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여성의 사회진출 기회가 확대되면서 남성들과 함께 일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현상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조직 내에서는 여성들에 대한 직장 내 성희롱이 만연해 있다. 이는 우리나라의 남성 중심적인 사회 문화적 여건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직장 내에서 성희롱을 경험하는 여성들은 위계구조에 의한 불이익 때문에 피해 사실을 은폐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지난 1993년 ‘신교수 (우조교)성희롱 사건’을 계기로 그 문제의 심각성이 알려지게 됐고 사소한 문제로 치부됐던 성희롱에 대한 여성들의 문제의식이 높아지게 됐다. 또 해당 사건으로 인해 성희롱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 지면서 관련 조사 및 다양한 연구들도 나오게 됐다.
1999년에 『남녀고용평등법』과 『남녀차별 금지 및 규제에 관한 법률』의 시행으로 법적인 규제 제도가 마련됐다. 하지만 아직도 성희롱에 대한 인식도를 조사해보면 대부분의 가해자인 남성들은 ‘친밀감 표현의 장난’이거나, ‘법적으로 해결할 만큼 심각한 문제가 아니다’라는 식의 성희롱에 대해 잘못된 인식이나 통념을 갖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웃자고, 친해지자고 하는 말과 행동들은 상대방의 입장에서는 절대 웃음이 나오지도, 친근감이 생기지 않는다. 불쾌감과 수치심만이 쌓여갈 뿐이다. 더욱 나쁜 것은 가해자들은 전혀 인식하지 못한 채 ‘네가 너무 예민한 것 같다’, ‘같은 팀식구인데 그 정도 장난도 못 치나?”라고 하는 것이다.
한국 사회는 유독 군대문화, 나이·직급에 따른 위계질서가 굉장히 강하다. 때문에 성폭력은 실제 권력 차이에서 많이 발생한다. 이러한 한국 사회의 문화를 감안해 직장 내 성희롱에 대한 모두의 성찰이 필요할 때이다.
#사례1.
박 대표는 직원인 지윤에게 가끔씩 뒤에서 껴안는 장난을 친다. 자주는 아니지만 1년에 한번 꼴로 일어나는 장난에 지윤은 불쾌한 생각은 들었지만 참고 넘겼다.
그러던 어느 날, 박 대표는 지윤을 안고 들었다가 내려놓으면서 가슴을 만지는 성적 언동을 했다고 한다. 지윤은 남편에게 이 사실을 알렸고, 다음날 남편과 함께 박 대표를 만나 항의하고 성적 수치심으로 인해 사직한다는 내용의 사직서를 제출했다.
어떠한 행위가 성희롱에 해당하는지 여부는 양 당사자의 업무관련성, 성적 언동의 사실관계, 해당 언동이 행해진 장소·상황 및 행위, 상대방의 명시적 또는 추정적인 반응, 행위에 대해 상대방이 거부감, 불쾌감을 느꼈는지 여부 등을 종합해 결정하게 된다.
위 사례에서 지윤은 박 대표 회사의 직원으로 두 사람은 고용관계에 있고, 행위는 지윤이 당직근무 중 발생한 일이므로 업무관련성이 있다고 볼 수 있다.
처음에 박 대표는 가슴을 만졌다는 지윤의 주장에 대해 부인했으나, 남편이 찾아가서 항의했을 때는 이를 부인하지 않고 위로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해명했다는 것(남편의 진술)과 지윤의 사직서에 적힌 사직이유가 지윤의 주장을 뒷받침한다.
