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양모 교수의 ‘문화재 산책’] “문화재청은 막중하고 소임 있는 국가기관이지만…”
[정양모 교수의 ‘문화재 산책’] “문화재청은 막중하고 소임 있는 국가기관이지만…”
  • 조아라 기자
  • 입력 2014-01-27 11:46
  • 승인 2014.01.27 11:46
  • 호수 1030
  • 68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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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우리의 자화상 담긴 문화재

기업의 문화재 수집은
애국의 길
 
우리기업은 우리의 전통미술에서 현대와 미래 미술 문화발전에 원동력이 되고 자부심이 돼야 한다. 또 창조경제, 창조과학, 창조경영, 창조미술발전에 진정한 아이디어와 힘이 될 번득이는 예지를 찾아 낼 수 있도록 밀어줘야 한다. 다시 말하면 기업이 우리 고미술품과 외국의 고미술품을 사들여 박물관·미술관도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기존 박물관·미술관을 활성화하는 데 기여한다면 거기서 얻어지는 성과가 다대하리라 생각한다. 
 
외국에서는 기업이 고미술에 투자하면 신용·신뢰·존경·명망을 얻고 품위가 높아진다고 한다. 기업이 문화재를 수집한다는 것은 애국하는 길이다. 서구열강에 넘어가고 일제에 약탈당한 우리의 정신과 자부심이 담긴 문화재를 국내외에서 사들여 환수해야 한다.
 
그러면 우리 생활 문화가 풍요로워지고 국민교육에 이바지하게 된다. 이는 우리문화 발전의 저력을 확보하는 것이며 기업의 이윤을 사회에 환원하는 것이다. 박물관·미술관을 법인화해 사회에 환원하면 그 다음 운영이 문제가 된다. 이때는 국가에서 제도적으로 도와줘야 한다. 그런 기업을 국가에서 칭찬하고 포상하고 세제혜택도 주고 국민도 기업을 신뢰화고 응원하면 큰 성과가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 청화백자 매조죽문호(靑華白磁 梅鳥竹文壺). 매죽문양은 고려청자에서부터 시작돼 조선시대 후기까지 이어진다. 이 조그만 항아리는 뚜껑까지 남아있는 귀한 것으로 뚜껑에도 조금 크게 그린 남송원체풍의 매화가 있고 그 밑에 대나무가 곁들여져 있다. 매조죽문호 몸체 한 면에는 큰 매화에 새 두 마리가 앉아 있다. 그 밑에는 들국화 같은 초화문이 곁들여 있다. 다른 면에 매화보다 작지만 대나무 한 그루가 힘차게 뻗어있다. 고려시대와 달리 조선시대 청화백자는 매화나무가 대나무보다 커지고 새가 새롭게 등장했다. 또 매죽과 새, 들국화 등 새로운 구성과 표현을 통해 시대의 흐름에 따라 화면을 구성했다. 내용에도 변화를 보여준 흥미 있는 작품이다.
문화재는 선인의 발자취
 
문화는 인간이 자연과 같이 살고 자연에서 배우면서 만들어냈다. 인간중심의 모든 사고와 행위의 지적, 감각적, 시각적, 청각적 결과물이 문화다. 침팬지 등 인간과 가장 유사하다는 동물은 지금도 자연 그대로 살고 있다. 인간은 처음엔 자연 속에서 살았다.
 
하지만 점차 자연과 거리를 두고 벽을 만들면서 자기중심적인 생각을 했다. 좀 더 편안하고 안락하고 즐겁고 행복하게 살고 싶은 욕망과 약간의 절제가 만들어낸 것이 바로 인문이다. 그러나 절제보다는 욕망이 앞서고 편리, 사치, 안락한 삶을 살려고 하기 때문에 자연은 자꾸 훼손되고 있다. 결국엔 인류가 살 수 없는 지경에 이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아무리 인간이 특이한 영적, 지적, 존재라 하더라도 자연에서 절대로 벗어날 수가 없고 벗어나서는 안된다. 인간이 만들어낸 문화와 문명인 인문은 아무리 인간이 위대해도 자연의 제약과 그 영향으로 각 지역마다 다를 수밖에 없다. 따라서 자연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깊이 깨달아야 할 것이다. 자연환경의 차이로 인간은 흑인종이 되고 황인종이 되고 백인종이 됐다. 뿐만 아니라 신기하게도 외형만 다른 것이 아니고 각기 다른 사고와 행동, 행위 등에서 차이가 있다.
 
