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요서울ㅣ이범희 기자] 요즘 재계에선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의 근황이 종종 입에 오른다. 22조 원이 넘는 추징금을 안 내고 버티며 베트남에서 호화생활을 하고 있다거나 현지에서 후배양성을 하며 제2의 삶을 살고 있다는 게 대부분이다. 정작 본인은 재기에 대해 말을 아끼는데 “아직도 베트남에서 뭔가 일을 꾸미고 있다”는 얘기가 더 힘을 받는 것도 사실이다. 이처럼 김 전 회장이 재계의 관심을 끄는 이유는 “그에겐 여전히 한 방이 있다”는 기대감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잊혀진 CEO들 중엔 여전히 명예회복 또는 재기의 꿈을 노리는 이들이 있다. 이에 [일요서울]은 설을 맞아 그들의 근황을 알아본다.
‘월급 회장’도 불사…명예회복·재기 꿈
“오너엔 은퇴없다” 정력적인 활동도
사실 김 전 회장은 대우그룹 몰락 후 눈에 띄지 않게 재기를 시도해 왔다는 게 주변의 전언이다. 옛 대우맨들을 불러 모으는가 하면 2012년부터 베트남 현지 해외 청년 취업 프로그램인 YBM 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일명 ‘김우중 사관학교’로 불리는 ‘YBM’은 해외 취업과 창업을 꿈꾸는 한국의 대학생들에게 노하우를 전수해준다. 운영 주체는 옛 ‘대우맨’들의 모임인 대우세계경영연구회이지만 김 전 회장의 애정이 각별한 것으로 전해진다. 일각에선 이를 통해 재기의 초석을 다질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여전히 김 전 회장을 그리는 사람이 많은 데다 옛 대우맨을 중심으로 김 회장의 복귀를 암암리에 추진하고 있다는 설이 유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작 본인은 조심스럽다는 게 주변인의 대답이다.
한 측근은 “자신(김 회장)이 재기에 대해서는 조심스러워 하신다. 추징금은 사면이 이뤄진 전례가 없는데, 어떻게 사업 재기를 할 수 있겠는가”라며 “(그러나) 돈을 버는 비지니스가 아닌 제2의 김우중을 양성해 다시 세계 경영의 꿈에 도전하고 있다”고 전했다.
또 다른 측근은 “그분의 기업가 정신은 타고난 것이다. 과거처럼 큰돈을 벌기 위해서가 아니다. 어떻게든 재기해 명예를 회복하고 남은 생을 국가 경제에 이바지하고 싶은 열정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고 전했다.
김 전 회장의 나이는 올해 79세다. 하노이 현지에서 매일 아침 5시에 기상해 골프장 산책을 즐기는 등 건강한 모습으로 알려졌다.
2년 전 하노이에서 그를 직접 목격했다는 차 모씨는 “현지 은행 지점장실에서 대화하는 것을 본 바 있는데 70대 중반의 나이가 무색할 만큼 목소리가 우렁찼고, 노신사라는 느낌이 들었다”고 말했다.
세금추징 논란
복귀 시기는 ‘까마득’
IMF위기를 전후해 몰락한 재벌총수의 근황이 새삼 세인의 관심을 모으는 것은 비단 김 전 회장 때문만은 아니다.
올해 91세인 정태수 전 한보 회장은 법정에 선 횟수나 각종 비리 혐의로 매스컴에 오르내린 기록 면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먼저 실형 선고 횟수를 살펴보면, 1997년 ‘한보 비리’ 사태로 징역 15년을 선고받는 등 모두 5차례에 걸쳐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정 전 회장은 15년의 징역형을 비웃듯 2002년 12월 31일 특별사면을 받고 출소한다. 이후 정 전 회장은 재기를 위해 몸부림치는데 이때 가장 골칫거리이자 훼방꾼이 국세청이었다.
정 전 회장이 은닉의혹을 받는 부동산과 관련해 논란이 예상되자 법적 잣대로 세금 추징에 나선 것이다. 당시 정 전 회장 측은 “서울시가 환매통지를 제대로 하지 않아 권리를 행사할 수 없었다”며 법원에 소송을 냈고, 서울시는 “정 전 회장은 환매통보를 받은 뒤 소멸시효가 지나도록 환매대금을 지급하지 않았다”라며 버텼지만 지난해 7월 법원은 서울시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폐기물처리시설 건설 과정에 중대한 하자가 없었다”며 “정 전 회장은 환매청구서만 제출한 채 환매대금을 지불하지 않았기 때문에 환매 자체가 성립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현재 정 전 회장은 키르기스스탄에 장기간 머물면서 금광사업을 추진 중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는 전부터 러시아와 카자흐스탄의 유전과 가스전 확보, 건설업에 관심을 기울여왔다. 하지만 카자흐스탄 최대 도시 알마티에서 그의 움직임이 공개되고 우리 법무부가 카자흐스탄에 신병인도를 요구하자 2008년 키르기스스탄으로 거처를 옮겨 은신하며 재기를 노린다는 게 주변의 전언이다.
오는 2018년에 열리는 평창올림픽과 관련해서 김석원 쌍용그룹 회장도 다시 매스컴의 조명을 받고 있다. 김 전 회장이 평창동계올림픽 유치의 숨은 일화가 알려졌기 때문이다. 김 전 회장은 스키장 불모지였던 우리나라에 최초로 대규모 스키장(용평스키장)을 건설한 장본인이다. 용평스키장을 필두로 국제 규모의 스키장이 여러 개 설립된 점을 감안하면 그 공을 인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크다.
반면 마땅히 내야 할 세금을 내지 않아 망신살로 근황이 재조명되는 재벌 총수도 있다. 최원석 전 동아그룹 회장이다.
최 전 회장은 IMF 후 회사가 망하자 돈이 없다는 이유로 줄곧 세금을 체납하다가 국세청 ‘무한추적팀’에 의해 숨긴 재산이 들통났다. 최 전 회장이 2011년 자신 소유의 미국 골프장 회원권 25만 달러를 아들에게 양도한 사실을 무한추적팀이 알아낸 것이다.
그러나 최 전 회장 역시 다른 총수들과 마찬자기로 잠시 좌절의 나날을 보내고 있지만 과거 의욕적으로 사업을 이끌었던 인물이기에 재기에 대해서만큼은 이목이 쏠린다.
또한 이들이 재기를 노리는 밑바탕에는 본인이 창업한 회사에 대한 각별한 애정과 함께 ‘명예회복’을 위한 집념이 공통적으로 깔려 있어 더욱 주목된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창업주에겐 은퇴가 없다’는 말처럼 여전히 정력적으로 일하고 싶은 갈망을 지니고 있어 발톱 숨긴 독수리로 살고 있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라면서도 “다만 법적 굴레를 벗지 못하는 한 국내에서 재기에 성공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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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범희 기자 skycros@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