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요서울 | 김종현 기자] 정통 12년, 즉 세종 29년(1447년)의 제작연대로 추정되는 월인석보(月印釋譜) 옥책(玉冊)이 발견되어 학계가 크게 동요하고 있다. 이러한 유물은 그동안 발견된 게 없었기 때문에 세간의 관심을 끌고 있다. 이 월인석보 옥책은 조선 세종대에 ‘월인석보’와 다른 불경의 간행, 훈민정음의 반포를 재고하게 되는 중요한 자료로 주목을 받는다.
이번에 발견된 월인석보 옥책은 옥봉 24개와 겉표지에 해당하는 ‘월인석보’ 옥판 12개, 엽수(葉數) 표시가 들어있는 옥판 352개이다. 여기에는 속표지로서 엽수를 붙인 ‘월인천강지곡 석보상절(月印千江之曲 釋譜詳節)의 옥판도 12개 포함됐다.
세종 29년에 개성(開城) 불일사(佛日寺)에서 제작했다는 ‘월인석보’ 옥책은 그동안 ‘월인석보’가 순천(順天) 3년, 세조 5년(1459)에 초간본이 간행된 것으로 알고 있던 학계로서는 매우 충격적인 일이다. 하지만 이번에 발견된 옥책은 정통 12년(세종 29년)을 표기하고 있어 세조 5년(1459)에 초간본이 간행된 것으로 알려진 것보다 12년 앞선 것으로 조사됐다. 세조 5년보다 12년이 앞서서 ‘월인석보’라는 이름의 옥책이 있다는 것은 그 이전에 ‘월인석보’가 간행되었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불일사는 현재 북한 개성시 판문군 선적리 보봉산 남쪽 기슭에 자리 잡고 있으며 기록에 의하면 고려시대의 사찰로 조선시대 초기까지의 3대 사찰 중 하나로서 크기는 동서로 150칸, 남북으로 100칸이나 되는 절이었다. 고려 광종(光宗) 2년에 왕이 자신의 모후를 위해 창건한 후 광종 어머니의 어찰로 사용됐고 그후 태조 이성계를 거쳐 세종대왕 때까지 왕가의 어찰로 사용되어 왔다. 1446년 세종대왕의 부인 소헌왕후가 세상을 떠나자 세종대왕은 수양대군(首陽大君)에게 명하여 ‘월인석보’ 옥책을 한글로 만들어 불일사 사찰에 봉헌한 것으로 추정된다. 조선시대에는 수양대군의 원찰이기도 했는데 세조의 사후에 원인 모를 화재로 소실되었다.
고려대 정광 교수의 논문에서 옥책에 옮겨 적은 ‘월인석보’ 권8은 불세관무양수경(佛說觀無量壽經)과 안약국태자경(安藥國太子經)을 중심으로 한 경전을 언해한 것으로 불법의 전파를 위해 널리 이용되던 불경이다. ‘불일사’에서는 ‘월석’의 여러 내용 가운데 이 부분을 옥판에 옮긴 이유가 인생의 영화와 고통(苦痛)이 극적으로 교차하는 월석 권8을 선택해 인생무상을 설교함으로써 불교에 대한 대중적 관심을 얻으려고 한 것으로 본다. 이러한 전통은 후대에 여러 사찰에서 ‘월인석보’의 각 권을 목판본으로 간행하기에 이른다.
국내산 옥판(玉板)에 월석 제8권을 새겨 넣은 이 옥책은 24개의 옥봉과 376편의 옥판(이 가운데 12판은 月印千江之曲 釋譜詳節의 속표지)으로 제작된 희귀한 보물로서 정통 12년의 간기를 매권 권미에 새겨 넣었다.
겉 표지는 ‘月印釋譜(월인석보)’, 속표지는 ‘月印千江之曲 釋譜詳節(월인천강지곡 석보상절)’로 되었고 매권 권미에 正統(정통) 12년이 새겨 있다.
옥책의 마지막 권인 제12권 말미(29판)에 ‘佛日寺 正統 十二年 終(불일사 정통 12년 종)’이란 권미 간기(卷尾 刊記)가 보인다. 이것을 보면 정통 12년, 세종 29년(1447)에 간행된 옥책임을 알 수 있다. 이와 같이 ‘월인석보’라는 겉 표지 속에 ‘월인천강지곡 석보상절’이라는 권수서명을 붙인 제책(製冊)과 편철(編綴)의 방법은 세조 5년의 신편(新編) 기법이 그대로 답습됐다. 아마도 현존하는 세조 5년의 ‘월석’은 정통 12년에 이미 유사한 방식으로 ‘월인석보’라는 표지 아래에 권수서명을 ‘월인천강지곡 석보상절’이란 이름으로 간행한 구권(舊券)을 그대로 모방한 것이 아닌가 한다. 그렇다면 월석의 간행은 학계에서 인정하고 있는 천순(天順) 3년(1459)이 아니라 정통 12년(1447)으로 해야 할 것이다.
또한 훈민정음의 언해본(諺解本)으로 알려진 세종어제훈민정음(世宗御製訓民正音)이 세조 5년의 신편 월석의 권두에 부재되었던 것처럼 아마도 ‘훈민정음’이 정통 12년에 간행된 구권의 권두에도 부재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엄밀한 의미의 훈민정음 반포(頒布), 즉 한글의 공포는 이것으로 보지 않을 수 없다.