또 성인을 뒤에서 안고 들어 올릴 경우 신장 및 체중 등으로 손이 가슴부위에 닿을 개연성이 높은 점 등을 고려할 때 지윤의 주장을 사실로 인정하기에 충분하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가끔씩 일어난 장난(뒤에서 껴안기)에 대해서는 지윤의 주장 외에 객관적인 증거나 구체적 정황을 발견하기 어려워 인정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합리적인 여성의 관점에서 성인 남성이 갑자기 뒤에서 껴안아 들어 올리고 가슴에 손이 닿는 것은 성적 굴욕감 및 혐오감을 주기에 충분하며, 지윤은 사직서에 ‘성적 수치심을 느낌’이라고 호소했다. 반면 박 대표는 지윤을 뒤에서 안았던 것은 당시 동료 직원들과 갈등을 겪고 있던 지윤을 위로하기 위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껴안는 것은 일반적인 상식에서 위로의 방법이라 볼 수 없다. 또 가해자의 주관적인 의도는 성희롱 판단의 고려요소가 될 수 없다.
따라서 박 대표가 지윤에게 가한 행동은 성적 합의가 있는 불쾌감을 주는 행위로 『국가인권위원회법』 제2조제3호에 규정한 성희롱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한 회사의 대표로서 소속직원의 성희롱을 예방하고 관리할 책임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그 직위를 이용해 직원에게 원치 않는 신체접촉을 한 박 대표의 책임이 크다고 인정될 수 있는 것이다.
#사례2.
얼마 전 해외출장을 다녀온 김 부장은 사무실 통로 계단에서 경숙과 마주쳤다.
[경숙의 주장]
경숙: “잘 다녀오셨어요.” / 김 부장: “응, 선물을 못 사와서 미안해. 언제 저녁이나 같이 하자.” / 경숙: “저녁은 무슨 저녁이에요, 됐습니다.” / 김 부장: (본인의 얼굴을 경숙의 얼굴 가까이에 들이민다.) / 경숙: “왜 이러세요!”(오른쪽으로 얼굴을 돌려 피했지만 김 부장의 입술이 경숙의 왼쪽 볼에 닿았다.)
[김 부장의 주장]
김 부장: “어, 오랜만이야.” / 경숙: “부장님 잘 다녀오셨어요?” / 김 부장: “언제 저녁 한번 살게” (반갑게 서로 악수하고 지나치는 순간 장난기가 발동, 머리카락으로 가려있던 경숙의 볼에 가까이 입을 갖다 대며) “고마워.” / 경숙: “왜 이러세요.”(황급히 계단을 내려간다) / 김 부장: (‘장난이 심했나’하는 생각에 겸연쩍게 웃으며) “미안해”(사무실로 돌아온다.)
위와 같이 직장 내 성희롱은 사람들이 없는 공간에서 발생하는 경우가 많으므로 두 사람의 얘기와 상황만으로 판단되는 경우가 많다. 가능하면 CCTV나 주변에 같이 있던 동료들의 증언확보, 거부의사 표시의 편지나 문자 같은 것이 있다면 좋겠지만 위와 같은 사례에서는 증거물로 확인할 수 있는 것이 매우 적다. 사실을 입증할 증거의 부족은 결국 성희롱으로 인정이 되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
김 부장은 자신의 행위에 나쁜 의도가 있었던 것은 아니며 순간적 장난이었다고 주장하나, 성희롱 행위는 가해자의 의도 여부와는 무관하게 합리적인 일반인의 관점에서 해당 언동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에 따라 판단되어야 한다. 특히 직장 내 성희롱은 피해자와 가해자가 한 직장에서 지속적 접촉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 피해자의 업무환경을 악화시켜 계속적 근로를 어렵게 하는 등 피해자의 근로의 권리를 크게 침해해 그 폐해가 더 크다 할 수 있다.
사례에서 김 부장은 경숙과 사무실 통로 계단에서 마주쳤고, 인사를 나눈 후 경숙에게 본인의 얼굴을 가까이 대어 입술을 경숙의 왼쪽 볼 부분에 닿게 한 사실이 인정된다. 이러한 행위는 업무관계에서 회사의 종사자가 업무 등과 관련한 성적 언동으로 피해자에게 성적 굴욕감 또는 혐오감을 주기에 충분한 행위이므로 『국가인권위원회법』 제2조 제5호에 규정한 성희롱에 해당하게 볼 수 있다.
이지혜 기자 jhooks@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