로 특별 연설을 하였다. 약 25분이나 되는 연설 중 아이디어, 문화, 창의성, 기술 도전, 혁신, 기업가정신이라는 단어를 계속 반복하는 가운데 무려 창조경제를 10번이나 언급했다. 이를 보면 창조경제가 우리가 헤쳐 나갈 길이고 살 길임을 천명한 것임엔 틀림이 없다고 생각된다.
조선 개화기에는 ‘양복에 갓 쓴 사람’이라는 표현이 있었다. 완전히 자기화 시키지 않고 어설프게 도입한 문화를 빗대어 하는 말이다. 그러나 간혹 서구의 것들은 교착상태에 빠져 우리에게 많은 갈등과 혼란을 불러일으키는 경우도 있다. 이럴 때일수록 외국의 것을 무분별하게 수입한다면 창의력은커녕 일을 하는 데 있어서 집중력이 분산되어 힘을 모을 수가 없다. 우리의 가치가 확고하지 못하고 이것저것 섞어 놓는다면 오합지졸(烏合之卒)로 혼란만 초래하게 된다. 외국의 선진기술과 문화를 벤치마크(benchmark)한 다음에 우리의 것으로 만들 수 있는 기술, 토착문화, 발전전략을 세워야 하겠다.
우리 민족은 매우 우수한 DNA를 가진 백성이다. 1950년 6.25 전쟁 시에는 그야말로 폐허가 된 나라였지만 전쟁 직후인 1953년 1인당 국민소득 67달러에서 불과 60년 만인 2013년 1인당 국민소득 2만4000달러를 달성했다. 1964년 1억불 수출하던 나라가 불과 7년 뒤인 1971년엔 10억불의 수출을 하게 되었고 그로부터 30년이 지난 2011년에는 5000억불을 수출하게 되어 47년 동안 무려 5000배나 증가하게 되었다. 세계 235개국과 무역거래를 하게 되었으며 무역규모 1조 달러을 능가하여 세계 8위권의 무역규모 순위가 되었다.
이제 원조를 받던 최빈국에서 공여국으로 탈바꿈한 세계 유일의 나라로 변했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나자 독립한 나라가 85개국이나 되는데 그중 산업화와 민주화에 있어서 모두 성공한 나라는 한국뿐인 사실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1996년 12월 한국은 경제협력개발 기구인 OECD에 29번째 회원국으로 가입하며 선진국 대열에 진입하게 되었다.
대한민국은 지난 1996~1997년 비상임 이사국 선출에 이어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이사국 선거에서 15년 만의 두번째 진출로 15개국으로 구성된 안보리의 일원으로 참여하게 되었다. 이는 지난 1991년 유엔 가입 후 2001년 총회 의장국 선출, 2006년 한국인 반기문 유엔사무총장 선출, 2011년 사무총장 재선 등 우리나라의 위상을 더욱 확고히 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로써 한국이 낳은 국제기구의 두 수장,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과 김용 세계은행 총재는 유엔과 세계은행에서 세계 평화와 개발과제를 해결하는 데 있어 가장 강력한 파트너로서의 역할을 하게 되었다.
또한 2002년에는 한일 월드컵 4강 신화의 주인공이 되었고, 2012년 런던올림픽 메달순위 5위를 마크 했다. 문화계에서도 싸이를 뛰어넘어 ‘NEW 한류 열풍’을 일으킬 영화가 오고 있다. 이제 우리 민족의 우수성은 여러 면에서 입증되어 자긍심을 가지고 나아갈 때라 생각한다. 나는 대한민국의 국민인 것을 매우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이제 무대를 뛰어 넘어 전 세계 방방곡곡에 다니며 우리 민족의 자긍심을 전하는 홍보대사가 되길 희망하고 있다. 수년 내에 그 꿈이 이루어지리라고 믿는다.
오늘의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되고 경이로운 역사를 이어 왔다. 박 대통령은 취임사를 통해 “인종과 언어, 이념과 관습을 넘어 새 시대의 삶의 바꾸는 ‘문화융성 시대’를 열어가겠다”고 밝혔다. 이것이 핵심 키워드가 됨에 따라 새 정부가 ‘문화융성위원회’까지 만들어 문화와 첨단산업을 아우른 콘텐츠 산업을 육성해 ‘창조경제’를 실천하겠다는 게 바로 문화융성이다.
