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창조경제 하에서 혁신과 창조를 시도하는 사람을 기업가라고 한다. 역동과 변화의 시대에는 끊임없이 신기술과 신제품을 만들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 이때 새로운 시장을 개척할 수 있는 사업가로서 창업(起業)을 할 수 있다. 불확실한 미래 속에서 트렌드를 읽고 기회 포착을 위한 모험가(Venturer)가 기업가(起業家)요, 기업가(企業家)인 것이다.
기업(起業)을 함에 있어서는 투자와 경쟁이 수반되기 때문에 불안과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자신에게 부딪치는 위협은 위험이 되기도 하고, 기회로 작용하기도 한다. 이때 실패를 두려워하여 포기하면 아무것도 할 수 없고 한 걸음도 나아갈 수가 없다.
창업을 할 때는 치밀한 사전준비와 빈틈없는 사업계획이 수립되어야 경쟁에서 이길 수 있다. 이때 자신의 생각이 옳다면 믿거나 생각하는 바를 자신의 의지와 판단대로 굽히지 않고 초지일관 밀고 나가는 소신(所信)이 필요하다.
어릴때부터 명확한 핵심 역량을 보유하여 남다른 집념으로 갖가지 기업환경 규제의 틀을 벗고 27세에 성공한 텀블러(Tumblr)의 주인공 데이비드 카프(Karp)를 떠올려본다. 그는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즐겨하며, 그 일에 몰두했다. 친구들이 오락이나 게임에 빠져 놀 때 그는 인턴사원을 하기도 했고, 이웃의 웹사이트를 만들 때도 인터넷 홈페이지를 전문 프로그래머만큼이나 훌륭하게 만들어 냈다.
늘상 컴퓨터 앞에 앉아 프로그램 코드를 짜며 학교수업을 따분하게 여기는 아들에게 부모가 그 재능을 인정해 고등학교 중퇴를 권유하기도 했다. 당시 학교에서 컴퓨터를 가지고 하고 싶은 일을 원하는 만큼 할 수 있었다면 그는 중퇴하지 않았을 것이다.
소년은 고등학교 중퇴 후 사업에 몰두하여 컴퓨터 프로그래머, 컨설팅사 창업을 거쳐 2007년 소셜네트워킹서비스(SNS)인 텀블러를 세워 기존 웹의 답답함과 규제, 강요에서 벗어나도록 하여 과거의 창의성을 복원시켰다. 텀블러는 페이스북과 트위터에 올리기에는 조금 벅차고 블로그에 올리기에는 너무 가벼운 것들을 보다 쉽게 공유하고, 즐길 수 있도록 하는 신선한 SNS 서비스다.
기존의 웹들이 몇몇 스타플레이어에 의존한 것과 달리 텀블러는 모두가 주인인 민주적 네트워크 커뮤니티를 형성케 하였다. 마침내 전 세계 500대 사이트 중 34위를 차지하고 지난해 야후가 텀블러를 11억 달러(약 1조2000억 원)에 인수하며 IT업계의 각광을 받게 되었다.
우리의 삶은 우연이 아니라 선택의 연속이다. 선택에 의한 가치 중심의 삶을 살아야 한다. 현실의 틀에 묶여 자신을 굴레 속에 가두어 두었다면 텀블러의 신화가 창조 되었겠는가.
문제는 맹목적인 ‘성공’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가치를 창조한다’는 신념을 가지고 지키고자 하는 의지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소신껏 이룬 성공이 아니면, 남 보기에 좋아도 스스로 좋다고 못 느끼면, 전혀 성공이 아니다”라는 안나 퀸드랜의 말이 생각난다.
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할 수 있다. ‘Can Do Sprit’ 정신이다. 기업가 정신의 핵심은 성취욕을 달성하기 위한 불굴의 의지를 가지고 어떠한 고난과 역경을 무릅쓰고서라도 이루어 내고야 말겠다는 도전정신이다. 미국이 신생 벤처기업에 대한 투자여부를 결정함에 있어 중요하게 여기는 기업가의 자질과 역량 중 하나가 위기 상황을 극복해 나갈 수 있느냐 하는 끈질긴 도전정신이다.
도전의 여정에는 반드시 장애물이 존재하며, 자기 자신에 대한 강한 믿음과 긍정적 태도, 열정이 필요하다. 위에서 본 기적, 신화의 창조는 믿음과 긍정에서 싹이 트고 열정에서 싹이 자란 것이다.
