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서울Ⅰ강휘호 기자]공기업 간부 남편의 직위를 이용해 남편의 부하 직원 부인들에게 금품을 받아 챙기다 재판까지 받게 된 사모님의 소식이 연일 화제다. 드라마에서나 나올 것 같은 이 사건은 바로 한국중부발전에서 불었던 치맛바람 이야기다. 더군다나 이 사모님은 인사 청탁·회사 내 문책 등의 사항까지 관여했던 것으로 알려져 충격을 주고 있다. 그들은 진정 내조의 여왕이었을까. [일요서울]이 해당 사건의 내막과 현재를 추적해봤다.

서울중앙지검 특수3부(부장 문홍성)는 지난 4일 남편의 부하 직원 부인들로부터 인사 청탁 명목으로 금품을 받은 혐의(제3자 뇌물취득)로 전 중부발전 본부장급 간부 안모씨의 부인 박모(56)씨를 불구속 기소했다.
앞서 감사원은 지난해 7월 한국중부발전을 대상으로 공직비리를 점검해 직원 부인들 사이에 뒷돈이 오간 사실을 적발하고 검찰에 수사를 의뢰했다. 박씨의 남편도 수사를 받았으나 관련 사실이 확인되지 않아 기소 대상에서 제외됐다. 다만 감사원의 요구에 따라 박씨 남편은 이후 해임됐다. 인사 청탁으로 승진했던 직원들도 모두 승진이 취소된 것으로 알려졌다.
벌써 수년째 비리 적발…문책성 인사에도 관여
자택·커피숍·결혼식장 등 수수 방법도 가지가지
검찰에 따르면 박씨는 2011년 11월부터 2012년 9월까지 보령화력본부 소속 직원의 부인 4명으로부터 승진 인사 청탁을 받고 현금 1900만 원과 핸드백을 받은 혐의를 받고 있다.
당시 보령화력본부장 기술본부장으로 근무했던 박씨 남편은 팀장급 직원의 근무성적을 평가하고 승진심사위원회에 승진 대상자에 대한 의견서를 작성해 제출하는 위치에 있었다. 아울러 사장에게 직접 의견을 제시하는 등 인사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의 인사 청탁 과정은 가지각색이었다. 검찰 조사 결과 한 팀장급 직원의 부인은 2011년 11월 박씨 집을 찾아와 1000만 원을 건네면서 “남편 승진이 동기들에 비해 늦어 스트레스를 받는다”며 노골적인 부탁을 했다.
더불어 박씨는 같은 해 8월 또 다른 직원의 처가 건넨 300만 원을 아파트 현관에서 수수했으며, 9월에도 자택 인근 커피숍 등지에서 직원 부인 2명이 건넨 500만 원, 100만 원을 각각 받았다.
남편의 문책을 피하기 위해 뇌물을 준 이도 있었다. 한 부인은 10여 명의 사상자를 낸 사업장 내 임시가설물 붕괴 사고와 관련해 안전 관리 담당자였던 남편이 인사에서 불이익을 받지 않게 도와 달라며 “죄송하다. 미안하다” 라는 말과 함께 박씨에게 100만 원을 건넸다.
부창부수
깊게 드리운 도덕적 해이
더욱 충격적인 사실은 본부장이었던 박씨의 남편도 금품수수에서 자유롭지 못했다는 것이다. 비록 정확한 증거가 나오지 않아 검찰의 기소 대상에선 제외됐지만 감사원의 조사 결과는 달랐다.
감사원이 지난해 조사했던 공직비리 감사결과 보고서에 따르면 박씨의 남편인 전 중부발전 보령화력 본부장은 2011년 9월 사무실에서 ‘해외출장 잘 다녀오시라’며 승진후보자가 건넨 100만 원을 수수했다.
또 보고서는 “이 회사 본부장은 사내 등산동호회 등반을 앞둔 같은 해 11월에도 ‘등산복이라도 사입으시라’며 직원이 전달한 100만 원을 챙겼다”고 밝히고 있다.
이 외에도 자녀 결혼식에 참석한 또 다른 승진후보자가 100만 원을 축의금으로 내자 이를 그대로 수수하는 등 금품을 받은 장소와 방법은 다양했다. 그리고 박씨와 박씨의 남편에게 금품을 건넨 이들 직원은 모두 승진예정자로 결정됐다.
아울러 상황이 이쯤 되자 “한국중부발전 내에서는 본부장과 본부장을 거쳐야 승진을 할 수 있다”는 분위기가 팽배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감사원도 “승격 등 인사에 지대한 영향력을 미치는 직위에 있는 본부장에 금품을 전달해야만 승격될 수 있다는 소문이 파다했고, 금품 공여자 6명이 일관되게 공여사실을 인정했다”고 전했다.
그야말로 나랏돈을 받고 일하는 자리인 공직을 돈으로 사고파는 모습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셈이다.
한편 중부발전의 이러한 문제는 하루 이틀 된 일이 아니다. 대법원은 지난달 7일 협력업체로부터 뇌물을 받은 혐의가 있는 중부발전 전 사장 정모씨에게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1년, 추징금 550만 원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정 씨는 2008년 대검찰청 중앙수사부가 강원랜드 비리 의혹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중부발전 공사 발주 청탁과 관련해 협력업체 이 모 회장에게서 1억 1000여만 원을 받은 혐의가 밝혀졌다.
뿐만 아니라 2011년 4월부터 지난해 2월 사이에는 중부발전이 직원을 채용하면서 발전소 주변지역인 보령시 오천면, 주교면, 천북면, 주포면 등 4곳을 넘어서 보령시 전 지역을 우대 대상으로 적용해 35명을 채용한 것으로 드러나 질타를 받기도 했다.
이 같은 혜택으로 입사한 직원 중에는 해당 지역 시의원과 군청 직원, 발전소 직원들의 자녀도 포함돼 있었다.
현재 중부발전은 다시는 이러한 일들이 일어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한다는 방침이다. 중부발전 관계자는 “일부의 문제였을 뿐, 중부발전 내 인사 청탁이 팽배하다는 이야기는 너무 과장됐다”며 “본부장은 해임, 나머지 부하직원들에겐 정직 등의 징계가 내려졌다”고 일축했다.
향후 개선안에 대해서도 “직원들에 대한 청렴 교육을 더욱 강화했고, 계약서까지 쓰면서 비리를 근절하고자 노력하고 있다”면서 “이번 사건을 기점으로 공직자들의 도덕적인 부분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리는 중”이라고 말했다.
다만 본부장급 정도의 간부가 사장이 선임해야 할 인사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기 때문에 비리가 난무한다는 지적에 대해선 “사장이 직접 승격심사위원회를 구성하고 위원회의 평가에 의해 승진이 결정된다”면서도 “일부 간부가 사장의 결정에 면담 등을 요청, 직접적인 영향을 준다는 것은 다시 확인해 봐야된다”고 한 발 물러서는 모습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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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휘호 기자 hwihols@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