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들어 일본 정부를 비롯한 관료들이 일본군위안부 문제를 부정하는 발언이 늘고 있다. 특히 일본의 아베 총리는 29일 참의원 본회의에서 지난해 5월 유엔 고문방지위원회가 “군 위안부 문제와 관련해 책임자를 처벌하고 정부 차원의 배상과 사과는 물론 이를 교과서에 기술해 같은 사건이 재발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권고한 것에 대해 “사실 오인에 기반을 둔 일방적인 것으로 법적 구속력이 있지 않다”며 부정하고 나섰다.
이런 가운데 세계 최대 만화 축제인 제41회 프랑스 앙굴렘국제만화페스티벌에서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한국만화기획전’이 열리자 한국과 일본이 또다시 충돌했다. [일요서울]에서는 2일 폐막한 앙굴렘국제만화페스티벌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한국만화기획전’을 둘러싸고 벌어진 한국와 일본의 대결을 분석해 봤다.
한국만화영상진흥원이 주관한 일본군 위안부 만화 ‘지지 않는 꽃’ 기획전에는 이현세, 박재동, 김광성, 백성민, 김금숙 등 작가 19명이 만화, 애니메이션 등 25편을 제작해 10대 소녀를 성노예로 삼은 일본군의 만행을 세계에 알렸다. 앙굴렘 극장 지하에 마련된 ‘지지 않는 꽃’ 기획전에는 세계 각국에서 온 관람객 1만7000여 명이 다녀갔다.
진흥원 관계자는 “앙굴렘국제만화축제에 참가하게 된 계기는 일본군위안부 문제를 비롯한 전시 및 분쟁지역에서 자행되는 여성에 대한 성폭력 문제를 고발하기 위한 것이다”라며 “지난 20세기에 일어난 여성에 대한 성범죄행위에 대해 국제사회의 경각심을 일깨워 인류평화를 도모하고자 하는 것”이라고 전했다.

방해전략도
진실 앞에서 소용없어
일본 정부 등은 ‘지지 않는 꽃’ 기획전을 앞두고 집요하게 방해전략을 펼쳤다.
진흥원이 파악한 바에 따르면 일본측은 일본 페미니스트 NGO의 주도로 1만 2천명의 전시회 반대 서명을 받아 앙굴렘조직위에 전달하며 우리나라의 위안부 관련 만화 앙굴렘국제만화축제에 출품을 막으려고 했다.
또 주 프랑스 일본공관은 31일 앙굴렘만화축제 프레스센터에서 ‘위안부 문제에 관한 일본의 대응’이라는 문서를 배포했다. 문서에는 “한국정부가 주도하는 위안부 관련 만화 전시는 상호 이해와 우호 친선 증진을 도모하려는 본 페스티벌의 취지가 크게 왜곡되는 것을 깊이 우려하는 바이다’라는 입장의 글이 적혀 있었다.
실제 30일 앙굴렘 조직위 브리핑장에서 기자들이 “파리 사전기자회견을 취소하지 않으면 전시회를 열 수 없다는 조직위의 이야기가 있었다는게 사실인지 알고 싶다”는 질의에 프랑크 봉두 조직위원장은 “그것이 현실이었다.”라고 답변해 일본 측의 압력을 인정했다. 또 그는 “앙굴렘 페스티벌은 전 세계의 잔혹사를 다루고 있으며 역사는 미래를 준비해야 한다”며 “전시회가 아주 감동적”이라고 여성인권유린사에 대한 반성을 촉구하는 기획전의 취지에 거듭 공감을 나타냈다.
이런 가운데 일본 측은 한국 기획전에 대응해 아시아관 전시 홍보 부스에 ‘위안부 증언은 거짓’이라는 내용의 작품들을 전시하려다가 개막 전날 축제 조직위에 의해 강제 철거당했다.
일부 일본 기자는 30일 열린 위안부 만화 ‘지지 않는 꽃’ 기획전 개막 기자회견장에서 “한국의 정치적인 행사는 놔두고 일본만 철거하는 이유가 무엇인가”라고 질문하기도 했다. 이에 니콜라 피네 아시아담당 디렉터는 “알려지지 않은 사실을 알리는 것은 정치적인 것이 아니다. 사실이 아닌 것을 알리는 것이 정치적이다”고 일침을 가했다.
개막식에 참석한 필립 라보 앙굴렘 시장도 축사에서 “이번 위안부 한국만화전시전은 보석상자와 같다. 이 행사를 계기로 한국과 프랑스의 우호관계는 더욱 돈독해질 것으로 기대한다”라고 말했다.

“오늘에서야
이 비극을 알게 됐습니다”
외신들과 관람객들도 ‘지지 않는 꽃’ 기획전에 대해 큰 관심을 보였다.
프랑스 남서부 지역신문 ‘Sud-Ouest’는 31자 기사에서 “전시회를 방문하면 위안부들이 얼마나 고통스러웠으며 그 고통이 아직도 지속되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한국 뿐 아니라 전 세계에 같은 문제로 고통스러워 하는 여성들에게 진정한 경의를 표하는 전시회”라고 평했다.
또 만화잡지 ‘ActuaBD’도 같은날 기사를 통해 “2차 대전시 일본군에 의해 성폭력을 당한 어린 여성들인 ‘위안부’라는 무관심할 수 없는 주제를 다룬 뛰어난 전시회. 일부 일본 극우주의자들이 전시회 반대 운동을 벌였다. 조형적 퀄리티가 상당히 높은 전시회”라고 평했다.
관람객 상당수는 위안부 문제를 처음 접하는 사람들이었다. 드니(55, 남)씨는 “오늘에서야 이 비극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야기를 지금까지 간직하고 있는 것이 한편으로는 슬프고 한편으로는 용기있는 행동입니다. 모든 감정을 가슴에 불러 일으키는 전시였습니다”라고 밝혔다.
오렐리앙(28,남)씨는 “6시간 동안 전시를 보았습니다. 무척 인상적이다. 이전부터 이 문제에 대해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왜 일본군이 썼던 ‘위안부’라는 용어를 지금도 계속 한국사람들이 쓰고 있는 것이 의아했습니다. ‘위안부’보다는 ‘성노예’가 더 맞는 것 같습니다”라고 전했다.
마르땅(62, 남)씨는 “지금 가진 용기보다 더 큰 용기를 가지고 끝까지 과거 기억을 잊지 않게 하세요. 이것이 제가 한국분들에게 말씀드리고 싶은 말입니다”라고 전했다. 또 노에미(24, 여)씨는 “이전에는 모르고 있었습니다.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야합니다. 용기를 내세요”라고 말했다.

‘지지 않는 꽃’
국내에서도 전시한다
진흥원 관계자는 이번 전시를 통해 위안부 문제에 대한 국제사회 공감대 형성 및 관심과 지지를 확산하는 게기가 됐다고 전했다.
한편 ‘지지 않는 꽃’ 기획전은 앞으로 국내와 세계 각지에서 열릴 전망이다. 한국 조직위에는 앙굴렘에 참가한 출판사 중 일본군 위안부 피해를 당한 중국, 위안부가 설치됐던 싱가포르 등에서 기획전을 유치하고 싶다는 제의가 들어왔다. freeore@ilyoseoul.co.kr
오두환 기자 freeore@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