보통사람이라면 학업의 길을 지속했겠지만, 자신이 이루고자 하는 신념을 갖고 고등학교 학업을 중퇴하기란 엄두조차 내기 어려운 일이다. 스티브 잡스와 마크 저커버그 이후 대학중퇴자가 창업해서 성공한 예는 있다. 그러나 고교중퇴자가 창업을 해서 성공한 예는 드물다. 그만큼 고교 중퇴 후 창업은 충격이었다.
그의 성공의 핵심요소의 이면에는 주변에서의 위대한 멘토가 있다. 재능을 알아차리고 인턴십을 권유한 미디어 사업가 프레드 사이버트, 투자의 의미와 투자받는 법을 일깨워준 벤처캐피털리스트 비잔 새빗, 열한 살 때부터 프로그래머의 길로 인도해 준 아버지, 고등학교 중퇴를 권유한 어머니 등 모두가 그에겐 위대한 멘토인 것이다 .
이제 자신의 주위에 위대한 몇 명의 멘토를 두어야 성공할 수 있게 됐다. 세계적인 피아니스트의 길을 걷고 있는 한 후배의 경우를 보자. 그는 일찍이 음악가족을 이룬 부모 밑에서의 재능 발견, 전공지식 습득을 위한 예술학교에서의 멘토, 유학에서의 비전 확장 등 글로벌 무대 진출을 위한 각 단계마다의 멘토가 있었다.
시선을 국내 기업가에게로 돌려 공무원에서 퇴직한 1983년 반도체라는 미래산업을 창업해 성공으로 이끈 정문술 사장을 보자. 그는 18년간의 공무원 타성을 버리기 위해 곧바로 사업으로 뛰어들지 않고 허드렛일까지 해가며 새 사업을 구상했다. 그에게 성공이란 우연히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탐색하고 준비하는 과정에서 역경을 헤쳐 나가는 도전정신의 필연적인 결과물이다.
그는 시대에 뒤떨어지지 않고 어떻게 하면 창조적인 인물이 될 것인가를 고민한 사람이다. 10년 후, 20년 후 어떤 인물이 되기를 소망하면서 되고 싶거나 되어야 할 모습을 그리고 창의성을 개발해 상상에 도전한 인물임에 틀림없다.
일반적으로 기업이란 적당한 기회주의를 경영처세의 핵심이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는 착한 기업이 돈도 벌수 있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그는 “벤처기업이란 지극히 상식적이고 고전적인 기업개념이며, 그들이 하고 싶은 일이라면, 그것을 통해서 많은 것을 깨닫고 경험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말했다.
또한 그는 ‘장기적이고 지속적인 투자’를 견디는 데 매우 익숙한 사람으로 “사업에 긴장을 풀고 방심하는 순간 예외 없이 위험이 날아든다”고 했다. 끝없는 도전과 승부욕만이 기업을 살게 한다.
결국 그는 2001년 ‘회사를 대물림하지 않겠다’는 개인적 신념에 따라 회사 경영권을 직원에게 물려주고 스스로 은퇴했다. 늘 자신을 낮추고 번거로운 형식과 권위를 탈피하며 기술개발을 위한 과감한 투자를 하고 미래를 향해 도전해 온 결과다.
그러면서도 그는 현장 중심의 경영을 실천해 왔다. “호랑이 굴에 들어가야 호랑이를 잡을 수 있다. 현장을 중요시하라.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손으로 만지고, 발로 밟고, 마음으로 깨닫는, 그야말로 총체적이고 체계적으로 맞부딪쳐야만 능력이 나온다”는 것을 철저히 믿은 사람이다.
창조경제 하에서 역경을 헤쳐 나가는 도전과 기업가 정신은 어디에서 나올까.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는 격언과 함께 후한서 경엄전에 나오는 유지경성(有志竟成)을 기억하자. 유지경성은 ‘이루고자 하는 뜻이 있는 사람은 반드시 성공한다’는 의미로 뜻이 있으면 마침내 이루어진다는 말과 일맥상통하는 정신이라 할 수 있다.
필자 소개 김의식 (경영학 박사)
충주고등학교 졸업 후 경희대학교를 장학생으로 졸업했다. 이후 제일은행에 입행해 지점장, 본부장을 거치는 동안 쉼 없는 노력과 열정으로 주경야독해 경영학박사 학위를 취득, 어릴 때 꿈이었던 교수의 자리에 올랐다. 은행 명예퇴직 후 인하대 겸임교수, 인천대 초빙교수를 지내는 동안 열혈교수라는 별명을 얻었다. 저서로는 ‘열정은 배신하지 않는다’와 역할모델인 반기문 총장을 소재로 한 ‘세계를 가슴에 품어라’ 외 다수의 책이 있다. 현재 (사)글로벌 녹색경영연구원 교육원장·교수로 재직 중이다.
김의식 ilyo@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