우리 대한민국은 아세아의 극동지방인 지구 북반구 온대지방에 위치해 있다. 또 거기에 걸맞은 인문을 영위하고 있다. 한반도만의 자연적 특성 때문에 중·일과도 인문이 서로 다르다. 따라서 우리의 문화재(문화유산)도 중국과 일본과 큰 차이가 있다.
 
문화재는 우리 선인의 발자취이자 엄숙한 우리의 자화상다. 우리민족은 이 땅에 수수만년 살면서 영위했다. 그러면서 시행착오도 겪고 실패도 했다. 이웃나라의 침략과 전란으로 파괴도 되고 유린당하면서도 모진 시련을 이겨냈다. 그 결과물이 바로 우리 문화재다.
 
이 결과물에는 우리의 정체성과 의지, 미감, 자부심, 자긍심, 자아의식 등이 영원히 살아 움직이고 있다. 그뿐 아니라 우리 문화유산 속에는 번뜩이는 예지가 있다. 우리민족만이 나타낼 수 있는 형언하기 어려운 독창적인 아름다움도 있다. 우리가 얼마나 자연을 사랑하였는가 하는 증좌도 있다. 따라서 우리의 문화재(문화유산)를 사랑하고 애정을 가지고 대해야 한다. 성실하고 지혜롭게 보존 연구 관리해 더 나은 미래를 창조해나갈 발전성장 동력으로 삼아야한다.

변화무쌍한 문화재청
 
지금의 문화재청(옛 문화재관리국)은 우리의 문화유산을 보존 관리 연구하는 막중한 소임을 맡고 있는 소중한 국가기관이다. 따라서 그 소임을 다 하기 위해 우리의 자연과 인문을 깊이 인식해야 한다. 보존과 방법을 폭넓게 연구하고 일관성 있고 신중하게 시행해야 할 의무와 책임이 있다.
 
하지만 문화재관리국부터 문화재청에 이르기까지 그 기구가 여러 번 바뀌었다. 문화재위원회도 각 분과가 별안간 새로 생겼다 없어지고 또다시 새로운 분과가 생겨나는 등 그 변화가 무상했다. 지금 문화재청에는 이를 위해 여러 개의 국과 십여 개의 과가 있는 등 방대한 기구가 됐다. 또 문화재청 내 문화재위원회가 있어 천연기념물(자연문화유산)과 유형문화유산, 무형문화유산, 사적지 등을 보존·관리하는데 따른 자문 역할을 하고 있다.
 
문화재청 기구를 좀 상세히 들여다보면 청장 산하에 청 본부기구와 서울과 지방에 많은 예하 기관이 있다. 본청에는 1실3국 산하에 17개의 과와 문화재위원회가 있다. 예하기관으로는 상급기관인 대학교, 관리소 연구소 박물관 등 8개 기관이 있다. 그 밑에 다시 9개 관리소 분소1개소 센터 1개소 5개의 연구소 교육원 1개소가 있다.
 
매작도(梅鵲圖)
 
매화나무에 앉은 까치를 뜻하는 ‘매작도’는 문인화가 조속의 작품이다. 조속은 인조반정 때 공을 세웠지만 나라에서 내린 상훈과 관직을 모두 사양하고 향리로 내려가 조용히 살았다. 그는 후에 잠시 관직에 있던 것으로 전해진다. 
 
조속은 화가로서 솜씨가 뛰어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조속이 활동하기 전까지는 우리 화단이 중국화의 테두리에서 멀리 벗어나지 못했을 때였다. 하지만 조속은 한국적인 화제와 화면구성으로 소탈하면서도 우리 자연을 관조한 개성 있는 그림을 그렸다. 이러한 개성은 한국화를 개척하는 데 큰 공을 세웠다고 평가받는다.
 
매작도는 절제되고 깨끗하며 세련된 필치로 그린 그림이다. 꽃이 여기저기 조금씩이나마 활짝 피어있는 늙은 매화 등걸에 까치 한 마리가 멀리 앞을 바라보고 의연하게 앉아있는 모습이 청절하게 살았던 작가 자신을 보는 듯하다. 특히 매화 밑 둥에 댓잎이 함께하고 있어 작가의 깊은 의중을 우리가 짚어볼 수 있게 한다.
 
 <정리=조아라 기자>
chocho621@ilyoseoul.co.kr
<사진=한국미술발전연구소>

조아라 기자 chocho621@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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