‘세종실록’ 권103 세종 25년(1443) 계해년 12월 “이달에 임금이 친히 언문 28자를 제정하셨다. 글자는 고전을 본떴고 초성, 중성, 종성으로 나누어 합쳐진 후에 글자를 이룬다. 문자(한자의 발음) 및 우리말을 모두 기록할 수가 있다. 글자는 비록 간단하지만 전환이 무궁하니 이것이 소위 말하는 ‘훈민정음’이다”란 기사가 실록에 나타난 것이 가장 이른 시기의 것이며 따라서 훈민정음의 제정도 이때에 마무리된 것으로 본다.
정 교수의 논문 ‘월인석보 편간(編刊)에 대한 재고’ (국어사연구 제5호)에서 ‘월인석보’가 세종 생존 시에 간행된 구권(舊券)이 있고 세조 5년에 간행된 것은 신편(新編)이라는 주장을 입증한다. 이러한 주장은 학계에서 이 논문이 유일하다.
정광 교수는 ‘월인석보’ 구권을 옮겨 적은 옥책의 존재로부터 훈민정음의 언해본이 원래 세종 생존 시에 간행된 ‘월인석보’의 구권에 부재되어 간행됐으며 이것이 진정한 의미의 한글 반포라고 보았다. 세조 때에 간행한 ‘월인석보’의 신편에 게재된 ‘세종어제훈민정음’은 구권에 게재된 ‘훈민정음’을 그대로 옮긴 것이라는 주장이다. 이와 같은 사실을 논문으로 작성해 ‘국어학’(국어학회) 제68호에 게재할 예정이다. 옥책의 발견은 ‘월인석보’의 간행과 훈민정음의 반포에 대한 기존의 학설을 다시 논의해야 하는 획기적인 일이다.
정통 12년(1447)의 간기를 가진 ‘월인석보’의 옥책을 통해 ‘월인천강지곡’과 ‘석보상절’, 월인석보의 구권과 신권에 대해 고찰하고 이와 관련되어 언해본 훈민정음의 간행과 훈민정음의 반포에 관한 문제 등을 고찰했다. 이 옥책은 개성 불일사에서 발굴되어 필자(정 교수)와 여러 옥에 관한 전문가, 유물에 대한 여러 기관의 감정을 거친 것이다.
서강대학교에 소장된 초간본 ‘월인석보’의 권두에 첨부된 세조의 어제(御製)에서 월인석보는 세종이 지은 구권이 있고 천순 3년에 간행한 자신의 월인석보는 신편임을 명기했는데 이로부터 월인석보는 구권과 신권이 존재했다고 주장했다.
이번에 발견된 옥책이 그 간기로 보아 구권을 옮겨 새긴 것으로 봐야 하고 따라서 이 옥책이 진품(眞品)이라며 앞의 주장을 뒷받침한다고 보았다.
정 교수는 그동안 월인석보를 옥판에 새긴 몇 개의 옥책을 감정한 일이 있으나 모두가 현대인이 월인석보의 영인본을 옮겨 새긴 위작(僞作)으로 판정됐다. 그러나 정통 12년의 간기를 가졌고 월인석보 권8의 전문(全文)을 옮겨 새긴 이번의 ‘월인석보 옥책’은 지금까지의 위작들이 모두 이 옥책을 모델로 하여 제작된 것으로 진품임을 여러 측면에서 고찰했다.
고미술학계 옥공예 전문가인 정명호 박사는 “옥책은 세종 29년 명기가 되어 있는 귀한 월인석보 옥책으로 이는 주조활자나 목판본을 모본으로 제작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며 “제작에는 고려 말 혹은 조선 초기에 많이 사용되었던 활근개와 뚜르개, 옥칼 등 당시의 기구들이 사용됐다”고 설명했다.
김종춘 한국고미술협회 회장은 “글씨의 내용은 알 수 없으나 옥의 표면 각인된 곳에 많은 철분이 흡착된 것으로 보아 수세기 동안 땅속에 묻혀 있던 흔적이 틀림없다”고 평가했다.
이처럼 학계에서 수작업으로 이뤄진 진본임을 입증하고 있는 가운데 옥책이 세상에 다시 나오기 까지 긴 여정을 밟아 왔다. 국가의 보물 중 ‘동산적’ 가치로서는 최고라 할 수 있는 ‘월인석보 옥책’이 발견된 것은 새로운 박근혜 정부가 탄생된 시기와도 맞물려 국가적으로도 ‘길조’라고 볼 수 있다.
todida@ilyoseoul.co.kr 월인석보 옥책, 외국에서 떠돌다가 1991년 되돌아 와 옥책은 1446년 세종대왕의 부인 소헌왕후가 세상을 떠나자 수양대군에게 명하여 월인석보 옥책을 한글로 만들어 북한의 개성시 판문군 선적리에 있던 불일사(佛日寺)에 봉헌했다. 하지만 불일사(佛日寺)는 1500년경 전란으로 소실됐고 5층 석탑만이 북한문화재로 지정되어 전해지고 있다. 당시 옥책은 땅속에 묻혀 버렸고 이후 20세기 초 발견돼 오랜 기간 외국을 떠돌다가 1991년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 한 개인이 소장하고 있었다. 지금은 홍산문화 옥기 600여 점을 보유하고 있는 서울홍산문화 중국도자박물관(관장 김희일)에 소장되어 있다.
김종현 기자 todida@ilyoseoul.co.kr