이제 한민족의 뿌리 역사를 복원하고 문화의 혼을 되찾는 일은 우리의 소명이요, 대한민국의 국가적 과제이다. 우리 역사와 문화의 뿌리를 찾는 일에 앞장서면서 자긍심을 키우는 것은 물론 뿌리 문화를 바탕으로 세계 제일의 문화국가를 이룩해야 할 것이다. 문화는 한 나라의 국운을 좌우한다. 문화가 국력이요, 문화가 경쟁력이고, 문화가 경제인 시대다. 문화융성은 이제 경제부흥, 국민행복과 함께 국정의 3대 지표가 되었다. 한국인과 민족혼의 뿌리인 국악에 현대의 무한한 상상력을 담아 관객을 감격케 하는 것이 창조경제라 생각한다.
나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우리의 민족혼, 뿌리 문화, 문화유산을 찾으러 나선다. 지난해 가을 문화유적탐사로 실학의 대가였던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 1762~1836) 선생의 고향 능내리 마현마을에 조성된 다산기념관을 방문했다. 이곳엔 관리들이 백성들을 다스리는 도리를 설명한 <목민심서>를 비롯해 <흠흠신서>, <경세유표> 등 다산의 사상이 담긴 저서와 다산이 직접 그린 서화, 강진유배지의 다산초당 모형, 성을 축조할 때 무거운 물건을 들어 올리는 거중기 모형 등이 있다.
다산은 그 당시 수원 화성 축조공사에 거중기를 직접 개발하여 공사기간을 획기적으로 단축하고 예산을 많이 절감하였다. 이러한 사실은 오늘날 과학기술과 IT(정보통신)기술을 융합하는 것과 상통하는 창조경제의 실천이다.
아울러 지난 연말에는 (사)글로벌 녹색경영연구원 녹색경영아카데미 CEO 과정 원생들과 함께 전라남도 진도를 방문하게 되었다. 이번 진도 방문에 있어서 감명 깊었던 것은 문화예술 공연단체인 극단 갯돌의 사랑춤과 신명나는 풍물굿 사설놀이마당을 비롯해 진도의 소리꾼 명인인 조오환씨 등의 진도엿타령, 진도아리랑, 남도민요 소리였다. 이외에도 강강술래와 멋진 가락이 깃든 농요들, 남도 들노래 등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어서 진도 타워를 관람하게 되었는데 이순신 장군의 어록이 새겨진 글귀를 모아 새롭게 시조시를 읊어 보기도 하였다. 특히 13척의 배로 왜선 133척을 물리친 역사적인 현장, 명량해협, 울돌목을 굽어보는 장면에서는 눈시울이 붉어졌다.
거북선과 관련한 일화가 있다. 1971년 현대그룹의 설립자 故 정주영 회장은 조선산업을 창업하기 위한 자금을 빌리기 위해 추천서가 필요했으나 영국의 A&P사에서는 선뜻 추천서를 써주지 않았다. 그때 정주영 회장은 당시 500원 지폐 안에 그려진 거북선을 내보이면서 우리 민족의 우수한 능력과 기술을 보여줬다. 마침내 정 회장은 추천서를 받아 오늘날 우리나라가 조선강국으로 세계 제1위를 달성하는 계기를 만들었다.
우리의 민족혼을 찾아 그 뿌리를 바탕으로 옛것을 본받아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법고창신(法古創新)이야말로 문화융성의 창조경제를 이루는 지름길이 될 것이다. 우리 토양, 우리 문화에 알맞은 창조경제 실천이 요구되는 때이다.
김의식 (경영학 박사)
충주고등학교 졸업 후 경희대학교를 장학생으로 졸업했다. 이후 제일은행에 입행해 지점장, 본부장을 거치는 동안 쉼 없는 노력과 열정으로 주경야독해 경영학박사 학위를 취득, 어릴 때 꿈이었던 교수의 자리에 올랐다.
은행 명예퇴직 후 인하대 겸임교수, 인천대 초빙교수를 지내는 동안 열혈교수라는 별명을 얻었다.
저서로는 ‘열정은 배신하지 않는다’와 역할모델인 반기문 총장을 소재로 한 ‘세계를 가슴에 품어라’ 외 다수의 책이 있다. 현재 (사)글로벌 녹색경영연구원 교육원장·교수로 재직 중이다.
김의식 ilyo@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