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월급’ 한 푼 못받는 국회 입법보조원 현실
- “국회사무처 처우개선-의원들 부모심경 헤아려야”
때 아닌 국회 의원회관 5층 민주당 중진급 의원실에서 고성이 오고갔다. 두 선임 보좌관이 의견이 엇갈리며 언성이 높아진 것. 이유인 즉 A 보좌관은 ‘무급으로 청년 인턴을 채용하자’ 주장이었고 또 다른 B 보좌관은 ‘돈을 안주고 어떻게 사람을 부리냐’며 반대의 목소리를 냈다. 바로 국회 의원 인턴 채용을 두고 하는 말이다. 언뜻 보면 두 사람 모두 틀린 말은 아니다.
현재 국회에선 33만 청년 실업을 해소하기 위한 방편으로 국회 청년 인턴제를 운영하고 있다. 299명 국회의원이 각 유급 인턴 2명씩 채용할 수 있다. 최대 600명의 청년 인턴이 채용이 가능하다.
또한 국회의원 한명 당 무급 인턴도 2명까지 쓸 수 있다. 국회 입법보조원이 바로 그들이다. 유급 인턴은 10개월간 국회에서 전일제(평일날 하루종일 근무형태)로 근무하면서 월 120만원 월급과 4대 보험 혜택을 받을 수 있다. 또한 능력을 인정받을 경우 9급 7급 비서로 승진할 수 있어 경쟁률이 만만치 않다.
반면 국회 입법보조원은 식대나 교통비 등 실비를 받지 못한다. 국회 사무처 소속이 아닌 개인 의원실 소속이라 4대 보험도 안되고 신분 역시 불안하다. 대신 전일제가 아닌 파트 타임제로 국정감사 기간이나 회기가 열리는 바쁜 시기에만 탄력적으로 근무한다. 하지만 이 역시 지원자들이 많아 경쟁률이 치열하다.
선거법 규정에 따라 무급?
고급 청년 실업자가 부쩍 늘면서 몇 몇 국회의원들은 국회 입법보조원제도를 악용해 ‘무급에 6개월간 전일제’로 조건을 내걸고 허드렛일을 시켜 눈총을 받고 있다. ‘공짜’로 고급 인력을 장기간 근무시키고 달랑 ‘경력증명서’ 한 장 발급해주는 게 전부다.
국회 홈페이지 채용소식(의원 채용실)에 올린 채용 공고를 보면 이를 잘 알 수 있다. 통상 국회 인턴직을 모집할 경우(민주당 백재현 의원실 국회 인턴 참조, 2014년 1월21일) ▲ 모집대상 및 조건 ▲ 주요업무 ▲ 제출서류 및 기한 ▲ 근무조건 ▲ 전형방법 및 일정 ▲ 기타 사안으로 응시자들이 한눈에 무슨 일을 어떤 조건으로 할 수 있는 지 알 수 있다.
하지만 새누리당 박창식 의원실이 올린 국회 입법 보조원 채용공고(2014년 1월 16일자 공고)는 백 의원실 인턴채용공고와 차이가 난다. 일단 ▲ 모집대상 ▲ 모집 기간 ▲ 자격요건 ▲ 주요 업무 ▲ 근무조건 ▲ 전형방법 ▲ 제출서류 등 요강은 비슷하다.
하지만 근무조건을 보면 달랑 ‘선거법 규정에 따라 무급 자원 봉사 원칙’이라고만 적시돼 있다. 즉 지역구 사람을 쓸 경우 정치자금법상 문제가 된다는 의미인데 사실 박 의원은 비례대표로 지역구가 없다. 단 박 의원실에선 ‘활동 완료후 수료증 및 경력증명서 발급’이라는 혜택을 내놓았다.
그러나 자격요건을 보면 ‘컴퓨터 활용능력 및 문서 능력이 우수한 자’, ‘6개월 이상 장기근무자 우대’로 사실상 전일제를 요구하고 있다. 이는 파트 타임이라는 국회 입법보조원 취지를 무색하게 만드는 조항이다.
주요 업무는 사실상 유급 인턴과 별 차이가 없다. 상임위 활동 및 입법보조, 의원실 기타 업무 보조, SNS, 홈페이지 관리 등 홍보 업무를 담당한다고 적시돼 있다. 박 의원실에선 무급 관련 “국회 사무처에서 월급을 주지 않는다”며 “일을 배우는 연수 개념으로 봐야 한다”고 대수롭지 않게 반응했다.
새누리당 이강후 의원실이 낸 입법보조원 모집 공고(2014년 1월14일자)는 그나마 박 의원실보다는 나은 편이다. 모집 대상란에 ‘무급’이라고 적시돼 있지만 ‘소정의 교통비 및 중식 제공’이라고 단서를 달았다.
그러나 모집 요건을 보면 ‘소정의 금액’을 왜 적시했는 지를 금방 알 수 있었다. ‘6개월 이상 장기 근무자 우대’, ‘SNS 포토샵 능력 보유자 우대’, ‘전일제 근무 가능자’로 한정했기 때문이다. 사실상 유급 인턴과 다를 바 없다.
유급인턴 같은 무급 인턴
‘근무 조건’이 없는 채용공고란도 있다. 민주당 이종걸 의원실 입법 보조원 공고(2014년 1월15일자), 민주당 김기식 의원실 인턴 모집(2014년 1월13일자)이 대표적이다. 유급인지 무급인지 교통비나 식비를 주는 지 4대 보험이 되는 지 안되는 지 채용 공고를 보면 전혀 알 수가 없다.
해당 의원실에선 ‘인턴이면 유급이고 입법보조원이면 무급이라는 것을 응시자들이 다 알지 않느냐’, ‘깜빡했다’는 등 채용 공고에서도 국회가 얼마나 수퍼갑인 줄 간접적으로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전남 담양.함평.영광.장성이 지역구인 민주당 이낙연 의원실에서 낸 입법보조원 모집 공고(2014년 1월9일자)를 보면 ‘선거법 규정에 따른 무급 자원봉사 원칙’으로 전일제 근무를 요구하고 있다. 그나마 근무조건에 ‘중식 제공’이라며 ‘명함, 경력 증명서 발급’, ‘다른 의원실 인턴채용시 적극 추천’ 등을 혜택으로 내놓았다.
이 역시 주요 업무를 보면 ‘축사 등의 문서 작성 업무’를 요구해 사실상 입법 보조원 이상의 강도 높은 업무를 요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2014년 올라온 채용 공고만 봐도 이정도인데 2013년 채용 공고는 더할 나위가 없다.
국회 무급인턴에 대해 20년 넘은 한 보좌관은 “법적으로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지만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다”며 “단지 고급 청년 실업자들이 늘고 있다는 점이나 국회 근무라는 특수한 환경을 악용하면 안된다”고 질타했다.
나아가 이 보좌관은 “파트타임제 운영이 정석인데 전일제에 장기간 근무를 시키면서 월급을 안 주는 것은 의원에 문제가 있다”며 “물론 국회 사무처에서 입법 보조원에 대한 처우 개선을 해야하지만 그전까지는 의원실에서 국회에 자식을 보낸 부모님 심경을 헤아려 배려를 해줘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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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준철 기자 mariocap@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