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명절 시댁 식구들이 알면 안되는데…”애끓는 사연
가압류·공탁금·공판기일 문의 등 민원실 찾은 사람들
지난 22일 오후 2시께 서울중앙지방법원.
교대역에서 법원으로 가는 길가에서 많은 사람들을 볼 수 있었다. 그들은 손에 든 서류를 확인하며 바삐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법원 안은 손에 서류봉투를 든 사람, 전화통화 중인 사람, 민원 대기실에서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는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
법원 민원실은 많은 업무를 처리한다. 가압류·가처분, 가집행, 경매, 공탁금, 공판기일, 담보, 등기부 관련, 재판 관련, 부동산 등등의 신청 및 의견을 받는 곳이 바로 민원실이다.
다양한 이유로 민원실 찾은 사람들
민원실에서 대기 중인 사람들은 20대부터 60대 노인까지 다양했다. 그들은 각자 신문, 스마트폰, 서류 등을 보면서 자신의 차례를 기다렸다. 이 많은 사람들이 평일 오후에 법원을 찾은 이유는 무엇일까.
얼마 전 김모(43·여)씨는 전화 한 통을 받았다. 연체된 신용카드 대금을 상환하지 않으면 가압류 딱지를 붙이겠다는 내용이었다. 우연히 카드대금 연체 사실로는 가압류를 하지 못한다는 내용의 뉴스를 본 기억이 난 김씨는 그에 대해 알아보기 위해 법원을 찾았다.
평범한 가정주부인 그녀는 개인 사정으로 인해 신용카드를 사용했지만 대금을 갚지 못했고 남편에게 말하지 못한 상황이라고 했다. 김씨는 “지금 당장은 카드 요금을 낼 수가 없다. 그래서 조금만 기다려달라고 말했는데 가압류 딱지를 붙인다고 해서 겁이 났다”며 “남편에게 아직 말을 못했다. 명절에 시댁 식구들이 다 우리 집으로 모인다. 가압류만은 막아야 할 것 같아서 법원을 찾았다”고 말했다.
최모(31)씨는 며칠 전 뜻밖의 우편물을 받았다. 공탁금을 찾아가라는 내용이었다. 생각해보니 몇 년 전 아르바이트 비용을 못 받은 적이 있었다. 당시 노동청에 신고했지만 유야무야하고 넘어갔다. 최씨는 “생각지도 못한 돈을 받아서 기분이 좋다”고 말했다.
신모(43·여)씨는 집 문제 때문에 법정을 찾았다. 그녀는 6개월 전 현재 살고 있는 집의 전세계약이 끝났다. 인근 동네에 새로 이사 갈 집도 구했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했다. 계약을 앞두고 현재 살고 있는 집의 집주인이 전세금을 돌려주지 않은 것이다. 집주인은 신씨에게 “아직 전세로 들어온다는 사람이 없으니 조금만 기다려달라”고 말했다.
그러다 기다리는 시간이 반년을 넘자 신씨는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그쪽 사정을 더 이상 봐줄 수 없다. 우리 돈을 돌려달라”는 신씨의 요청에 집주인은 오히려 “세입자가 들어오기 전에는 줄 수 있는 돈이 없다”고 버티고 있는 상황이다. 신씨는 “빨리 집 문제가 해결됐으면 좋겠다는 마음에 법원을 찾았다”고 말했다.
2000만 원 이하 소액재판 인기
민원실을 둘러본 뒤 발걸음을 별관으로 옮겼다. 본관 옆에는 별관 건물이 줄지어 서있다. 바로 뒤편에 위치한 제2별관은 ‘민사소액재판’이 진행되는 곳이다. 민사소액재판은 2000만 원을 초과하지 않는 금전이나 기타 대체물, 유가증권의 일정 수량의 지급을 청구하는 사건을 해결하는 것이다. 재판이 진행되는 첫 번째 법정에서 하루 동안 열리는 재판 건수는 무려 240여건에 달했다. 이것만 봐도 소액재판의 인기가 높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바로 옆에 있는 법정에서는 개인과 회사 간의 소액재판이 진행되고 있었다. 사용료, 배당금 등 다양한 종류의 돈을 받기 위한 재판이 열리고 있었다.
법정 앞에 마련된 대기 의자에는 4~5명의 사람들이 앉아있었다. 이들 외에도 많은 사람들이 제2별관을 드나들고 있었다. 하루 동안 진행되는 재판 수를 헤아려보면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방문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다른 재판장에 비해 민사소액재판장 앞에 유독 많은 사람들이 몰려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여기 모인 사람들은 어떤 사연을 가지고 있는 것일까.
김모(29·여)씨는 학교 선배에게 빌려준 돈을 받기 위해 소액재판을 신청하러 왔다고 했다. 김씨는 지난해 평소 친하게 지내던 선배가 사업 때문에 돈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듣고 자신이 직장생활 하면서 모아두었던 600만 원을 빌려줬다. 그 선배는 빠른 시일 내로 꼭 갚겠다고 했다. 그러나 1년이 지나도록 연락도 피하고 돈을 갚지 않았다. 김씨는 “오래 알고 지낸 선배라 믿고 돈을 빌려줬는데 이럴 줄은 상상도 못했다”라며 “가만히 있다가는 도저히 돈을 받지 못할 것 갚아서 재판을 신청하려고 왔다”고 말했다.
