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와줘요” 편지 한 장에 탈출한 ‘염전 노예’ 장애인
“도와줘요” 편지 한 장에 탈출한 ‘염전 노예’ 장애인
  • 이지혜 기자
  • 입력 2014-02-10 09:54
  • 승인 2014.02.10 09:54
  • 호수 1032
  • 18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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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서울|이지혜 기자] 2000년 6월. 40세 김모(시각장애 5급)씨는 카드빚을 지게 되자 부모님께 폐를 끼칠 수 없다는 생각에 집을 나왔다. 그러나 장애를 가지고 있는 김씨가 직장을 구하기는 힘들었다. 결국 김씨는 10여 년 동안 낮에는 막노동판을 전전하고 밤에는 서울 영등포역에서 노숙생활을 했다.

그러던 2012년 7월 김씨는 노숙자 무료급식소에서 직업소개업자 이모(63)씨를 만났다. 이씨는 김씨에게 “숙식도 제공하고 월급도 주는 염전에서 일 해보는 것이 어떠냐”고 제안했다. 오랜 노숙생활에 지쳐있던 김씨는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그러나 이씨는 염전업주 홍모(48)씨에게 100만 원을 받고 김씨를 넘겼다. 홍씨는 김씨를 데리고 전남 신안군에 있는 외딴 섬으로 들어갔다. 홍씨는 김씨를 노예 부리듯이 대했다. 지옥같은 생활의 시작이었다.

염전에는 김씨보다 먼저 일을 하고 있는 채모(48)씨가 있었다. 지적장애를 가진 채씨는 2008년 11월 전남 목포의 한 직업소개소에서 이씨 등에게 속아 섬으로 팔려 왔다. 채씨는 무려 5년이라는 세월 동안 하루종일 염전일과 홍씨의 집안일 등의 강제 노역에 시달리고 있었다.

홍씨는 시각 장애를 가지고 있는 김씨에게 작업 속도가 느리다는 이유로 각목과 쇠파이프 등으로 폭행을 가했다. 채씨 역시 홍씨로부터 지속적인 폭력에 시달렸다.
두 사람은 지옥에서부터 벗어나기 위해 여러 차례 탈출을 시도했으나 항상 실패했고 홍씨는 이들에게 “한번만 더 도망치다 걸리면 칼침을 놓겠다”고 협박까지 했다.

탈출이 어려워지자 김씨는 도와달라는 내용의 편지를 쓰고 기회를 엿보기 시작했다. 그러다 지난달 13일 읍내에 이발을 하러 온 김씨는 사람들의 눈을 피해 우체국에서 모친(66)에게 편지를 보낼 수 있었다.

십수 년 전 연락이 끊긴 아들에게서 편지를 받은 모친은 구로경찰서로 달려갔다. 지난달 24일 소금구매업자로 위장해 섬에 들어간 경찰은 일을 하고 있던 김씨를 구출했다. 그리고 4일 뒤인 28일 채씨 또한 구출에 성공했다. 김씨는 1년 6개월, 채씨는 5년 2개월 만에 염전 노예생활에서 벗어난 것이다.

경찰은 김씨와 채씨를 염전에 팔아넘긴 직업소개업자 이씨와 임금을 지급하지 않고 폭행을 일삼은 업주 홍씨 등을 영리목적 약취유인죄 및 폭행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

경찰 관계자는 “홍씨 등에 대해 추가 조사에 들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jhooks@ilyoseoul.co.kr

이지혜 기자 jhooks@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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