이모(34)씨는 명절을 앞두고 밀린 월급을 받기 위해 재판을 기다리는 중이라고 말했다. 그는 “설 연휴가 코앞인데 당장 지갑에 돈이 한 푼도 없다”며 “이런 상황으로는 명절을 보낼 수 없다고 생각했다. 꼭 돈을 받아낼 것”이라고 말했다.
의류 공장 사장인 한모(51)씨는 거래처와의 재판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인터넷 쇼핑몰에 옷을 만들어 공급해주는 공장을 운영하고 있었다. 그러나 쇼핑몰 회사로부터 결제가 이뤄지지 않았다. 직원이 5명인 작은 공장을 운영하는 한씨는 결제가 미뤄지자 직원들 월급도 주지 못할 상황에 부딪혔다. 최근에는 직원과 눈을 마주치기도 미안해서 회사에서는 고개를 푹 숙이고 다닌다. 한씨는 “이래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에 소송을 알아보던 중 소액 재판을 알게 됐다”며 “밀린 결제금액의 이자는 바라지도 않는다. 그냥 내가 받아야 할 돈 받았으면 좋겠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각자 다른 사연 가지고 법원 문 나서…
오후 5시에도 많은 사람들이 법원 안으로 들어오고, 또 많은 사람들이 밖으로 나가고 있었다. 이들은 모두 각자 다른 사연을 가지고 법원을 찾은 사람들이다. 억울함에, 간절함에, 아니면 도움을 받기 위해 법원을 찾는다. 특히 명절을 앞두고 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법원을 찾는 사람들이 많았다.
법원 문을 나서는 사람들의 얼굴 표정 또한 가지각색이었다. 누군가는 일이 잘 해결됐는지 밝은 표정으로 전화통화를 하고, 또 누군가는 굳은 표정으로 서류를 보며 걸어가고 있었다. 법원은 사람들의 희로애락이 묻어 있는 곳이다. 그들의 얼굴 뒤로 노을이 지고 있었다.
[사건파일] “날 무시했다, 거짓말 했다”고 사람 죽인 잔인한 20대 |
자신을 무시했다는 이유로 사촌동생을 전기톱으로 잔인하게 살해한 20대가 경찰에 붙잡혔다. 울산남부경찰서는 자신의 집에서 사촌동생을 죽인 혐의(살인)로 이모(25)씨를 구속했다고 지난 24일 밝혔다. 현장에 출동한 경찰은 이씨의 집 안방에서 이씨의 고종사촌 김모(24)씨가 머리가 잘린 채 숨져있는 것을 발견했다. 근처에서는 50cm 길이의 전기톱이 같이 발견됐다. 경찰에서 이씨는 “동생이 평소에 나를 무시하는 말을 자주했다”며 “동생에게 수면제를 먹인 뒤 범행을 저질렀다”고 진술했다. 경찰은 이씨가 범행 전 인터넷 포털사이트에서 할리우드 영화 ‘텍사스 전기톱 연쇄살인사건’을 검색한 사실을 확인했다. 이 영화는 미국 텍사스를 배경으로 살인범이 전기톱을 이용해 연쇄살인을 저지른다는 내용이다. 또 이씨는 인터넷 쇼핑몰을 통해 전기톱을 구입한 것으로 드러났다. 그런가 하면 경기 의정부에서는 자신에게 거짓말을 한다는 이유로 여자 친구를 살해하고 자신의 오피스텔에서 시신과 10여 일을 함께 지낸 20대 남성이 경찰에 붙잡혔다. 경찰에 따르면 한씨는 지난 8일 의정부에 위치한 자신의 오피스텔에서 주양의 가슴 등을 주먹과 발로 때려 숨지게 한 혐의를 받고 있다. 경찰은 지난 20일 한씨의 친구들로부터 한씨와 주양이 며칠째 연락이 되지 않는다는 말을 듣고 지난 22일 한씨의 오피스텔로 찾아갔다. 한씨의 집 앞에서 악취가 나자 경찰은 범행을 확신하고 귀가하던 한씨를 붙잡아 2시간을 설득한 끝에 범행을 자백 받았다. 한씨의 오피스텔로 들어간 경찰은 침대 옆에서 이불에 덮인 주양의 시신을 발견했다. 발견 당시 주양의 시신은 심하게 부패된 상태였으며 방안에서는 악취가 진동했다. 내용에 대해서는 입을 열지 않고 있다. 두 사람은 지난해 9월부터 만남을 시작해 교제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한씨를 상대로 자세한 범행 동기 등을 조사한 뒤 구속영장을 신청할 예정이다. <이> |
이지혜 기자 jhooks@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